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금요일, 퇴근 후에 공지가 올라왔다. 사무실 근무 인원 모두 재택근무를 실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원래도 재택근무가 시행 중이었지만 우리 본부는 참여율이 저조했었다. 업무 특성상 다른 부서와 협의해야 할 일들이 많고 써야 하는 회사 시스템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정말 중요한 일 아니면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거다.
그동안 재택근무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엉겁결에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다행히 필요한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미리 노트북에 저장해둔 터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바로 재택근무에 들어갈 수 있었다.
관련 글들에서 보았던 대로 업무 효율은 괜찮았다. 오피스에서는 이래저래 눈치도 봐야 하고 신경 써야 하는 상황들이 많다. 그런데 집에는 딱 나와 내 노트북만 있다. 그만큼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사무실의 커다란 모니터 보다도 작지만 손에 익은 내 노트북이 더 편하다.
사람들이 메신저에 반응하는 속도는 전광석화다. 다들 메신저에 답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비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스마트 워치 알람까지 켜놓고 다른 방에 있다가도 연락만 오면 잽싸게 답장을 보냈다. 업무 집중도도 올라가고 사람들과 소통까지 잘되니 필요한 업무를 제 때에 끝마칠 수 있다.
그런데.. 밥 맛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요리를 해보겠다며 좋아하는 식자재를 한 껏 사 왔다. 월요일 점심과 저녁을 먹으며 음식 사진도 수십 장을 찍고 '내일은 이 요리를 해봐야지'하고 두근두근 했었다. 이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화요일 점심 이후로 요리에 대한 흥미와 밥 맛을 잃었다.
비슷한 재료로 비슷한 요리를, 게다가 내가 직접 하다 보니 지겨워졌다. 배는 고프고 음식도 있는데 먹기 싫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생겼다. 목요일인 오늘은 내 요리를 먹느니 차라리 굶는 게 낫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허기에 지쳐 하루 한 봉지만 먹어야 하는 견과류를 다섯 봉지나 먹고 끼니를 때워버렸다.
아픈 것도 아닌데 입맛이 없어질 줄이야. 그동안 어떻게 밥을 먹고살았나 싶다. 앞으로 더 남은 재택근무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아야 하니까 먹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재택근무는 좋은 점이 더 많다.
가장 좋은 점은 걷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걷는 시간이 늘어서 좋은 게 아니라 걸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서 좋다. 독일의 철학가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걷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늘었다.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상의 소중함과 언젠가는 지나갈 이 혼란의 시기를 보내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분명 지나갈 것이다.
밥 맛을 잃어버린 재택근무도 몇 년 뒤에는 지나간 과거가 될 것이기에 지금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미래는 하루아침에 오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통근 시간이 줄어들어 시간이 늘은 만큼, 홀로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우선 내일은...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을 식습관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