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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Jun 10. 2024

악!(樂)소리 나는 육아

5.너무나도 다른 너희 둘

악!(樂)소리 나는 육아

말문이 터진 봄이는 빠른 속도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습득해 나갔다.

욕심이 있는 성격이었고, 눈치가 빨랐고, 명석했다.

똑 부러진 만큼 떼도 많았고, 고집도 셌다.

네 살 때 1부터 100까지 읽을 줄 알게 되었고, 한글이 야호 동영상만 시청했을 뿐인데 다섯살에 한글을 모두 읽었다.

한 번 배운 노래는 기가 막히게 외워 우렁차게 불러댔고, 율동은 덤이었다.


봄이는 토끼였다.

어린이집에서도 무조건 1등이 아니면 안되었다. 돋보여야 했다.

선생님의 칭찬을 뜨거운 눈빛으로 갈구했다.

눈을 부릅뜨고 칭찬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수틀리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그 화와 짜증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울 정도였다.

정말이지 4살의 봄이는… 아파트 단지 맨 바닥 먼지를 온몸으로 훑어 대고도 남을 정도로 땡깡이 심했다.

한번 시동이 켜지면 기본 한시간이었다.

울고 불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발을 쿵쿵 구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엄마가 어르고 달래도, 화를 내고 소리를 쳐도 진정되지 않았다.

나의 인내심도 극한에 다다랐다

집안에서 그러는건 차라리 나았다. 밖에 외식을 나가거나, 놀러 나갔을 때 한번 발동이 걸리면, 주변에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들쳐메고 어디든 뛰쳐 나가야 했다.


그 순간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인내.. 불꽃이 사그라들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친한 언니는, “너무 똑똑한 아이들이 그래..” 라며 위로해줬다.

조금만 더 똑똑했다가는 엄마 심장이 녹아서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느린 아이 샘이는 말 그대로 거북이였다.

옆에서 봄이가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든 말든, 조용한 사색과 독서가 가능한 아이였다,

봄이의 상태가 좋아지면 멍뭉이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봄이에게 다가가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

시끄러울 때는 몸을 숙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인 것을 아는 친구였다.

뭘 알아서 그렇게 했겠냐마는…


그토록 둘의 성향이 달랐다.

습득이 빠르고 욕심이 많고 성격이 불같고 승부욕이 강하며 말을 잘하는 토끼 봄이와

말이 느리고, 손도 느리고, 모든 학습에 흥미가 없고,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느긋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에 관심이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는 거북이 샘이.


빵에는 달콤한 딸기잼이나 초코잼을 발라 먹어야 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며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주는 계란밥을 좋아하는 봄이와,

빵은 뭐니뭐니해도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식빵, 모닝빵이 가장 좋고, 단 것도 싫어하고, 기름에 볶아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좋아하는 샘이.


그림 그리는 것은 물론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는 봄이와,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는 샘이.

식성, 취향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성별마저 다른 이 두 아이를 동시에 키워내는 일은, 매 순간마다 엄마의 모드를 다르게 장착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스킬을 필요로 했다.


엄마는 생각했다.

두 아이의 요구에 100% 완벽하게 맞춰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어느 정도의 결핍 그리고 양보를 지금부터 배워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세심하게 마음을 만져주고 감정을 알아봐주길 원하는 여자아이의 니즈와, 묵묵히 자신을 믿어주고 어느정도의 자유를 확보해주길 원하는 남자아이의 기본적인 니즈를 최대한 맞춰주려 노력했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엄마는 기능적으로 서툴고, 매뉴얼이 약하지만, 엄마가 얼마나 봄이와 샘이를 사랑하고 기다렸는지 아이들이 마음으로 가슴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틈만 나면 안아주었다.

뽀뽀도 서슴지 않았다.

아이가 어느 틈에선가 힘들고 어려운 지점을 만났을 때, 그래 이 세상에 단 한사람,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고 있어. 라고 당연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길 소망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인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태의연한 말 같지만, 쉽지 않은 육아이든, 상대적으로 가벼운 육아이든 핵심은 똑같다.

아이는 타인이다.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향해 사랑과 인내를 꾸준히 발휘하는 일은,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의 근본이고 핵심이다.

나는 본질에 집중했다.

나는 늘 그랬다. 진심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장에는 손해보는 것만 같았다. 더 빠르고 쉬운 지름길이 있지 않을까

세상에 수많은 인간관계 스킬, 육아의 다양한 스킬이 존재하듯, 습득하면 조금 더 편안한 길을 갈 수 있는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애초에 그런 스킬과 매뉴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만난 조력자를 철저하게 믿고, 그 인연의 힘을 신뢰하고, 사랑의 대상을 향해 아낌없는 사랑과 인내를 발휘하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함께 가는 것.

그것이 나의 방법이었다.


영리하고 재빠른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이는 나의 스킬 아닌 스킬은,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아낌없이 사랑했고, 인내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 저 방법 표류하다가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했다면 달라졌을까 방황하지 않는다

너무 다른 남매 쌍둥이, 봄이와 샘이의 동시육아를 통해 엄마는 아이를 알아감과 동시에, 나란 사람 자체를 이해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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