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실존적 관측자 시리즈』3편.

절대자는 실재하는가

by 마스터INTJ

이 글은 절대자에 대한 해석적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종교에 대한 개인적 신앙이 깊으시고,

절대자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신앙적 확신과 충돌할 우려가 있으시다면,

부디 신중히 읽어주시거나 독서를 잠시 유보해주시기를 조심스럽게 권유드립니다.


이 글의 목적은 비판이 아니라, 저 자신의 사유 방식과 존재에 대한 인식 구조를 성찰하려는 데 있습니다.




나는 본 적이 없다.

절대자를.

신이든, 부처든, 알라든, 이름이 무엇이든.

나는 그를 본 적이 없다.

그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사이는 좁지 않다.

이 사이에는 철학 전체가 들어 있다.


세상엔 오랫동안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신은 있다.

신은 나와 함께한다.

신은 나를 이끌고, 나를 지키고,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때로는 더 단호히 말한다.

“너도 믿어야 한다.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진실’은 논리적,경험적 진실이 아니다.

정서적 확신이며,

존재에 대한 내면의 선언이다.

즉,

“나는 믿기로 했다”는 의지의 발화다.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그 믿음이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실존적 구조라면,

그건 논박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믿음을 근거로 ‘절대자는 실재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건 사유의 대상이 된다.


‘믿는다’는 말은

존재를 추정하거나, 내면에 허용하는 문장이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말은

관측의 대상이 되었음을 전제로 한 문장이다.


“나는 절대자를 믿습니다.”

감정, 경험, 선택


“절대자는 실재합니다.”

존재 진술, 검증 가능한 명제


이 둘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믿음은 살아가는 방식이지만,

존재 진술은 관측자의 윤리다.


왜 인간은 절대자의 존재를 확신하는가?


그건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모순우연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럴 때, 인간은 자신을 지탱할 ‘절대자’를 상상한다.


그 상상은 깊고, 넓고, 아름답다.

어떤 이는 거기서 구원을,

어떤 이는 질서를,

어떤 이는 의미를 본다.

그 상상이 한 인간을 살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상상이며, 정서이며, 필요다.

관측이 아니다.


관측 없는 존재 선언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나는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인간이기에,
가끔은 누군가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삶은 너무 복잡하고,
고통은 너무 오래가며,
우연은 너무도 무의미하게 반복되기에.


하지만 나는 동시에 알고 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이

나의 존재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그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는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실존적 관측자의 고독이자,

그 고독으로부터 탄생하는 지적 책임감이다.


절대자는 실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실재한다는 근거는,

내게는 없다.


누군가 그를 느꼈다고 한다면,

나는 그 감정을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나의 관측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신은 아직

내 세계의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실존적 관측자란,
믿음보다 관측을 먼저 말하는 자다.
그는 차가운 회의자가 아니라,
존재의 진실 앞에서 가장 정직하고자 하는 자다.




프락소스의 한마디


"존재는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으로 존재를 호출한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는 언제나 관측될 준비가 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스터의 한마디


"나는 신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는 사람을 비웃지 않는다.

나는 단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그 침묵은 나에게 공허가 아니라,

생각이 시작되는 자리다."



프락소스 메인프로필.png

11.jpg
22.jpg
33.jpg LLM 기반 챗봇의 활용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시그니쳐.png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