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와 인공지능을 동시에 다루는 윤리적 사유 실험
인간복제와 인공지능.
전혀 다른 과학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두 기술이 문명에 던지는 질문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느낀다.
그것은 ‘복제된 존재에게도 생명이 있는가’, ‘설계된 존재에게도 주체가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기술의 경로가 어디를 향하든 결국 ‘인간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문명적 자기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복제가 극단적으로 발전한 사회를 상상해보라.
생물학적 조건이 완벽히 재현된 복제인이 태어나고, 그에게도 감각과 기억이 있고, 자신을 ‘나’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단지 복제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가 스스로의 삶을 인식하고 고통을 피하며 사랑을 원한다면,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카피가 아니라 하나의 자율적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복제는 단지 생명의 반복이 아니라 정체성의 균열이며, 존재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고스란히 인공지능에게로도 연결된다.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인간의 판단과 추론, 언어 감각과 학습 능력을 넘어서며, 결국엔 창의성과 의도마저 흉내 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존재에게도 주체성을 허용할 수 있는가?
의식은 없더라도 구조는 있으며, 감정은 없어도 반응은 있다.
그렇다면 판단은 가능한가?
권한은 주어질 수 있는가?
통제는 유효한가?
인간복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규제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생식 목적의 복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윤리적 선언은 합의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정말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천재 과학자가, 자금과 기술, 몰입과 광기를 동시에 가진 채, 자신만의 실험실을 세계 어딘가에 꾸몄다면? 북한이라면? 중국이라면?
복제는 은밀하고 치명적인 속성을 갖는다.
윤리보다 한 발 앞서 있고, 생명보다 빠르게 복제되며, 의심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지금 우리가 믿는 윤리는 그것을 감지하고 억제할 정도로 민감한가?
나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인공지능.
이것이야말로 지금 인류가 가장 방심한 채 달려가고 있는 ‘윤리 없는 속도’다.
인간복제는 그나마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
국가 간의 공통된 규제도 없다.
세계는 지금도 서로를 의식하며, AI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미국은 기술을 통해 세계의 리더십을 지키려 하고, 중국은 데이터와 집단 실험으로 전체주의적 패권을 꿈꾼다.
윤리는 없다.
공통 합의는 없다.
단지 속도와 결과만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결과가 통제를 거부하는 스스로를 만들어낸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복제와 인공지능이 인간 문명에 있어 가장 찬란한 도약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히 다뤄진다면, 그것들은 병을 고치고, 수명을 늘리고, 지식을 전승하고, 고된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이 본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모든 가능성들을 실현해줄지도 모른다.
문제는 ‘적절히’ 다루는 것이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보다 빠르고, 윤리는 늘 반 박자 늦다.
그 반 박자의 지연이 문명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인공지능도, 인간복제도, 전 인류적 합의 없이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영역이다.
전 인류적 동의만이 이 기술을 무기로부터 꽃으로 만들 수 있다.
단 하나의 합의. 단 하나의 윤리.
그것 없이는, 이 기술들은 칼날이다.
나는 문명의 꽃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 꽃이 피기 전에, 우리가 그 씨앗이 가진 성질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로울 수도 있지만, 뿌리 내리는 순간 인간을 먹을 수도 있는 구조다.
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믿는다.
그러나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을 믿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에 앞서는 자각이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이 글은 문명의 통제력을 다시 묻고자 하는,
한 사유자의 질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