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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ajna Jun 04. 2022

올라가지 마세요.

디테일의 힘

  우리나라의 좋은 경치를 찾다 보면 그곳에 사찰이 빼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4세기경이고 그 후 1,7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하니 불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중 하나이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경관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지리산 둘레길에 있는 연곡사라는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천오 백 년 된 사찰 경내를 둘러보다 보니, 불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 중 가장 오랫동안 잘 보존되어온 '품격 문화'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산천과 잘 어우러진 건축물, 현판 글씨, 탑, 그림(탱화), 풍경, 단청 등을 보고 있자면 하나의 자연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연곡사 경내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범종각 입구에 세워둔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작은 사이니지였다. 기와 콘셉트의 주철 보드를 이용한 고급스러운 안내문은 방문객을 '대우' 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이지만)  

  

  우리는 평소 주변에서 수많은 시각 디자인물을 접하고 있다. 가게 간판, 플래카드, 안내문, 경고문 등이 경쟁하듯 눈을 어지럽게 한다. 특히 경고 사이니지의 경우 눈에 띄는 원색과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로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죄를 짓고 있다',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사적인 안내문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적인 안내문 조차도 소위 '안구 테러' 수준이 다반사이다. 아름다운 경관의 공원에 코팅된 A4 용지에 붉은색으로 '출입금지' 안내문을 붙여놓으면 이를 보는 사람도 싸구려 취급을 받는 듯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된다.


  연곡사를 둘러보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미술, 음악, 철학과 관련된 놀이와 경험을 많이 쌓으면, 우리나라가 여백 있는 품격사회에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나간다.  



 지리산 연곡사 입구
연곡사 경내
연곡사 단청(일부)
현각 선사 탑비(고려, 979년)
연곡사 소화전 디자인(치우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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