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EU FTA의 빛과 그림자

by Pavittra


"역사적 순간(landmark moment)", "모든 거래의 어머니(mother of all deals)".


1월 28일, 인도와 EU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선언하자 쏟아진 찬사입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양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고,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해냈다"며 기뻐했죠.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장관은 "14억 인도인을 축하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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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모두가 환호할 일일까요?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일까요? 18년간 질질 끌던 협상이 갑자기 급물살을 탄 데는 워싱턴 DC의 '그 사람'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거든요. 오늘은 'mother of all deals'의 속내와, 화려한 수사 뒤에 숨겨진 복잡한 계산들을 파헤쳐봅니다.


세계 GDP 25%를 잇는 거대한 만남


먼저 이 거래의 스케일부터 짚고 넘어가죠. 인도와 EU, 합치면 인구 20억 명입니다. 세계 GDP의 거의 25%

를 차지하고, 글로벌 교역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경제 권역이 하나로 묶이는 겁니다.


현재 양측 교역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2024~25 회계연도 기준, 상품 교역만 1,365억 달러(약 188조원)에 달합니다. 인도가 EU에 758억 달러(약 105조원)를 수출하고, 607억 달러(약 84조원)를 수입했죠. 서비스 교역까지 합치면 831억 달러(약 115조원)가 추가됩니다. 종합하면 연간 2,190억 달러(약 302조원) 규모의 거래가 오가는 셈이에요.


EU는 인도의 최대 교역 상대입니다. 미국이나 중국보다도 큰 파트너죠. 지난 10년간 양국 교역은 무려 90% 성장했어요.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아직 잠재력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고 말합니다. 이번 FTA로 2032년까지 EU의 대인도 수출이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요. 일부 분석은 양국 교역이 최대 65%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왜 하필 지금? 트럼프라는 변수


그런데 왜 2007년부터 시작한 협상이 18년이나 질질 끌다가, 갑자기 2022년부터 급물살을 타고 2026년 1월에 타결됐을까요? BBC의 분석은 직설적입니다. "트럼프 요인이 이 거래에 매우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도와 EU 양쪽 모두에게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있거든요.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한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먼저 25%, 나중엔 50%의 징벌적 관세를 맞았습니다. 2025년 5월부터 11월 사이 인도의 대미 수출은 21%나 급감했어요. EU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트럼프는 EU산 수입품에도 가차 없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죠.


CNN은 "미국이라는 전통적 파트너의 불확실성 앞에서, 인도와 EU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양쪽 모두 "미국 무역정책의 변덕스러움"을 경험했고, 이제는 서로 헷지(hedge)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서 인도와 EU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거래는 "반(反) 보호무역주의 선언"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트럼프식 관세 전쟁과 보호주의로 분열되는 시점에, 인도와 EU는 "우린 다르게 간다"고 외치는 셈이니까요. 야후 파이낸스는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EU와 인도, 트럼프를 거부하며 대규모 거래 체결."


그렇다고 이 거래를 순수하게 "반미(反美) 연합"으로만 볼 순 없습니다. 인도는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EU도 마찬가지거든요. 다만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겠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동한 거죠. 지정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입니다.


관세 99% 철폐, 그런데 철강은?


자, 이제 본론입니다. 협정의 골자는 명확합니다. EU는 인도 수출품의 99%에 대해 관세 특혜를 주고, 인도는 EU 수출품의 97%에 대해 5~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를 낮춥니다. 전문 용어로 "96.6%의 교역 품목 가액"에서 관세가 사라지거나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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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의 수혜가 큽니다. 현재 EU에서 최대 12%의 관세를 부담하던 인도 섬유·의류 수출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터키 같은 경쟁국들이 누리던 무관세 혜택을 이제 인도도 받게 됩니다. 제프리스 리서치는 인도의 섬유 수출이 현재 70억 달러(약 9조6천억원)에서 300~400억 달러(약 41~55조원)로 급증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600~7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신발, 보석, 해산물, 화학제품, 기계류도 혜택을 봅니다. 특히 해산물 부문은 EU가 연간 900억 달러(약 124조원) 규모의 시장인데, 인도는 고작 1.5%만 점유하고 있어요. 관세가 현행 0~26%에서 단계적으로 철폐되면, 새우·오징어·냉동 생선 등의 수출이 크게 늘 전망입니다.


기계류, 화학제품, 의약품도 주목할 만합니다. 기계에 최대 44%, 화학에 22%, 의약품에 11% 붙던 관세가 대부분 사라집니다. 인도 비즈니스 투데이는 "인도의 가장 가파른 관세 장벽이 협정에 포함됐다"며, "화학 부문이 산업 및 소비재 공급망 전반에서 주요 수혜자로 떠오를 것"이라고 분석했죠.


그런데 철강과 알루미늄 얘기는 쏙 빠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여기에 FTA의 가장 큰 함정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CBAM, 관세 혜택을 집어삼킬 괴물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됐습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을 EU로 수입할 때 탄소세를 부과하는 메커니즘이죠. 현재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만 적용되지만, 향후 전 산업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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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CBAM이 FTA 협정 밖에 있다는 겁니다. 즉, EU 제품은 인도에 무관세로 들어오는데, 인도 제품은 EU에서 여전히 탄소세를 내야 한다는 뜻이죠. 전문가들은 이를 "구조적 불균형"이라고 지적합니다. 관세는 내려가도 탄소세가 그 자리를 채워버리면, 실질적인 혜택은 반감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인도의 철강·알루미늄 대EU 수출은 이미 70억 달러(약 9조6천억원)에서 50억 달러(약 6조9천억원)로 줄었습니다. 야당인 국민회의당의 자이람 라메시는 "CBAM 면제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이번 FTA의 가장 큰 실패"라고 비판했죠.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CBAM이 다른 산업 수출품으로까지 확대되면, FTA로 얻은 이익이 완전히 상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그나마 몇 가지 안전장치를 확보했다고 주장합니다. EU가 제3국에 CBAM 관련 유연성을 제공하면 인도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최혜국 대우' 조항, 탄소 가격 인정 및 검증기관 인정에 대한 기술 협력 강화,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재정 지원 등이죠.


하지만 이건 '미래의 협력 약속'일 뿐, 당장의 비용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합니다. 글로벌무역연구소(GTRI)의 아타르 스리바스타바 소장은 "탄소세는 제품 단위로 부과되는데, 협력 플랫폼이나 5억 달러 규모의 기후 펀딩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수출업체들의 즉각적인 비용 압박을 덜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동차 업계의 엇갈린 반응


자동차 부문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FTA에 따라 EU산 승용차에 대한 기본 관세가 현행 110%에서 처음엔 35%로, 최종적으로는 10%까지 단계적으로 낮아집니다. 연간 25만 대 쿼터 내에서요. 얼핏 보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가격을 대폭 낮출 것 같죠?


그런데 업계 반응은 의외로 냉정합니다. "당분간 가격 인하는 없을 것(unlikely in the foreseeable future)"이라는 게 공통된 답변이에요. 왜냐고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루피화 약세입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루피화는 유로 대비 20%나 떨어졌고, 올해도 3~4% 추가 하락했어요. 관세가 내려가도 환율이 그만큼 오르면, 결과적으로 수입 원가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올라갑니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는 2026년 내내 분기마다 2%씩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죠.


둘째, 인도 럭셔리카 시장의 95%는 이미 현지 조립(CKD) 방식입니다. 완성차 수입(CBU)은 고작 5%예요. CKD 차량의 관세도 16.5%에서 8.25%로 절반 떨어지지만, 이 역시 환율에 상쇄될 가능성이 큽니다.


셋째, 전기차는 처음 5년간 혜택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리고 2,500만 루피(약 3,450만원) 이하 대중 차량도 사실상 FTA 적용 범위 밖이에요. 인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측의 민감성을 고려해, EU는 인도에서 2,500만 루피 이하로 팔릴 가능성이 있는 차량은 수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세그먼트는 인도 승용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국내 제조사들이 강하며,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럭셔리카 가격 인하 없음, 대중차 보호 유지"라는 게 현실입니다. 실제로 협상 타결 당일인 1월 28일, 인도 자동차 주식들은 일제히 하락했어요. 마힌드라는 4.2%, 마루티 스즈키는 1.5%, 타타모터스 승용차 부문은 1% 떨어졌죠. 투자자들은 "경쟁 격화"를 우려한 겁니다.


오히려 가장 큰 수혜자는 자동차 부품 업체들입니다. EU는 인도의 최대 부품 수출 시장으로,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하거든요. 2025~26 회계연도 상반기에만 37억3천만 달러(약 5조1천억원)어치를 수출했고, 전년 대비 11% 늘었습니다. 인도자동차제조협회(SIAM)의 샤일레시 찬드라 회장은 "시장 접근성 확대와 국내 제조업 육성 간의 균형을 맞춘 신중한 접근"이라며 환영했습니다.


농업은 기회인가, 위협인가?


농업 부문은 양날의 검입니다. EU는 인도산 가공식품, 차, 커피, 향신료, 포도, 양고기 등에 관세 인하를 제공합니다. 특히 피클, 오이, 스위트콘, 건조 양파 같은 품목들도 포함되죠. 동시에 낙농, 곡물, 가금류, 대두박, 일부 과일·채소 등 민감 품목은 관세 인하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습니다. 인도 정부는 "어떤 FTA에서도 낙농 양보는 한 적이 없다"며 소농 보호 의지를 강조했어요.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이 인도 농업을 "물량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전환시킬 기회라고 봅니다. 주아리 인더스트리의 아타르 샤합 상무는 "EU 시장 접근성 개선은 수출 지향적 부문에 큰 기회를 제공하며, 식품 안전·추적성·지속가능성 기준 채택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걱정도 있습니다. 소규모 농민들에게는 EU의 엄격한 보건·안전 기준이 높은 준수 비용으로 다가올 수 있거든요. 인프라 투자, 농민 조직화, 교육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호만 받고 경쟁력은 키우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죠.


달콤한 약속, 씁쓸한 현실


고얄 장관은 "이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섬유, 신발, 해산물, 농산물 가공, 자동차 부품, 기계, 화학, 의약품 등 많은 산업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겁니다. 특히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수출 증가는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니, 거시적으로는 긍정적이죠.


EU도 윈윈입니다. 연간 최대 40억 유로(약 5조5천억원)의 관세 절감 효과를 누리고, 2032년까지 대인도 수출을 2배로 늘릴 수 있으니까요. 특히 와인, 증류주, 맥주, 고급 자동차, 산업 장비 수출이 늘 전망입니다.


하지만 CBAM이라는 '코끼리'는 여전히 방 안에 있습니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 같은 핵심 산업이 탄소세 부담에 허덕이는 동안, EU 기업들은 인도 시장에 무관세로 진입합니다. 이 불균형이 시정되지 않으면, 관세 인하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희석될 겁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겁니다. 인도는 CBAM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자체 탄소 가격제가 없고, 배출량 추적 시스템도 미비한 상황에서, 유럽의 엄격한 탄소 회계 요구사항을 어떻게 충족할 건가요? 텔랑가나주 산업부의 아우자드 샤이크 부국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CBAM을 무역 장벽으로만 볼 게 아니라, 물류와 공급망을 미래형으로 만드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국 이번 FTA는 '출발점'입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라는 외부 충격이 18년간의 교착을 깨뜨렸고, 인도와 EU는 서로에게서 "미국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뒤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죠.


앞으로 법률 검토를 거쳐 2027년쯤 발효될 예정인데, 그때까지 인도가 CBAM 대응 역량을 얼마나 키우느냐가 이 '모든 거래의 어머니'의 진짜 성적표를 결정할 겁니다. 그리고 그 성적표는 단순히 무역 수지로만 평가되지 않을 겁니다. 탄소 중립이라는 21세기 가장 큰 과제 앞에서, 인도가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험지이기도 하니까요. By.프라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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