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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ug 23. 2019

퇴근길, 서점

좋은 습관 하나.


이번 여름,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퇴근길에 서점에 가는 것.


회사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대형 서점이 하나 있다. 이 서점은 도서관처럼 책상과 스탠드를 비치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책을 훼손하지 말아 달라는 문구와 함께. 이런 공간이 있어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요즘 서점들은 '독서'의 행위 자체를 장려하는 것 같다. 중고 서점도, 작은 동네 서점도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해 놓는다. 그런 곳에는 늘 사람이 북적인다. 책 읽는 사람이 참 많다. 책 읽는 것도 습관이자 버릇이라 읽으면 계속 다른 책을 찾아 나서게 된다. 자연스럽게 책 구매로 이어진다.


인터넷 서점이 있고 전자책으로 독서를 해서 서점을 주기적으로 가지 않았었다. 어차피 인터넷에 다 있는 걸 뭐, 하고. 시간이 남으면 가는 곳이 서점이었다. 그런데 규칙적으로 서점에 가다 보니 생각지 못한 좋은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저 퇴근길에 책 몇 페이지 더 읽으려고 가기 시작했던 서점인데 늘 그렇듯 활자는 작지만 의미 있는 영향을 준다.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는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온 이 시점에서, 여름의 습관이 만든 몇 가지 변화를 적어본다.



독서 편식이 사라지고 있다.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많으면 이것저것 맛보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독서 편식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좋아하는 인문학 책만 읽고 관심이 생긴 주제에 관련된 책만 읽는 독서 편식이 있었다. 소설과 에세이류는 잘 읽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면 더욱 원하는 책만 골라 읽게 된다. 관심 있는 분야에 필터를 걸어 놓고 책을 찾으니까. 그런데 오프라인 서점은 조금 달랐다. 판매해야 하는 책, 잘 나가는 책, 새로 나온 책이 눈에 띄는 곳에 놓여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읽지 않던 책이 손에 잡힌다. 한 페이지라도 읽게 된다.


독서 편식이 사라지면서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읽게 되었다. 제목만 들어도 알 법한 책들 중 읽지 않은 책이 많다. 중고등학교 필독서였으나 읽지 않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어려울 줄 알고 찾아보지도 않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이번 여름에 읽었다. 그 유명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에서야 읽었다.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퇴근길에 걸터앉은 의자에서는 소설책도 술술 읽혔다.



서점이 휴식처가 되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침과는 달리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회사에서 글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걸까? 뇌가 쉬고 싶어서 그런 걸까? 이런 걸까 저런 걸까 고민하다 결국 퇴근길에는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들린 서점은 조금 달랐다. 책을 고르고 의자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글이 술술 읽힌다. 늘 새로운 책이어서 그런지 내용도 눈에 잘 들어오고 책에 쉽게 빠진다. 정독하지 않고 스르륵 넘겨도 쉽게 읽힌다. 특히 그동안 전자책에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손에 종이가 닿는 느낌이 좋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서그럭 소리도 좋다. ‘책을 읽으세요'의 마음으로 공간을 조성해서 그런지 서점의 조명도 분위기도 참 책 읽기 참 편하다.


퇴근길에 작은 휴식처가 생겼다. 이제는 오프라인 서점을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삭스, 2017)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다룬 사례가 나온다. 온라인 유통업계의 강자인 아마존이 뉴욕의 맨해튼에 오프라인 서점을 낸 거다. 전자책이 좋고 익숙한 줄만 알았던 밀레니얼 세대도 결국 손에 닿는 책의 촉감을 잊지 못한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Photo by John Michael Thomson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퇴근이 더 많이 기다려진다.


항상 퇴근은 기다려지는 시간이지만 요새는 책 읽을 생각에 그 정도가 심해졌다. 특히 요즘 ‘경제문맹 탈출'이라는 목표를 만들어서 더 빨리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다. 부작용인 듯 아닌 듯, 요즘 퇴근길이 즐겁고 기다려진다.




집에 가는 시간이 늦어져서 도로가 한산하다는 이점도 있다. 지하철에서도 앉아갈 수 있고 늘 막히는 올림픽 대로도, 한남대교도 막히지 않는다. 퇴근 후에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비어있지만 나의 내면은 가득 차 있다.


독서는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생각 있게 회사를 다니자. 생각 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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