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소녀 Jul 14. 2019

독서의 이유

책 속에 길이 있다.


학원에서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던 청소년기에 나는 학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학원에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전까지 영어 외의 공부는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교육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도서관에 갔다. 친구들이 모두 방학 특강을 들으러 하루 종일 학원에 있을 때 시립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고백하건대, 그때 청소년 필수 도서를 만화로 읽었다. 폭풍의 언덕,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심지어 논어까지 만화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양심상 자신 있게 '나 그 책 읽었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된 후에 제대로 된 책을 읽었다. 다행히 만화로 된 책을 읽었음에도 그럭저럭 책 읽는 습관과 언어 능력은 발달이 된 것 같다. 예전 고등학교 언어 강의에서 어떤 활자든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였나 보다. 버스의 광고 글귀까지도 국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책 읽는 습관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입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매일 문학, 비문학을 접해서 그런지 책을 따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 당시 독서는 공부법을 다룬 책이나 혹은 논술용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책을 습관처럼 읽지는 못했다.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게 더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10대를 책상에서 보내다 보니 대학교에는 간접경험보다 직접 경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대학교 졸업 후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통근 길을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 아이패드 미니와 ebook이라는 최고의 조합을 찾아내었다. 이때부터 내 삶은 책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ebook 정기권을 구매해서 한 달에 책을 3권씩 읽었다. 그러다 권수가 모자라서 5권으로 늘리고 가끔은 추가 구매까지 했다. ebook으로 제공되는 서적은 제한적이라 원하는 책이 있으면 구매해서 읽었다.


출퇴근 길에 매일매일 책을 읽다 보니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어딘가 하루가 빈 느낌이 든다. 왜 내가 독서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언제부터 내가 다시 이렇게 독서의 힘을 믿게 되었는지. 


책에 답이 있음을 깨달은 것은 관계 중독을 극복하던 시간이다.


관계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관계에 중독되는 거다. 작은 감정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사람에게 집착한다. 이십 대 중반에 사람에게 너무 쉽게 애착을 가졌다. 타인에게 집착하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제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루에 잠을 두 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감정과 이성의 싸움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순간 스스로가 객관화가 되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객관화의 순간이 있었기에 그 문제와 관련된 책을 집었다.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에 유약했는지 알고 싶었다. 심리학 관련 도서를 계속해서 읽었다. 회사에서 유일한 낙인 점심도 포기하고 책을 읽었다. 책에 답이 있고 길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심리 치유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 '나는 정말 나를 알고 있는가', '삶의 의미',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등 에세이부터 심리학에 관한 책을 가능한 한 많이 읽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나와 부모의 애착관계에 대해서 분석했다. 어린 시절 나와 부모의 애착 관계가 어떻게 나의 청소년기, 성년기에 영향을 주었는지. 


나는 왜 이 사랑을 하는가 (데이비드 리코, 2014)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과거의 정신적 폴더 안에 그것들을 재정리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일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과거의 문제들과 직면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질 것입니다.'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문제의 해결법이 보였다. 그 후로 나는 관계에 굉장히 마음이 편해졌고, 누군가에게 애착이 생겨도 그 이유가 지금 관계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학습된 애착임을 안다. 그래서 조금 더 인간관계에 여유로워지게 되었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안정감이 생긴 것이다. 책에 답이 있었고 길이 있었다. 


Photo by Aliis Sinisalu on Unsplash


더불어 책은 지식에 대한 갈망을 채워준다.


취업 전, 학생으로 살면서 거의 매일매일이 학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업무 외의 것을 배운다는 느낌이 없다. 그래서 회사원의 삶이 지속될수록 무지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얻는 업무적인 발전이라던가 사회경험은 있었지만 '활자'를 통해 얻는 지식이 없었다. 그 욕구를 채워주는 수단이 책이다. 그래서 나에게 독서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지적 욕구를 채우는 수단인 셈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충족되는 지적 욕구는 또 다른 문을 연다. '사피엔스'를 읽은 후에 '총 균 쇠'를 읽게 되었고 '아트 인문학'을 읽은 후에 '반 고흐를 읽다'를 읽었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고 싶고 더 알고 싶어 진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핸드폰과 노트북의 메모장은 글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습관은 '강원국의 글쓰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썼더라면 보다 더 빨리 나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다시 독서를 시작한 이십 대의 내가 늦지 않았음을 알고 지금도 내 인생의 가장 빠른 시기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쓸 것이다. 책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가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