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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Jun 03. 2024

악!(樂)소리 나는 육아

4.우리 아이가 자폐일지도 모른다고요?

악!(樂)소리 나는 육아악!(樂)소리 나는 육아

봄이와 샘이는 24개월이 지나도록 말문이 트이지 않았었다.

걱정이 많으신 시부모님은 이를 두고 진작에 조바심을 내고 계셨다.

아이들이 왜 말이 터지지 않느냐며, 옹알이를 잘 해서 말이 일찍 터질 줄 기대했더니 아직도 말을 못 하는거 같아 걱정이라며.

봄이는 그나마 상호작용이 잘 되고, 어른들의 말귀를 다 알아듣고 가져오라는 물건이나 책을 척척 잘 가져다주고, 노래도 잘 흥얼거리고 춤도 잘 춰서 말문만 터지지 않았을 뿐이지 특별한 걱정을 하진 않았다.


문제는 샘이였다.

상호작용도 별로 없었고, 혼자 가만히 앉아 책 한 페이지를 뚫어져라 오래 쳐다보곤 했으며, 어쩌다 보여주는 영상에 심하게 집착했다.

한가지 놀이를 가만히 앉아서 꾸준히 하지 못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놀잇감에는 과하게 집착했다.

영유아 검진의 사전 문진에 나오는 질문에 샘이는 모두 ‘아니오’를 체크 해야 했다

그러면 늘상 “아이 발달이 느려요”라는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감각적으로는 예민했다. 너무 차가운 아이스크림도 먹기 싫어했고, 카레밥, 짜장밥처럼 찐득찐득한 촉감의 먹거리를 싫어했다.

야심차게 준비해서 입에 넣어준 ‘떠먹는 요구르트’도 다 뱉어냈다.

모든 새로운 것을 기피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추구했다.

색연필을 잡는 손놀림도 어색했고,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활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말문이 전혀 트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도대체 내 말을 알아 듣기는 하는건지 아이의 반응만으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이른 아이들은 17개월부터 기저귀 떼기 연습을 한다는데, 샘이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배변을 가리는 일이라… 머나먼 일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첫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한 눈에 샘이가 조금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셨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전혀 협조가 되지 않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해요. 선생님의 지시 따르기가 전혀 안돼요.”


나에게는 결단이 필요했다.

무작정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큰 아동 발달 센터를 검색해서 예약을 잡았다.

문제가 있는 아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일단 그런 센터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서, 상담을 받아보러 간 것이었다.


센터는 전국적으로 체인이 있을 만큼 규모가 꽤 컸고, 방문 전 사전 문답지를 작성해야 했고, 집에서는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우선 봄이와 샘이가 둘 다 말이 느려 이 부분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봄이는 언어치료를 하면서 지켜보면 개선될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엄마와 놀이하는 모습을 전문가가 옆에서 지켜보고 이를 참고용으로 카메라를 거치하여 같이 촬영하기까지 했다.

봄이의 상호작용은 매우 좋았다. 센터 교사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샘이가 엄마와 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본 전문가는 심각한 얼굴로 상담실로 들어섰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서 한가지 놀잇감에만 집착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어요. 엄마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세계에만 빠져 있는 듯 보이구요. 더 자라봐야 아는 거겠지만, 자폐스펙트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청천벽력이었다.


샘이가 낯선 환경을 싫어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엄마와의 놀이 시간 내내 그 곳의 많은 장난감 중 공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이거 가지고 놀자, 저거 가지고 놀자, 텐션을 높여봐도 되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나는 상담실에서 휴지로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울었다

상담사도 그럴 가능성이 혹시나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위로했다.

센터에서는 우선 언어치료를 시작할 것을 추천했다.


그렇게 봄이와 샘이의 주1회 언어치료가 시작됐고, 1회 40분 수업에 5만원씩 10만원, 한달이면 40만원.. 적지 않은 지출이었다.

이 센터에서는 언어치료사 한 명이 봄이와 샘이를 차례대로 맡아 수업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봄이가 수업을 받을 때는 샘이가, 반대의 경우에는 봄이가, 한없이 대기실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센터에서 처음 만난 언어치료사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지 않고 사무적인 말투로 피드백 하는 모습이 늘 마음을 어렵게 했다.

이 첫번째 센터를 6개월 쯤 다녔을 무렵, 나는 언어치료가 지자체에서 비용 지원이 되고, 내가 다니는 센터는 그 비용 지원이 해당되지 않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참 일찍도 알았다.

우선 항상 마음에 들지 않던 언어치료사 선생님의 사무적인 태도와, 지자체 바우처가 해당되지 않는, 이름만 유명한 센터였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다른 센터를 서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 둘을 챙겨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센터를 다니는 것도 물리적으로 벅찬 일이었다.

센터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 좋은 거구나.. 겪어보고 배우게 되었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 작은 센터를 찾았다.

바로 전화를 해서 아이들의 상태를 얘기하고 바우처가 되는지 확인하고 예약을 잡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간 센터는 동네 작은 상가 건물에 아담한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었고,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꽤나 많아 보였다.

봄이와 샘이에게 각각 다른 언어치료 선생님이 배정되었고, 같은 시간에 다른 방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이전 센터에서처럼 아이들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가장 다른 점은, 언어치료사 선생님의 다정한 말투와, 아이를 향한 진심, 걱정 근심으로 얼룩진 부모를 위로하는 속 깊은 언어였다

이 곳은 확실히 달랐다.


무작정 가장 유명한 곳, 가장 큰 곳, 인터넷에서 서치하면 가장 상위에 뜨는 곳을 찾아갈 일이 아니었다. 시설이 좋아 보이고, 로비 가득 감사패와 현란한 전문 서적, TV방송 출연 화면을 플레이해 준다고 해서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곳은 아니었다.

지난 6개월의 수고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게다가 집에서 가까워 아이들도 부모도 오가는 길이 어렵지 않아 물리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봄이는 이 곳에서 언어치료를 받으며 말문이 확실하게 트이고 학습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라져 선생님은 4개월만에 치료종결을 선언하셨다


샘이의 경우는 달랐다.

언어치료를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샘이의 경우, 감각통합치료를 함께 받을 것을 권면하셨다.

감각통합치료? 그건 뭐지?

샘이처럼 감각이 예민하고 소근육이 느린 아이들에게 다양한 오감 자극을 주어 예민한 영역은 끌어내리고, 둔한 영역은 발달시키는 훈련이라고 하셨다.

언어치료와 함께 병행할 경우,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거라 설명해 주셨다.

지자체의 바우처로 언어치료 비용에 큰 혜택을 받고 있던 터라, 감각통합치료를 추가하는 데에도 큰 부담이 없었다.

하루에 감각통합치료 수업을 먼저 받고, 바로 이어서 언어치료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선생님들의 시간표를 조정해주셨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에 실제로도 몸이 편했고, 마음이 놓였다.

이 두번째 센터에서 두 가지 치료를 병행하며 샘이는 정말 많은 발전을 보였다.

물론 기관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에 비하면 언어도 소근육도 학습수준도 많이 느렸지만, 그때부터 나에게는 샘이는 샘이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센터에서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이후에 샘이와 비슷한 문제로 센터를 찾는 지인들에게 내가 꼭 해주는 조언이 있다.

센터는 한번 정하면 오래 다녀야 하는 곳이기에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규모나 시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냐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는 변한다.

그리고, 지친 엄마의 마음도 더불어 어루만져주는 것이 자신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 주시는 멋진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사실도 일러주었다.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는 엄마들도 아이의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며 위로 받고, 조언 받을 상대가 필요하다.

나는 이 두 번째 센터에서 샘이의 치료와 더불어, 나의 마음 치료까지 함께 받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이 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첫 번째 센터에서 들었던 그 말,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은 지워졌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뭐라고 단정지어 말할 순 없지만, 자폐스펙트럼인 아이들이 보이는 양상과는 확연히 다르고, ADHD인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언어발달을 비롯한 전반적인 발달 지연이라 판단하고 아이 치료에 접근했다


긍정적인 사실은, 아이가 치료를 통해, 그리고 기관에서의 단체 생활을 통해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느린 아이의 변화는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다

한동안의 정체기를 지니다가 어느 순간 쑤욱 계단처럼 올라온다.

아이의 그 순간을 발견하는 부모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때로 아이가 아무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아 좌절될 때마다 되뇌었다.


샘이에게는 샘이의 속도가 있다.


사실 이 무렵, 그 어떤 육아서도 전문가의 조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유익하게 많이 본다는 금쪽이 프로그램도 나는 오히려 심난해서 보지 못했다. 마음이 가질 않았다.

나는 그저 지금 내가 샘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샘이의 속도를 믿어주고, 결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에 맡기며 인내하는 것. 그것이 나의 최선이라 생각했다.

일주일에 하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웨건을 끌고서라도 센터에 열심히 다니는 나 자신을 칭찬했다.

그것으로 족하다고 위로했다.


아이의 발달을 위해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수많은 지침과 참견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의 내면에 집중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샘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하자. 좋으신 센터 선생님들을 믿고 따르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아이를 믿어주자

아마 아이들 4살 이후 내가 가장 많이 속으로 되뇌인 단어가 아니었을까

믿음. 믿어주기. 아이의 속도. 내 욕심만큼이 아닌 아이의 걸음에 맞추는 것.

아이는 서서히 말을 하기 시작했고, 기관에서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놀이에 관심을 보였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수업에 억지로라도 참여하려 했다.

전엔 먹지 않던 아이스크림을 용기있게 한 스푼 먹더니 눈을 크게 뜨며 새로운 맛의 세상에 행복해했다.

아이의 세상이 넓어지고 있었다.


사실, 샘이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은 봄이였다.

어린이집에서도 집에서도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언제든 붙어 있으면서 샘이의 말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엄마 아빠는 알아듣지 못하는 샘이의 말을 봄이가 통역해서 알려주었다.

봄이는 샘이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센터 선생님들도 봄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어린이집에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 의식하고 의지하며 서로의 성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 듯 했다.

집에서는 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엄마는 낄 수 없는 둘 만의 놀이를 꽁냥꽁냥 하곤 했다.

쌍둥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가장 치열하고 가장 많이 울고 가장 절망했던 4살 육아. 사실 나는 가장 많이 감사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이슈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기적처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이미 내게 주어진 두 아이가 결국 내가 가진 문제의 해답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미 다 터졌으니, 시간을 갖고 수습만 해나가면 된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문제가 곧 답이었다.

문제는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어렵게 하지만, 언제나 답을 그 안에 품고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아이들을 육아하면서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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