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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하려면 이들처럼

인도 Shapoorji Pallonji 그룹 이야기

by Pavittra

인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은 한국에서도 워낙 유명해서 다들 잘 알것이다. 얼마전 인도 경제지 FORTUNE India 에서는 23년 인도 부자 순위를 발표 하였는데, 역시 1위는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이고 2위는 아다니의 고땀 아다니 회장이었다. 머 두 사람은 워낙에 월드클래스로 활동하는 사람들이어 특별히 놀랍지도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5대 재벌이라고 부르면서 부자 순위는 최소 5위까지는 유명한데, 인도는 워낙 1위, 2위가 강력해서 3위 부터는 그동안 크게 빛을 받지 못하였다. 3위가 누구인지 잘 천천히 읽어보니 여러 재미있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23년 포춘인디아가 발표한 인도의 3번째 부자는 RS 284,712 Crore (한화 약 46조원) Shapoorji Mistry 회장으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설 회사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 집단 shapoorji Pallonji (SP 그룹)의 회장이다.

보통 부자 서열은 포브스지에서 많이 발표하는데, 이후 포브스지에 나온 서열과는 다소 다르지만 이번에 발표한 포춘지 발표는 영국 블룸버그 인덱스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주식 평가액 기준에 따라 서열은 많이 달라졌지만 샤푸루지 미스트리가 인도 최고의 부자 중 한명인 것은 확실하다. SP그룹은 나도 많은 거래를 해왔던 회사여 실적이 그리 좋지 않은것을 알고 있었는데, 부자인 이유가 무엇일까? 사업소득이 아닌 투자소득임이 분명했다.


Shapoorji Pallonji 그룹의 역사는 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뭄바이에서 태어난 파르시 계열의 팔론지 미스트리는 파트너와 함께 1865년 Little Wood Pallonji라는 조그만 건설사를 시작한다. 첫 수주한 프로젝트는 본인이 지내더 초트니 지역의 도로 포장 사업이었는데, 당시 2,000루피 규모의 이익을 안겨준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 2,000루피가 지금의 대기업 SP 그룹의 시작이었다. 이후 뭄바이에 저수지 및 상하수도 공사를 실시하여 100년간 뭄바이 한 지역에 물도 공급해왔다. 1917년 팔론지는 아들 샤푸르지를 사업에 참여시키며 회사 이름을 지금과 같은 Shapoorji Pallonji로 바꾸었다. 이후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그의 아들 팔론지 미스트리는 2012년까지 회장직을 유지하며 SP 그룹의 전성기를 이끈다. 팔론지 미스트리는 한때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인이자 최고 부자 중 한명이었으며 여러 사회 공헌을 통해 존경받는 경영인이었다. 그는 2016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라납 무케르지로부터 가장 영예로운 상인 Padma Bhushan Award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그의 큰아들 샤푸르지 미스트리가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큰 아들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땄다. 아마도 파르시 집안의 전통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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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론지 회장(좌) 라탄타타와 사이러스 미스트리 당시 타타선즈 회장(우)

SP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설 및 엔지니어링 회사이다. 그들이 만든 랜드마크 건설 작품은 수도 없이 많고 그것들은 인도 역사와 함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뭄바이 센트럴역, 봄베이증권거래소, 인도중앙은행 건물, 타즈마할호텔 신축건물, 임페리얼 타워, 오베로이 호텔 등 유명한 건물뿐아니라 중동, 아프리카를 포함한 해외에 많은 건물과 25개 이상 자동차 부품 공장을 건설했다.


사실 SP그룹을 얘기할 때 사업보다 먼저 나오는 얘기가 바로 타타그룹과의 관계이다. 그들이 타타그룹의 최대 개인주주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로 인해 큰 부를 축적한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혹자들은 미스트리 가문이 바로 타타 지분을 처음부터 매입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25년, 타타의 막역한 친구이자 사업가였던 프람로즈 에둘지 딘쇼는 위기에 처한 타타하이드로와 타타스틸을 구하기 위해 타타그룹에 2천만 루피를 빌려준다. 그 대가로 딘쇼는 타타 선즈가 타타스틸에서 벌어들인 돈의 25%와 타타 하이드로에서 벌어들인 돈의 12.5%를 약속받았는데 이에 대한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고, 대신 그의 대출금은 지주회사인 타타선즈의 12.5%에 해당하는 지분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딘쇼가 죽자 1930년, SP 창업자의 아들 샤푸르지는 딘쇼의 상속인들로 부터 이12.5% 지분을 인수한다. 또한 이후 타타가문의 가족들로 부터 야금야금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여 최종적으로 18%라는 지분을 보유한 최대 개인 주주로 등극한다. 주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재기준 대략 200억불 수준의 가치라고 하는데 투자비 대비 300~400배의 수익을 얻은셈이라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장기 투자인가?


SP그룹의 최근까지도 실적이 그리 좋지 못해 사업적으로 언론에 나오는 것보다 작년 팔론지의 아들이었던 전 타타선즈 회장인 사이러스 미스트리이 교통사고 (그는 타타그룹 창립이래 두번쨰로 외부 인사가 회장을 차지했다.)로 더 많이 나왔던거 같다. 당시 그는 뒷자석에 타고 있었는데, 신문에는 뒷자석에도 안전벨트를 꼭 메야한다는 캠페인이 일어날 정도였고, 뒷자석까지 에어백을 설치해야한다는 법안까지 올리는 등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모디 총리와 각계각층에서 그의 죽음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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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러스 교통사고로 인한 에어백, 안전벨트 논란


사실 SP그룹은 나에게 멀지 않은 회사였다. SP의 그룹의 주요 계열사였던(?) 태양광 EPC 회사인 스터링앤윌슨에 올해만 수만톤의 철강재를 공급했다. 사실 공급전에 재무구조가 좋지 않아 많이 걱정하였지만 22년 릴라이언스가 이 회사 주식의 40%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안심하며 제품을 공급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회사의 구매임원의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났는데 이제 보니 성이 미스트리였다. 사실 당시에는 미스트리 가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빚이 너무 많아 슬림화를 하고 있는 SP그룹은 앞으로 어떻게 다시 회복할 지는 두고봐야 할거 같다. 현 회장인 샤푸르지는 22년에 아버지와 동생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그동안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다시 아버지 팔론지처럼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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