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세지 않아도 되니까 별을 세렴"
중학교 2학년, 내 꿈이 천문학자라고 말했을 때 저렇게 말해주던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오늘의 나는 달라졌을까? 꿈을 입 밖으로 처음 말한 날이 기억난다. 그때 들은 말은 "천문학자는 돈 못 벌어.” 꿈을 좌절시키는 한 마디였다.
그 후로 나는 선뜻 꿈을 꾸지 못했고 어른들에게 장래희망을 말하지도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말하라고 했으면서 왜 돈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 나는 ‘직업’이 아니라 진짜 살고 싶은 ‘삶’을 생각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장래의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말 즈음에 다시 누군가가 물었다. 공부를 해보니 어떤 것이 재밌느냐고. 그때 나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고 생각이 참 많았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글을 쓰고 하늘과 별을 보며 사색했다. 철학에 관심이 생긴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존재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에도 관심이 갔다.
"철학이랑 역사가 재밌는 것 같아서 철학과나 사학과에 가려고요"
이 말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가려는 전공이 낮아서 대학 가기 쉽겠네"
그리고 "그런 건 등 따습고 배부른 애들이나 하는 거다"
.......
아, 그 당시 등 차갑고 배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왜 저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 말에 좌절했을까. 그 후로 나는 절대 그 꿈을 꾸지 않았다. 사실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왜 어른들의 말에 그렇게 쉽게 생각이 바뀌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아무튼 그 후로 돈 잘 버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에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
"목표가 어디니?"
(이때는 꿈이 아니라 대학과 전공에 대해 물었다.)
좋은 반응이 나오는 대답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답했다.
"돈 잘 버는 과에 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ㅇㅇ대학교의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면 되겠네"
나의 고등학교 3년의 꿈이 정해졌다.
"ㅇㅇ대학교 경영학과"
책상 위에 큰 글씨로 대학교와 전공을 목표로 붙여놓자 다들 흡족해했다. 꿈도 애널리스트로 바뀌었다. 다행히 수학과 경제 공부가 즐거워서 고등학교 시절이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경영학과에 가지 않았고 목표로 했던 대학교의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후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서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며칠 전 출근길에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 한 유명한 천문학자의 강연에서 나온 이야기다. 학자가 어린 시절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삼촌에게 했더니 삼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네가 천문학자라는 꿈을 말하면 어른들이 이렇게 말할 거야. ‘돈도 안 되는 거 뭐 하려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돼. 이 말이 너를 지켜줄 거야. ‘저는 돈을 세지 않을 거예요. 별을 셀 거예요.’
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이민호, 2019)라는 책의 본문 첫 페이지에 나온 말이다. 천문학자가 흔한 직업도 아닌데 작가는 어떻게 저 사례를 적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의 꿈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던 이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살아왔고 문과에 가면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전공을 선택하면서 얻은 것도 많다. 그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때 천문학자라는 꿈을 추구했더라면 그런대로 밥 벌어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말이다.
꿈에 관해서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미래에 내가 누군가의 꿈을 물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긍정적이고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다. 꿈을 격려해주고 그 꿈을 왜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을 것이다. 현실을 알려주되 어른의 잣대로 아이의 꿈을 억누르지 않으리라.
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그 꿈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 한다. 그리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시간은 현실의 제약과 힘듦도 모두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건 10대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의 꿈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사라졌지만 그 후로도 나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지금도 꿈을 꾼다. 꿈이 삶을 더 아름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