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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May 09. 2019

지구는 둥그니까!

그래서 우리는 만날 수 있나 봐

여행의 매 순간마다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3주간의 짧은 어학연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칠레 아저씨, Terenzio!


조지아 테크에서 들은 수업은 어학연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제 2 언어로서의 영어) 프로그램이었다. 대학교 수강신청처럼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Speaking, discussion, writing 딱 세 개의 수업만 들었다. 수업이 주목적이 아니라 교환학생처럼 미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서 여유 시간을 많이 두었다.


이 프로그램 자체가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3주라는 짧은 기간 탓에 나처럼 어학연수만 하러 온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 가족이 있어서 온 사람, 여행만 하기엔 아쉬워서 온 사람, 혹은 나라에서 연수 프로그램으로 보내줘서 온 단체도 있었다. 흔히 어학연수 가면 한국인도 엄청 많고 대부분이 아시아인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아시아인이 극 소수였다. 기억나는 국적만 해도 프랑스, 스페인, 칠레, 브라질, 포르투갈,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중국... 정말 다양했다!


   

칠레 아저씨, Terenzio!

태어나서 처음 만난 칠레 사람. 유난히 이 아저씨는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다. 아저씨의 이름은 Terenzio (테렌지오) 였다. Rita(리타)가 나의 영어 이름이었는데 "R" 발음을 따르르르르르 굴리며 항상 리이이이이따~!!!! 라고 불렀다. 어찌나 크게 불렀는지 이 아저씨가 나를 부를 때면 길가던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장난기 많은 겉모습과는 달리 배울 것이 많은 아저씨였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본인의 회사가 한국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냉동 베리를 납품한다고 했다. 조지아에는 미국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서 영어를 배우러 온 거였다. 지리상 조지아 주가 남미랑 가까워서 조지아로 왔다고 했다. 일하는 게 너무 좋은 이 아저씨는 세계 각국을 누비는 여행자이면서 사업가였다. 테렌지오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했다. 대단했다고 생각했던 건 그렇게 흥도 많고 노는 걸 좋아하는데도 수업에는 꼭 출석했다는 점이다. 수업 끝나고 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야외 테라스에서 아이스크림 먹었다. (조지아는 강한 햇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다!)



미국에서의 기억만으로도 좋았던 테렌지오가 다음 해 여름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을 했다. 회사 사람들이 한국 푸드쇼에 가는데 통역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당연히 해준다고 했다. 마침 수업도 없는 날이었다.


일산 킨텍스에 가서 테렌지오의 회사 동료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통역을 했다. 둘의 국적은 중국과 미국이었고 새로운 한국 업체와 계약을 맺으려고 온 거였다. 당시 취업준비 중이던 나는 괜히 직장인이 된 것 같았다. 신난 마음에 이 업체 저 업체 연결해주고 명함과 팸플릿을 교환시켜줬다. 이때 그 사람들이 좋게 말해주었는지 테렌지오는 그 해 여름 방학에 칠레에서 인턴십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다. 그때 칠레에 갔으면 참 좋았으련만. 나도 낯설었던 칠레라는 나라가 부모님 눈에는 더더욱 미지의 세계였나 보다. 부모님의 반대에 의해 인턴십 기회는 안타깝게 놓치고 말았다. 갔더라면 나의 커리어가, 인생이 달라졌으려나?


2016년, 한국에서 취업하며 살아가던 해에 테렌지오가 직접 한국에 왔다. 2년 전에 미국 애틀랜타에서 만난 아저씨를 태평양 건넌 지구 반대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해에 열린 푸드쇼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온 거였다. 이메일을 받았을 때의 반가움이란.광화문에서 만나 코리안 바비큐(삼겹살) 도 먹고 오래간만에 만난 테렌지오와 그의 직장 동료와 함께 얼마나 지구가 작은지, 우리 인연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냉동 블루베리, 칠레에서 온 청포도를 먹을 때마다 테렌지오가 생각난다. 인연에는 끝이 없다.


그 외에도 기억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인과 결혼해서 비자 신청하러 왔던 브라질 출신 여자 PD, 책을 좋아했던 중국인 영어 선생님,  나와 동갑이었던 흥 가득한 스페인 친구, 한국인을 처음 봤다며 나와 사진 찍었던 대만 10대 소년. 한국에서 교환학생 교류회를 하면서 외국인을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방인인 나라에서 또 다른 국적의 사람을 만나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그때의 그 인연 모두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지!




조지아테크에서 만난 사람들이 준 교훈


모든 인연을 소중히하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게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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