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핑크시티 자이푸르에서의 결혼식

영화같은 인도 부자들의 결혼식을 경험하며

"미스터 프라탐, 꼭 와야해! 이번 결혼식에 너가 안오면 정말 실망할꺼야!"

한달 전 부터 몇일 사이로 계속 전화가 오고 문자도 왔다. 인도에서 크게 철강 유통사업을 하는 루치르의 연락이었다. 5월말에 본인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으니 꼭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사촌여동생 결혼식까지 참석해야하느냐 라고 치부했는데, 옆에서 직원들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중요한 고객사이니 꼭 참석해서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원들도 옆에서 이렇게 설득하는 판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시간이 점점 다가오니 아마도 루치르가 고용한 결혼 이벤트 회사(?) 담당자가 계속 연락이 온다. 장소는 인도 라자스탄주의 자이푸르에서 가장 좋은 5성급 호텔에서 이루어지고 숙박 비용, 식사 비용 하물며 운송 수단까지 모두 지원한다는 것이다. 호텔 이름을 알려주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하룻밤에 30만원이 넘는다. 인도에서 30만원이 넘는 호텔은 말그대로 초호화 호텔이라고 할 수있다. 원래 인도 결혼식은 이런건가?

루치르 집안은 대대로 철강사업을 하는 말그대로 부자 집안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번 결혼식의 형태가 인도 부자들이 즐겨하는 Destination Wedding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집안은 해외에서 하기도 하고 물론 이때도 초대하는 지인들의 모든 비용을 지원한다. 인도 최고 부자인 릴라이언스 암바니 회장도 딸을 결혼시킬때 초호화 결혼식을 했다는 뉴스는 이미 유명하다.

인도 결혼식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중 2~3일이 중요한 기간이라고 했다. 루치르는 그날에 맞춰 호텔에 모든 지인을 초대하였다. 자이푸르에 가기위해서는 새벽 비행기를 타야했다. 4시 30분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밖에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이번 출장은 니틴과 함께했다. 니틴은 내가 가장 아끼는 팀장중에 한명인데, 영리하면서도 겸손하다. 그리고 부지런하기까지 하여 내가 많이 신뢰한다. 새벽이라 차도 막히지 않고 공항에 금방 도착했다. 자이푸르는 아메다바드에서는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로 가야했다. 1시간 30분이나 인도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는 타는 것은 꽤나 용기를 내야하는 일인데, 그나마 믿음직스러운 인디고 항공사이기에 그냥 몸을 실었다. 도착까지 별일은 없겠지 하고 걱정하다 졸다 보니 안전하게 도착하게 되었다.

자이푸르는 예전 자이 싱이라는 왕이 통치했던 왕국으로 지금은 라자스탄주의 주도이다. 도시에 들어서면 온통 핑크 (사실 주홍색에 가깝다) 색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건물들이 보인다. 그래서 핑크시티라고 불리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하와마할, 아메르포트, 잔타르만타르 등 과거 왕국답게 문화유산들이 풍부하여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자이푸르에 도착하니 9시도 안되어 바로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에 갈 수는 없었다. 인근에 신규 거래처 몇개를 방문하니 시간이 벌써 2시가 넘어있었다. 우리는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의 규모는 엄청났고, 말 그대로 5성급 고급 호텔이었다. 부랴부랴 우리를 초대한 루치르를 찾아 가니 엄청 환영해준다. 환영의 꽃다발은 물론이고 사진도 여러장 찍어대고 여기저기 가족과 지인들을 소개시켜 준다. 모든 것들은 결혼식과 손님들에게 초점이 맞춰였다. 체크인도 과정도 필요없이 특별한 나무로 만든 룸키가 별도로 지급되었고, 방에 들어가보니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웰컴 스낵은 물론이고 그들의 이름으로 준비된 각종 기념품과 선물이 눈에 들어온다. 결혼 당사자들 보다 손님인 우리가 더 축하받는 느낌인데 한국인인 나로서는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루치르는 아침, 점심, 하이티, 저녁 등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였다. 저녁에는 메인 이벤트가 열리니 꼭 나와서 축하해 달라고 했다. 니틴에게 부자들의 결혼식에 대해서 여러번 들은 탓에 많이 기대가 되었다. 결혼식에 어울리게 정장으로 옷을 갈아 입고 저녁식사를 하니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깃발과 북을 들고 오는 남자들과 결혼식을 축하할 여성 댄스 수십명이 모여서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만 입장할 수 있는 대형 홀에 세계 각지의 음식과 테이블마다 요리사가 배치된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 채식이었지만 인도식은 물론 양식, 중식, 일식까지 준비된 완벽한 고급 부페였다. 저녁시간이 되니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척 멋지고 아름다운 인도의 선남선녀들이 모여있다. 이제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가 슬슬 연출되었다. 9시가 되니 저 호텔 정문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밴드 음악소리와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격렬하게 춤을 추며 신랑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춤사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격렬했다. 정말 기쁨의 춤사위였고, 과연 본인일이 아닌데도 저렇게 즐거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신부는 호텔에 대기하고 있는데, 신랑이 신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형국인거 같았다.

드디어 왕의 모습을 한 신랑에 호텔 정문에 들어서니 아까 리허설했던 댄서들이 그를 맞이한다. 정말 왕이 입장하는데 화려한 음악과 춤으로 그를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댄서들의 춤사위는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30분 정도 신랑을 위한 환영식(?)이 끝나갈때 쯤 되니 정면에 있는 대형 문이 드라마틱한 음악과 함께 열렸다. 신부가 입장하는 순서였는데, 금번 결혼식의 클라이막스였다. 신부는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양 옆에 두고 함께 걸어나왔으며 그 뒤에는 루치르를 비롯한 사촌 오빠들이 꽃으로 만든 장식품을 들고 걸어나왔다. 스테이지로 향하는 신부와 신랑이 만나는 순간 저 분위기는 최고조에 오르며 어마한 규모의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여기저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아름다운 신랑과 신부 그리고 그 위를 촬영하는 드론. 내가 경험했던 인도와는 정말 달랐다. 이런 본식(?) 행사는 이렇게 몇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경건한 분위기가 아닌 매우 축복스럽고 행복한 자리였다.

“이 결혼식 비용은 모두 신부측에서 부담하는게 전통입니다“ 니틴은 나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전해준다. 결혼식 자체는 동네에서 하는 일반인의 경우에도 신부측에서 모두 부담한다고 한다. 호텔 비용, 음식, 손님 숙박비, 어마어마한 규모의 결혼 행사 등 모두 신부측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인도에서 남자의 인생은 딸의 결혼식을 잘 치루는게 목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도에서의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고 애틋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모는 대출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한다. 물론 최근에는 세대가 많이 변하여 간단한 결혼식을 하는 인도인들도 있지만 아직도 인도의 결혼식은 이렇게 화려하고 성대하다.

본식이 끝나고 홀로 이동하여 모든 손님들이 신랑 신부를 찾아가서 일일히 덕담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루치르와 함께 신랑신부를 찾아가서 축하 인사를 전하고 사진도 찍었다. 손님이 너무 많으니 사진찍는데만 몇시간을 쓴다고 한다. 결혼식이 당연히 새벽에 끝나는 이유다. 인도에서 결혼식은 가족의 대형 행사이다. 대가족 체제인 인도에서는 사촌동생은 친동생과 마찬가지이다. 큰아버지는 모든 가족을 부양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큰아버지를 아버지와 같이 여기는 이유다. 신부가 들어설때도 온 가족이 함께 입장한다. 우리네와 조금 다르지만 다가오는 감동은 비슷했다. 핑크시티인 자이푸르에서의 경험은 인도를 한층 더 이해하게 해주었고, 결혼식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게해주었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아메다바드로 갈 비행기를 타려고 보니, 어제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꽤 보인다. 이 중 몇명은 나에게 다가와서 몇마디 얘기도 건냈든데 모두 루치르가 잘 아는 철강업을 하는 오너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