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은 왜 채식을 많이 하는데 뚱뚱할까?

숨겨진 '탄수화물 폭탄'의 진실

by Pavittra

Pratham이 선별한 인도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인도인 하면 흔히 '채식주의자'를 떠올립니다. 실제로 인도는 세계에서 채식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죠. 그런데 인도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의외로 뚱뚱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배가 나온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최근 세계적 권위의 Nature Medicine 학술지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 연구는 ICMR-INDIAB이 수행한 건데요. ICMR은 인도 의학연구위원회(Indian Council of Medical Research)의 약자로, 인도 정부 산하 최고 의학 연구 기관입니다. INDIAB는 'India Diabetes'의 줄임말로, 인도 전역의 당뇨병과 대사 질환을 조사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입니다.

인도의 주요 일간지인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2025년 12월 10일 "인도인이 먹는 음식과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 얼마나 쉽고 저렴한지"라는 칼럼에서 이 연구를 인용했습니다. 이 연구는 인도 전역 36개 주와 연방령에서 12만 1,077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조사인데요. 결과가 가히 충격적으로 느껴지다가도 내용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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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가 탄수화물? 인도인의 접시를 해부하다

ICMR-INDIAB 연구에 따르면 인도인은 하루 칼로리의 62%를 탄수화물에서 얻고 있습니다. 단백질은 겨우 12% 미만, 지방은 30% 미만입니다. 하루 칼로리의 거의 3분의 2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는 얘기죠.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더 심각한 건 이 탄수화물의 '질'입니다. 정제된 흰쌀, 정제 밀가루, 도정 처리된 곡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통곡물이 아니라 영양소는 빠지고 당지수만 높은 정제 탄수화물인 거죠. 쌀겨와 배아를 모두 제거한 하얀 쌀, 밀의 껍질을 벗겨낸 정제 밀가루가 인도인의 주식입니다.


'채식=건강'이라는 착각이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인들이 채식을 하니까 건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채식이 곧 건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게 이번 연구의 핵심이지요.

인도의 전형적인 채식 식단을 들여다보면 난, 짜파티, 비리야니 같은 고탄수화물 음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렌틸콩(달), 병아리콩 등 콩류가 있지만 비중이 낮아요. 게다가 기(ghee), 버터, 튀김 음식에서 나오는 포화지방 섭취는 과다합니다. 채소 섭취는 의외로 부족하고요.

결국 '채식'이라는 이름으로 탄수화물 폭탄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건강한 채식과 탄수화물 위주 채식은 전혀 다른 얘기죠. 인도인의 단백질 섭취는 전체 칼로리의 12%도 안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마저도 대부분 곡물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곡물 단백질은 완전 단백질이 아닙니다.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죠.

계란, 생선, 유제품, 고기 같은 고품질 단백질 섭취는 지역과 소득에 따라 매우 제한적입니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단백질 섭취가 현저히 낮아요. 단백질이 부족하면 포만감이 오래가지 않아 간식을 찾게 되고, 추가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게 됩니다. 이는 다시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죠.


설탕도 심각한 문제다

인도 36개 주 중 21개 주에서 설탕 섭취량이 권장 한도를 초과했습니다. WHO가 권장하는 일일 에너지의 5% 미만을 훌쩍 넘긴 거죠. 설탕의 출처가 또 문제입니다. 전통 과자인 미타이(mithai), 잘레비(jalebi) 같은 것들은 축제나 특별한 날에만 먹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일상적으로 소비됩니다. 드셔보신 분이 많이 있는 모르겠지만 정말 너무 단 디저트입니다. 달아도 너무 달아요.

여기에 짜이(chai)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짜이는 우리가 '밀크티'라고 부르는 인도식 달콤한 밀크홍차인데요. 한국인들도 인도에 가면 정말 좋아하고 매일 마시게 되는 음료입니다. 제가 인도에서 근무할 때 고객사를 방문하면 짜이를 마시는 것이 일종의 예의였습니다. 미팅이 많은 날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마셨죠. 흥미로운 건 그들이 항상 "With sugar or without sugar?"라고 물어봤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탕을 넣어 마시고, 문제는 짜이 한 잔에 설탕이 2~3 티스푼 이상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지요.


지방도 문제, 질이 아닌 양만 채웠다

인도인의 지방 섭취는 전체 칼로리의 30% 미만으로, 절대량은 국제 권장 수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질이 문제입니다. 포화지방은 과다하고 오메가-3 지방산은 부족한 상태죠.

한국에서도 2010년대 후반부터 인도의 기버터(ghee)가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기버터는 버터를 약한 불로 가열해 수분과 유고형분을 제거하고 순수한 유지방만 남긴 인도 전통 식재료입니다. 인도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는 수천 년간 기버터를 약용으로 사용해왔죠. 유당과 카제인이 제거되어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도 먹을 수 있고, 중쇄지방산(MCT)이 풍부해 빠른 에너지 공급과 포만감 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타민 K2도 풍부해 골다공증과 심장 건강에도 좋다고 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양'과 '균형'입니다. 기는 포화지방이 매우 높습니다. 적당량을 섭취하면 문제없지만, 인도 식단에서는 과다 섭취가 일반적이죠. 더 큰 문제는 생선, 견과류, 씨앗류에서 나오는 건강한 불포화지방과 오메가-3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올리브유, 아보카도 같은 건강한 지방원도 인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접근성이 떨어져요. 결국 포화지방은 과다하고 불포화지방은 부족한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는 거죠.

ICMR 연구에 따르면 4개 주(자르칸드, 차티스가르, 아루나찰프라데시, 마니푸르)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포화지방 섭취가 권장 한도를 초과했습니다. 건강한 지방 섭취의 핵심은 '종류의 다양성'과 '적절한 균형'인데, 현재 인도 식단은 이 두 가지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요.


숫자로 보는 충격적 결과

ICMR-INDIAB 연구가 밝힌 건강 결과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탄수화물 섭취가 높을수록 새로 진단된 제2형 당뇨병 발병률이 14% 더 높았습니다. 이는 다른 요인들을 통제한 후에도 나타난 명확한 상관관계죠.

정제 곡물은 13%, 도정된 통곡물은 9%, 첨가당은 14%씩 각각 당뇨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결합되면 위험은 더욱 증가하죠.

비만율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부 비만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일부 주에서는 성인 인구의 50%가 이미 복부 비만 상태라고 합니다. 복부 비만은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라 대사 질환의 강력한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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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수록 뚱뚱하다는 역설

또 하나의 현실적 문제는 경제적 부담입니다. 인도에서 계란, 생선, 닭고기, 우유는 쌀이나 밀에 비해 훨씬 비쌉니다.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배를 채우기 위해 값싼 탄수화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이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비만과 당뇨병에 더 취약한 것이지요.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영양실조 비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포만감은 얻지만 필요한 영양소는 결핍된 상태로 살이 찌는 겁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당뇨병과 비만 치료 비용이 훨씬 더 큽니다. 인도에서 당뇨병 치료에 드는 연간 비용은 개인당 수십만 루피에 달한다고 합니다. 예방적 영양 투자가 결국 더 경제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식탁 위의 변화, 직접 본 풍경

인도에서 생활하며 직접 본 풍경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인도 가정의 전형적인 식사는 큰 접시에 가득 담긴 비리야니나 짜파티, 그리고 작은 그릇에 담긴 커리와 달(렌틸콩)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거죠.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리필 탈리(Unlimited Thali)를 제공하는 곳들이 많은데, 밥과 난, 짜파티, 로티는 거의 무한으로 나오거나 양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단백질 반찬은 정해진 양만 나오는데 말이죠. 사람들은 배부를 때까지 탄수화물을 퍼먹습니다.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건강을 위해" 현미나 조·수수 같은 통곡물을 먹기도 하지만, 여전히 접시의 대부분을 곡물이 차지합니다. 단백질은 여전히 작은 반찬 수준이에요. 의식은 있지만 실천은 부족한 상태죠.


미래 전망, 개선의 실마리는 있다

과연 인도인의 식습관이 바뀔 수 있을까요? 긍정적 신호도 있습니다.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피트니스 열풍이 불고 있고, 고단백 식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곡물 부활 운동, 오가닉 식품 트렌드, 식물성 단백질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뭄바이와 델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헬스 카페와 샐러드 바가 인기를 끌고 있죠.

하지만 14억 인구의 식습관을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적, 문화적, 정책적 장벽이 여전히 높습니다.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까지 변화가 확산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ICMR-INDIAB 연구가 던진 경고는 명확합니다. 해결책은 단순히 흰쌀에서 밀이나 통곡물로 바꾸는 게 아닙니다. 전체 탄수화물 섭취가 줄어들고 더 많은 칼로리가 식물성이나 유제품 단백질에서 나오지 않는 한, 위험은 여전히 높습니다.

채식주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채식을 하느냐입니다. 탄수화물 폭탄인지, 균형 잡힌 식물성 식단인지가 건강을 결정하는 거죠. 정제된 쌀 한 그릇을 반으로 줄이고, 그 공간을 렌틸콩과 녹색 채소로 채우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인 인도 음식,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도 인도 음식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버터치킨과 버터갈릭난은 단골 메뉴죠. 강남, 이태원, 홍대 등에는 고급 인도 레스토랑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인도 요리를 한국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도 음식 특유의 진한 향신료 맛과 부드러운 커리, 고소한 난의 조합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습니다. SNS에는 인도 레스토랑 방문 인증샷이 넘쳐나고, 배달 앱에서도 인도 음식 주문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죠.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지네요. 버터치킨 한 접시에 버터갈릭난 두 장을 먹으면 탄수화물과 포화지방을 엄청나게 섭취하는 셈이니까요. 맛있는 건 알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인도 음식도 조금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난이나 비리야니는 양을 줄이고, 대신 탄두리 치킨이나 생선 커리 같은 단백질 메뉴를 늘리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습니다.


과연 인도가 이 '대사 불일치(Metabolic Mismatch)'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앞으로 몇 년이 인도 국민 건강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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