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 주, 대학교 동기와 둘이서 제주도에 다녀왔다.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해안도로를 마음껏 달리던 순간과 술을 마시며 친구와 대화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이 친구와의 인연은 스물한 살, 대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사이에서 스물한 살은 어찌나 나이가 많게 느껴지던지. 재수생이던 우리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라는 신입생 OT에서 쭈뼛쭈뼛 "너 ㅇㅇ 친구라며?" 말을 걸었다. 나의 재수학원 친구와 고등학교 동창인 이 친구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학교 시절 우리는 '1분 1초'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었다. 매일 같은 수업을 듣고 밥을 먹던 사이였지만 지하철역에서 정문까지, 정문에서 또 지하철역까지 늘 함께 했다.
휴학 한 번 없이 꽉 채워 8학기를 다녔던 시간 동안에도 둘만 함께 했던 적은 없었다. 교환학생으로 친구가 떠나 있던 적도 있었고 내가 이런저런 일로 학교에 자주 있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 세 명이서 무리 지어 다녔다. 사실 나는 10대 때 오랜 시절 친하게 지냈던 '여자'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저릴만큼, 열아홉살에 친구에게 당한 배신은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래서 나는 늘 여자인 친구들이 어려웠다. 사람들은 동성친구가 더 편하다고 하지만 나는 늘 이성친구가 더 편했다. 아니, 동성친구가 어려웠고 눈치를 봤다.
그래서 이렇게 여자인 친구와 단 둘이 여행을 갔던 적이 없다. 처음이었는데, 정말 정말 좋았다.
우리는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으로 갔다. 사람이 북적이는 횟집으로 들어가서 방어회와 한라산을 시켰다. '우리 진짜 어른이다!'라며, 대학교 시절 이런 횟집에서 술을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음을 추억했다. 그리고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면서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몰랐던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 어느덧 직장인이 되었지만 끝이 나지 않는 진로 고민, 인간관계 그리고 삶을 살아가며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 글로만 적었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했다.
지금껏 늘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질 때에도 말하기보다는 글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이 날은 내 소리가 시간을 채웠다. 이렇게 마음 편히 내 이야기를 흘려보낸 건 당황스러울 정도로 처음이었다. 친구는 다정하게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었고 내가 말이 너무 많다고 조심할 때마다, 더 말해달라고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 동문시장의 어느 작은 횟집에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대화로 가득 매웠다.
대학이라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함께한 친구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타인에게 섣불리 말하기 힘든 내면의 생각들을 입 밖으로 편하게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의 깊어지는 생각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친구의 말처럼 우리의 관계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한 단계 더 넘어섰다. 그래서 참 좋다. 늘 그렇듯, 제주는 참 좋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