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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pr 15. 2019

항공사에 다닌다는 것

항공권 저렴한 거 맞아요

항공사에 다닌다고 하면 흔히 승무원이나 카운터에서 발권해주시는 분처럼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사람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항공사에도 일반 회사처럼 수많은 직군이 있으며 나처럼 항공사 본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많다. 브런치 첫 글로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회사 복지 티켓으로부터 얻는 삶의 즐거움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방콕 가는 티켓이 6만 원이라고?]


항공사에 다닌다고 하면 첫 번째로 듣는 질문은 ‘항공권 엄청 싸겠다!’. 그렇다. 입사 전에 막연히 생각했던 티켓 가격보다도 더 저렴하다. 특히 나는 FSC(Full Service Carrier)가 아닌(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를 생각하면 된다.) LCC(Low Cost Carrier)의 직원이라 항공권이 더 저렴하다. 기내식과 같은 서비스 가격이 항공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이용료와 세금만 내면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후쿠오카를  5만 원에 다녀오고 방콕을 6만 원에 다녀온다고 하면 정말 거의 모든 사람이 부러워한다.



빈자리 있어요?

하지만 무료 항공권이 일반 유상승객과 동일할까? 아니다. 티켓을 받았다가 유상승객이 나타나서 출국 심사 직전 티켓을 반납한 적도 있고 자리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방콕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온 적도 있다. 한두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는 친구들보다 먼저 출국하고 하루 일찍 한국으로 돌아오는 계획을 잡는다. 빈자리가 없어 티켓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직원을 위한 이 무료항공권이야 말로 항공사에 지원한, 그리고 항공업계를 사랑하게 해주는 가장 큰 이유다. 


방콕 야경


[무슨 일 하세요?]


회사 밖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빠질 수 없는 질문은 "무슨 일 하세요?". 그리고 그 후의 대화 패턴은 백이면 백 아래와 같다. 


Q. "무슨 일 하세요?"

A. "항공사 다녀요."


 "여행 많이 다니시겠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혹은 "여행지 추천해주세요!"


처음 만나는 그 누구와도 하게 되는 이 대화가 어색하기 마련인 첫 만남을 흥미롭게 해 준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즐거운 주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다. 꼭 현재의 삶이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일상에서의 탈피를 꿈꾸는 거다. 여행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고 환경만 바뀌는 것인데 이상하게 삶 자체가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이 대화 패턴이 수없이 반복되어도 지겹지 않고 좋다. 모든 사람의 여행이 다르듯이 이 대화의 첫 시작은 같아도 대화의 내용과 끝은 늘 다르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한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거다.




[삶이 권태로울 때 바로 떠날 수 있는 자유]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팀은 연차를 사용하는 것이 자유로운 편이다. 사실 연차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회사가 많기 때문에... 연차와 빈자리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티켓 덕에 항상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급작스러운 짧은 여행을 몇 번하게 되었다. 그냥 공항의 자유로움이 그리워서, 사람들에게 지쳐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정의가 따로 있겠느냐마는 사실 내가 다녀온 몇 번의 여행은 여행이라고 하기에 조금은 부끄러운, 현실로부터의 짧은 도피도 있었다. 그런데 이 짧은 여행이 일상을 감사히 여길 수 있게 해주는 큰 힘이 된다. "그래 내가 이 맛에 회사 다니지!"라는 생각. 입사 후에 제주도를 7번 정도 다녀왔는데 6번이 당일치기였다. 바다 앞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 오면 기분이 꽤, 아주 많이 좋아진다. 


제주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다.


[여행은 시야를 넓혀준다, 자의든 타의든]


입사 면접에서 여행이 좋아 항공사를 선택했다는 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뻔한 이유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한 문장 안에는 나름대로 꽤 깊은 생각이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이던 스물네 살의 나에게 항공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사고가 닫혀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한국을 벗어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고 시야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다. 그리고 시야가 넓은 사람이 닫힌 사고를 가지진 않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내가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변화했기 때문에 항공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그 기대치는 꽤나 충족되었다. 회사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했고, 떠나는 것에 대해 유했고, 서로 더 많이, 더 멀리 나가라고 부추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업무 차 만나는 다른 항공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도,  오며 가며 만나는 승무원들도 모두 여행을 떠나라고 하고, 삶을 즐기라고 말한다. 오피스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찾아 나서라고 말한다. 그런 걸 보면 직업을, 아니 업계를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아니었더라면 삶에의 자극에 나를 내던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달도, 다음 달도 공항 카운터에 가서 물을 것이다.


 "빈자리 있어요?"


그림 같았던 사이판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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