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소녀 Jun 26. 2019

해가 좋다.

해가 좋다. 사람들은 살갗이 탄다고 하지만 나는 살이 타고 덥더라도 햇볕 아래 있는 것이 좋다. 원래부터 이렇게 햇빛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비오는 날의 운치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나의 취향이 변한 시기는 재수다. 스무 살의 재수 이후로 햇빛을 좋아하게 되었다. 


캠퍼스의 낭만과 싱그러움이 가득 찰 것이라 기대했던 스무 살의 나는 재수학원에 있었다. 그 해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여름에 해가 뜬 날이 며칠되지 않는다며 뉴스 보도가 나올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학원 안에만 있는 것도 서러운데 창을 바라봐도 비가 왔고 잠깐 걷는 산책길에도 비가 왔다. 한편으로는 그래, 이런 날씨에 차라리 공부를 해서 다행이야,라고 위안하기도 했다.


그 다음 해는 평년과 같았다. 대학 입학 후 어느 봄날 집을 나서는데 햇볕이 내리쬐었다. 말 그대로 땅이 뜨거울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이 났다. 이 좋은 날씨에 내가 놀러 갈 수 있다니. 학원 안에 있지 않아도 된다니. 아직도 그 순간이, 백합 나무 아래 멈춰서 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든 생각은, 아 정말 감사하다. 이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다는 현실이 감사했다. 작은 상자 같은 학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내가 원하는 공부만 해도 된다는 사실, 그 사실이 그리도 고마울 수 없었다.


그 후로 햇볕이 좋아졌다. 해가 뜬 날에는 바깥에 나와만 있어도 좋다. 의자에 앉아 커피만 마셔도, 책만 읽어도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행복하다. 타는 듯한 더위에도 볕을 바라보는 여름이 좋다. 해가 좋은만큼 하루의 컨디션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마가 곧 시작되려는 오늘, 햇빛을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해에 대해 글을 쓴다. 올해의 장마가 어서 지나가기를, 내리쬐는 햇볕을 어서 빨리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루베리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