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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모텔을 장악한 인도 구자라트 파텔 가문

미국 모텔의 60%는 모두 인도 구자라트 파텔 (Patel) 가문

by Pavittra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구자라트 아메다바드 공항의 공식 명칭은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 국제공항이다. 발라브바이 파텔은 구자라트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자 전 부총리로 영국에서 독립 후 인도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위인이다. 간디도 구자라트 출신이고 인도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살아본 입장에서는 이곳 구자라트에서는 간디보다 파텔이 더 영향력이 있고, 유명하다.


아메다바드에 지내다 보면 파텔(Patel) 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만나볼 수 있다. 파텔은 인도 구자라트를 근거지로 하는 농업을 하던 가문(?) 혹은 성씨인데, 이들의 끈끈함과 자부심은 매우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이씨, 김씨 등의 성이 많은 거처럼 이곳 구자라트에서는 파텔이라는 성이 매우 유명한 것이다. 얼마 전 우리회사 직원인 비샬 파텔과 대화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이 가문은 가족 중 1명은 무조건 해외로 유학시키기 위해 온 가족이 뒷바라지를 하고 유학을 마친 자녀는 나머지 가족을 나중에 돌봐줘야한다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중 한명은 멀리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 나가 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모텔의 60%는 인도 파텔 커뮤니티 소유라는 것이다. 어떻게 인도사람들이 더군다나 특정한 가문이 미국 모텔 산업의 대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일까?


2011년,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와 찰리 멍거 부회장이 연례 회의를 위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본사에 도착해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멍거 부회장의 부동산에 대한 한 가지 특별한 답변은 회의장 분위기를 색다르게 만들었다.


"인도에서 온 파텔족은 모든 모텔을 사들이며, 여러분보다 모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빌어먹을 모텔에 살고 있습니다. 한 푼이라도 벌면 모텔을 고쳐서 다른 모텔을 사죠. 파텔과 경쟁하고 싶어요? 난 하지 않겠습니다!" 파텔 커뮤니티의 미국 모텔 및 부동산 장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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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이후 미국의 모텔 환경은 구자라트계 미국인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으며, 실제로 오늘날 미국 전역 모텔의 60% 이상을 인도 구자라트 파텔 커뮤니티가 소유하고 있다. 가족이 운영하는 모텔이 이 커뮤니티의 천문학적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1920년대부터 구자라트주 수랏의 수십 가구는 이 지역의 농장을 돌보는 것만으로는 가계를 부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며, 형들이 농장을 지키는 동안 동생들은 아프리카, 파나마,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등 당시 인도인에게 비자가 필요 없는 영국 식민지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해외로 떠났다. '수랏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구자라트 출신 파텔은 어떻게 캘리포니아에서 호텔 사업을 시작했는가의 저자인 마헨드라 도시는 특히 나란지 파텔, 칸지 만추 데사이, 비쿠 박타 등 세 명의 파텔이 다른 구자라트인들이 장벽을 허물고 미국 모텔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얘기한다. 1942년, 그들은 일본인이 주인이던 낡은 숙소인 호텔 포드에 살았는데 당시 세계대전을 이유로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이송하였다. 호텔 포드를 운영하던 일본인 여성은 자신이 없는 동안 호텔을 운영할 수 있는 데사이와 바크타에게 사업을 매각했다. 데사이는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농장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며 구자라트에서 온 다른 남성들을 데려왔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때까지 자신의 모텔에서 먹고 자며 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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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텔 커뮤니티는 본토에 있는 가족, 사촌 등을 한명씩 불러모아 아메리컨 드림을 완성했다. 모텔에서 굳은일은 모두 가족이 맡아서 하며 전혀 인건비가 들지 않았다. 그들은 구자라트인들은 채식주의자로 어떻게 보면 식재료도 들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몸에 베어있는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꾸준히 사세를 늘려갔다.


당시 파텔 커뮤니티를 성장하게 해준 비밀 중 하나는 '無 계약서'로 악수로만 이루어지는 커뮤니티 내 대출 문화였다. 그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악수 한번 만으로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며 새로운 투자를 할수있게 도와주었고, 실제 이러한 대출에서 돈을 떼이거나 문제가 있었던 경우는 없다고 한다. 1950~1960년대 이렇게 서로의 도움을 통해 파텔 커뮤니티의 모텔 사업을 지속적으로 성장해갔고, 사업이 성장하면서 또 다른 파텔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


미국의 파텔이 모든 역경을 딛고 기록적인 시간 내에 성장한 것은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긴 하다. 멍거의 말처럼 부동산 업계에서 파텔 부부와 감히 경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구자라트계 미국인 커뮤니티가 수십 년에 걸쳐 변화하면서 모텔 업계도 외부인이 아닌 다음 세대의 야망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현재 3세대 파텔들은 모텔사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성공한 모텔 사업가 수라즈 파텔은 "인도에서 우리는 모두 농부였습니다."라고 회상한다고 한다. "이 나라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자녀는 교육을 받고 부를 쌓는 것이 자연스러운 발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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