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BE의 인도 진출, K-pop의 '현지화' 전략으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Pratham이 선별한 인도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인도에서 K-pop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글이 인도 주요 언론인 인디안 익스프레스(Indian Express)에 최근 실렸습니다. "K-pop 레이블들이 인도에 큰 베팅을 하고 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인도 현지 언론이 K-pop 기획사들의 인도 진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줍니다.
2025년 9월 23일, BTS 소속사 HYBE가 뭄바이에 현지 법인 'HYBE India' 설립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사실 HYBE는 2025년 6월 30일에 이미 "9~10월경 출범을 목표로 현지 시장 조사와 법인 설립 실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었죠. 그리고 약속대로 9월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현재(2025년 12월) HYBE India는 오디션 관련 채용 공고를 통해 내년 초 전국 오디션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HYBE 방시혁 의장은 최근 인도 투데이(India Today)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초기 3~5년은 인도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현지 문화에 맞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뭄바이, 델리, 벵갈루루 등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보컬, 랩, 퍼포먼스 부문에서 인재를 발굴할 계획입니다.
"인도 현지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글로벌 관객들과 연결하겠다"는 '멀티-홈, 멀티-장르' 전략을 내세웠는데요. 여기서 '멀티-홈'은 단일 본사가 아닌 여러 지역에 현지 거점을 두고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린다는 의미이고, '멀티-장르'는 K-pop뿐만 아니라 현지 음악 스타일과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식 K-pop을 그대로 이식하는 게 아니라 인도 현실에 맞게 변형시키겠다는 전략이죠.
코리아 헤럴드(Korea Herald)는 2025년 12월 1일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JYP 엔터테인먼트가 현지 음악 시장을 겨냥해 인도 사무소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만 정확한 시기는 미정이라고 덧붙였죠.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보다 인도 현지 언론에서 더 크게 주목하고 기사화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보도되긴 했지만, 인도 언론의 관심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입니다.
한국 문화의 현지화, 행사와 식당에서 보인다
이러한 K-pop의 인도 진출은 사실 더 큰 트렌드의 일부입니다. 최근 인도에서는 한국 관련 행사가 급격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뉴델리에서 열린 '코리아 스트리트 페어'가 대표적입니다. VIBE사가 기획한 이 행사는 K-컬처와 비즈니스를 융합한 종합 축제로, 총 8만 명이 방문하고 현장 매출 10억 원 이상을 달성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한류 팬, 한국 기업, 인도 현지 바이어가 한자리에 모여 K-pop 공연, 한식 체험, 비즈니스 상담까지 진행됐죠. 이 정도 규모와 열기라면 인도 내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식문화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인도에서는 이미 중국 음식과 일본 음식이 현지화되어 대도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한식당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죠. 예전에는 인도의 한식당이 주로 한국인 주재원이나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도 현지인을 타겟으로 하는 한식당, 그것도 인도 사업가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인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 음식에 인도식 문화를 접목시키고 있죠.
방갈로르의 'Koriken'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22년 인도인 창업자 하산 파텔(Hasan Patel)이 설립한 이 한식 전문 QSR(Quick Service Restaurant) 체인은 서울 길거리 음식을 인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 라면, 만두 등을 제공하면서도 인도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게 메뉴를 조정했죠. 채식 인구가 많은 인도의 식문화를 반영해 채식(Veg)과 비채식(Non-veg) 옵션을 명확히 구분하고, 매운맛 수위도 현지 선호도에 맞췄습니다.
뭄바이에서도 인도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 구글과 애플 사무실이 있는 BKC 지역에 새로 지점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도 현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이미 한식을 경험해 봤다고 답했고, 수라트, 티루바난타푸람, 바도다라, 마이수루, 망갈루루 같은 Tier 2, Tier 3 도시에서도 한국 음식 주문이 전년 대비 59% 증가했습니다. 한국 음식이 인도인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 언론이 보는 K-pop 기획사들의 관심
그런데 K-pop 기획사들은 왜 인도 시장에 관심을 가질까요? 인디안 익스프레스 기사는 이에 대해 한국 내 K-pop의 '위기 신호'와 인도의 폭발적인 K-pop 성장세를 이유로 꼽습니다.
Circle Chart 2025년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내 음원 이용량(TOP 400 기준)이 전년 대비 6.4% 감소했고, 2019년 고점 대비로는 49.7% 감소했습니다. 앨범 판매량도 4,670만 장에서 4,240만 장으로 430만 장이나 떨어졌죠.
그런데 이런 수치가 정말 K-pop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것을 의미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국내 음원 소비 감소는 팬데믹 이후 시장 정상화, 콘텐츠 다변화, 그리고 글로벌 시장 집중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실제로 K-pop의 글로벌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고,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세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도달하면서 기획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합니다.
인도는 K-pop 열풍의 새로운 진원지인가?
인도의 K-pop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입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K-pop 인기도가 362% 급상승했습니다. Spotify 데이터에 따르면 인도인들이 플랫폼에서 K-pop 허브의 가장 활발한 청취자로 나타났죠.
숫자로 보면 더욱 매력적입니다. 인도 인구의 50%인 7억 명이 30세 미만이고, 음악 스트리밍 사용자만 1억 8,500만 명입니다. 이는 한국 전체 인구(5,100만 명)의 3.6배에 달하는 규모죠.
인도에서 K-pop은 어느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을까요? K-pop의 가장 강력한 팬베이스는 주로 도시 중산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델리, 뭄바이, 방갈로르 같은 대도시가 중심이고, 최근에는 Tier 2, Tier 3 도시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방갈로르는 델리, 뭄바이와 함께 K-pop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K-pop 댄스 아카데미가 생겨나고, 한국어 강좌 수강생이 늘어나는 등 K-culture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럼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가수와 곡은 무엇일까요? 여러 조사에 따르면 BTS가 압도적 1위입니다. 그 다음이 BLACKPINK이고, SEVENTEEN, Stray Kids, (G)I-DLE 등이 뒤를 잇습니다. 인기 곡으로는 BTS의 'Dynamite', BLACKPINK의 'How You Like That', 'DDU-DU DDU-DU' 등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인도에서 K-pop 영향을 받은 자국 팝 그룹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도 자생 팝 그룹의 부상?
지난 한 해 동안 인도에서는 세 개의 주목할 만한 팝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걸그룹 W.i.S.H.와 보이그룹 OutStation, 그리고 First5입니다. 이들은 한국 관계자의 직접적인 투자나 트레이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대신 K-pop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비주얼, 퍼포먼스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완전히 인도 주도로 만들어진 그룹들이죠. 음악 프로듀서 미키 맥클리어리(W.i.S.H.)나 그래미 노미네이트 경력의 사반 코테차(OutStation) 같은 인도/글로벌 음악 전문가들이 주도했습니다.
4인조 걸그룹 W.i.S.H.는 뭄바이 출신으로, 형제인 리야(Riya)와 심란 두걸(Simran Duggal), 그리고 조이 시다르트(Zoe Siddharth)와 수치타 시르케(Suchita Shirk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히트곡 'Bolo Bolo'은 유튜브에서 350만 뷰를 기록했고, Spotify Viral 50 인도 차트에도 진입했죠.
이들의 음악은 아프로비트, 바일레 풍크, EDM을 섞은 독특한 사운드에 인도적 색채를 입혔습니다. 힌디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섞어 쓰면서도, 인도 고유의 톤과 리듬을 녹여냈죠. 이는 우리가 보통 아는 인도 음악, 즉 볼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매우 독특하고 그들의 문화가 반영된 전통적인 인도 음악과는 또 다른 스타일입니다. K-pop의 글로벌 감각과 인도의 문화적 정체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이그룹 OutStation은 전국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5명으로 구성됐는데, 프라야그라지, 하이데라바드, 델리, 우두피, 고아 등 인도 전역에서 모인 멤버들입니다. 이들은 고아에서 한 달간의 강도 높은 부트캠프 트레이닝을 거쳤고, 아직 데뷔곡도 내지 않았는데 소셜미디어 팔로워가 2만 명을 넘었습니다.
First5는 유튜버이자 음악가인 악쉬 바글라(Aksh Baghla)가 온라인 오디션으로 만든 보이그룹입니다. 이들의 유튜브 조회수는 수백만 회를 넘어섰고, '너와 함께(Tere Saath)' 같은 곡에서 힌디어와 영어를 절묘하게 조합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KATSEYE 모델, 인도에도 적용될까?
HYBE의 구체적인 인도 전략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방시혁 의장의 최근 인터뷰를 종합하면 아마도 미국에서 성공한 KATSEYE 모델을 참고할 것으로 보입니다.
KATSEYE는 HYBE와 미국 유니버설 뮤직 산하 게펀 레코드(Geffen Records)가 2021년 합작 투자로 설립한 글로벌 걸그룹입니다. 2023년 'The Debut: Dream Academy'라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했는데, 전 세계에서 무려 12만 명이 지원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미국, 필리핀, 스위스, 일본 출신 6명의 멤버가 선발됐죠. 이 과정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Pop Star Academy: KATSEYE'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20명의 최종 후보들이 K-pop 스타일의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는 모습이 담겼는데, 보컬, 랩, 댄스, 외국어 학습, 체력 관리까지 포함된 종합 프로그램이었습니다. HYBE의 역할은 K-pop 트레이닝 시스템과 제작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이었고, 게펀 레코드는 미국 시장 진출과 글로벌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2024년 6월 데뷔한 KATSEYE는 Spotify에서 월간 청취자 3,340만 명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했죠. 이 모델을 라틴아메리카(SANTOS BRAVOS)와 일본(&TEAM)에서도 적용하고 있고요.
하지만 인도는 미국과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2025년 11월 기준 KATSEYE의 Spotify 월간 청취자는 3,340만 명입니다. 인상적인 숫자 같지만, 인도 최고 인기 가수 아리짓 싱(Arijit Singh)은 5,070만 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지 음악의 파워가 K-pop을 압도하고 있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인도 자생 팝 그룹들이 이미 K-pop의 장점들을 흡수해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W.i.S.H.의 멤버들도 "우리는 K-pop을 좋아하고, 데스티니 차일드와 푸시캣 돌스의 팬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여기에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도 문화를 팝 음악에 녹여내되 우리 방식으로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언어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도는 힌디어, 타밀어, 텔루구어, 벵갈어 등 수십 개 언어가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영어 중심의 K-pop이 이런 복잡한 언어 환경에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요?
이미 실패 사례들도 있습니다. 아르만 말릭(Armaan Malik)과 에릭 남의 콜라보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고, 딜짓 도산지(Diljit Dosanjh)와 잭슨 왕의 협업도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습니다. 블랙스완의 인도인 멤버 스리야나 X:IN 그룹의 아리아는 K-pop 업계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톱급 도달에는 실패했죠.
이런 선례들을 보면 외부에서 들어와 K-pop을 이식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K-pop 요소를 흡수해 자국화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수익원은 현지화, 문화적 정체성이 답이다
하지만 HYBE의 진출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핵심은 현지화에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인도에 들어와서 현지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며 전체 OTT 생태계 품질을 끌어올린 것처럼, K-pop 기획사들의 인도 진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투자금,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 글로벌 네트워크 같은 K-pop 인프라가 인도 현지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도는 이미 14억 인구 중 8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아직 6억 명은 연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들이 온라인으로 유입되면서 디지털 콘텐츠 소비도 폭증할 전망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W.i.S.H., OutStation, First5 같은 현지 그룹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K-pop의 시스템과 인도의 문화적 정체성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한국 음식이 인도인 사업가들의 손에서 인도식으로 재해석되며 성공하고 있듯이, K-pop도 같은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 인도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유튜브 영상을 직접 찾아보면, 우리가 예전에 알던 인도 음악이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볼리우드 음악의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율동 대신, K-pop 특유의 세련된 안무와 현대적인 비주얼이 두드러집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도 젊은 세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체성인지도 모릅니다. 전통적인 인도 음악과 글로벌 K-pop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결국 K-pop이 인도를 완전히 점령하기보다는 현지 음악과 공존하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HYBE India의 본격적인 활동 결과가 그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 같네요. HYBE의 인도 전략이 성공할지, 아니면 현지 그룹들의 성장세가 더욱 가속화될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