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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Jun 10. 2024

냄새의 추억

작년 11월 1일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벌써 7개월이 훌쩍 흘러갔다.

장례식 이후로 납골당에 한번도 들러보질 못해, 이번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를 핑계삼아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계신 화천에 다녀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홀로 사신 화천의 집은, 우리 아빠가 중학생 무렵이었던 때 춘천에서 이사 들어온 이후로 쭉 살았던 추억의 집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오래된 흙집으로 안방과 건넌방 사이 수도가 있고 안으로 쭉 들어가면 긴 부엌이 있고 그 안에는 또 방이 있는 구조였고, 집 바깥으로 긴 툇마루가 있어 그 아래에 강아지들이 햇빛과 비를 피해 늘어져 있곤 했었다

화장실은 당연히 집 밖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었으며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서 쥐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소리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여섯 살때는 그 집에서 자다가 귀에 커다란 벌레가 들어가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땐가… 옛날식 흙집을 부수고 그럴싸한 벽돌집으로 새로 지었는데, 그때만해도 우리 할아버지가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같은 변기에 앉아 볼일 보는 일은 남사스럽다며 집안 화장실에 변기를 못 들이게 하셔서 화장실은 집밖에 남겨놓은채로 있다가 몇 년 후에 드디어 집 안에 변기를 설치했다.


그후로 2004년, 할아버지는 갑작스런 폐암 말기로 그 집에서 마지막 한달여를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고, 그 후로 20여년, 홀로 집을 지키시던 할머니가 작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햇골마을 우리 할머니댁은 나에게,

엄마가 너무너무 아프던 시절 도망가듯 찾아들어 안식했던 우리 가족의 쉼터였고, 명절마다 방학마다 찾아가 숱한 추억을 만들었던 고향이었다.

명절에 할아버지는 항상 정해진 꼭 그 자리에 다리를 꼬고 누우셔서 씨름이나 배구경기를 보셨고, 어린 남자 사촌동생들은 이 방에서 쿵, 저 방에서 쿵 어지간히 난리를 피우며 놀다 할아버지 꽥 지르시는 소리에 잠깐 잠잠해지곤 했다.


명절에 만두빚고 전 부치는 손놀림들이 분주하고, 큰집, 작은집 다 모여 상을 두 세개씩 펴놓고 만둣국을 먹던 커다란 거실에는 우리 어릴적 사진들이 덕지덕지 한가득 붙어있었다.


밤이 되면 장농에 있는 이불은 죄다 꺼내어 방이며 거실이며 할 거 없이 모두 누워 잠을 청했고, 부지런한 할머니는 자식 손주들 올때 되면 꼭 이불 빨래를 해 놓으셔서 오래된 이불이어도 언제나 뽀송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그 집에서의 추억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40여년 동안 그 집은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나의

시골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 동안 그 넓은 집에서 밤에는 텔레비전을 벗삼아 까무룩 잠드시고, 새벽에 일어나 집 앞 텃밭을 일구시며 겨울에는 김장김치를 잊지 않고 보내주시고 감자가 잘 되면 캐다가 박스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할머니 댁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된장찌개 (우리는 장 지진거 라고 불렀다) 각종 반찬들… 할머니 손맛이 아니면 그맛이 나질 않는 음식들이었다.


그 당연한 것들이…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니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번에 가서 정말 오랜만에 그 집에 들어가보았다.

집은 역시나 사람 손을 타야 안 망가진다더니,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는 할머니 손길이 없으니 생기를 잃은 집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머리를 때렸다.

수십년을 여기서만 맡아왔던 냄새.

나에게는 이 냄새가 할머니 냄새였다.

할머니는 안 계신데 할머니 냄새는 집안 가득 남아있었다.


소파 한 자리가 푹 꺼져있다.

할머니 고정석이다.

먹다남은 커피믹스 박스가 부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할머니 살아생전 많이 드시던 두유도 몇개가 덩그러니 남아있다.

돌아가신 직후 옷이며 세간살이를 왠만큼 정리했는데, 아직 남아있는 생활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가 집에 계시다 어디 잠깐 외출하신 것 마냥 익숙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벽에 붙어있던 우리들 사진을 모두 챙겨왔다.

빼곡하던 벽지가 휑하게 비었다.


할머니 얼굴은 이제 볼 수도 만질수도 없는데, 익숙한 그 냄새가 코를 찌르며, 마치 할머니가 “진주야~~” 하고 부르시는 듯 나를 깨웠다.


냄새를 갖고 다니다가 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꺼내어 맡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으로 멈춰있는 얼굴을 보는것보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냄새가 더 생동감있고,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것만 같았다.

냄새를 떠올리니, 그 공간의 모든 추억이 한 장면 한 장면 리플레이된다.


냄새의 추억은… 이렇듯 시각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구나…

며칠이 지난 지금, 애써 애써 그 냄새를 다시 떠올려보려 한다.

놓고 싶지 않고 잃고 싶지 않은 욕심에, 할머니 냄새를 코끝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 저만치에 고이 담아두고 싶은 마음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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