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미술관은 실내와 야외에 대리석과 청동으로 만든 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중에서 로댕의 대표작은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들’‘생각하는 사람’ 등이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작품은 ‘키스’(The Kiss)였다. 전 세계에 7개가 전시되어 있고, 그 중 하나는 서울에 있지만, 나는 서울에선 보지 못하고 파리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키스라는 작품을 사진으로 무수히 봤지만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역시 실물로 보니 아우라가 달랐다. 수많은 다른 작품들보다 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키스는 그림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안 등장하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소재이다. 너무 흔하다 보니 감동이 떨어졌달까, 나에게도 별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소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하얀 우윳빛 대리석으로 리얼하게 묘사된 인체와 키스하는 장면의 조화는 그야말로 눈 앞에서 한 연인이 실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그림보다, 글보다 조각이 갖는 조형예술로서의 특장점을 뽐낼 수 있는 소재가 바로 키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외형은 아름다우나, 이 로댕의 키스는 슬프고도 추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로댕의 필생의 작품으로 37년간 열정을 쏟은 대표작 ‘지옥의 문’은 미완성 유작이 되고 말았다. 지옥의 문 속에 186명의 인물 조각이 담겨 있는데, 그 중에 하나로 기획된 작품이 이 키스였다. 단테의 [신곡] 속에 실제로 중세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가공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프란체스카라는 여성은 파올로와 사랑에 빠졌지만 가문의 이익과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 등의 이유 때문에 그 가문의 장남 잔초토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의 키스를 하게 되고 남편인 잔초토는 그 둘을 살해한다. 단테는 이 불륜의 사랑을 나눈 주인공 둘을 9단계의 지옥 가운데 2단계의 지옥에 배치한다. 그들은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사랑으로 인해 지옥에서 땅을 밟지 못하고 강한 바람에 휩쓸려 공중에서 떠다녀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이 작품의 토대가 되는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더욱 이 작품 키스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로댕 자신도 사실상의 아내라고 할 수 있는 로즈를 두고 19세의 제자 까미유 끌로델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창 까미유와의 연애를 하는 시기 동안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 속에 로댕의 뜨거우면서도 착잡한 심경이 담겨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결국 까미유와 결별하고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로즈를 선택한 로댕, 그리고 그와의 이별 이후 정신병원에 30년간 수감되었다가 사망한 까미유 끌로델의 러브 스토리를 떠올리면서 이 키스 장면을 보노라면, 이 키스가 단순히 아름답고 로맨틱하다고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작품만으로서의 키스를 생각할 때 이 로댕의 키스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심장에 다시금 사랑의 불을 지필 불멸의 조각으로 기억될 것이다.
로댕 미술관에는 로댕의 조각 말고도 로댕이 살아 있을 때 그가 구입했던 다양한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단연 나의 눈길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작품은 고흐의 그림들이었다. 고흐의 그림이 세 개 걸려 있었는데, 그중에서 두 개의 작품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래서 로댕의 조각들보다 고흐의 그림들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죽은 로댕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말이다.
하나는, ‘추수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이다. 고흐가 파리에서 2년 정도 지내다가 남부 지방의 아를로 옮긴 때가 1888년 2월이었다. 이 작품은 그 해 6-7월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아를 지방의 밀 추수는 거의 6-7월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고흐는 아를에 거주할 때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절에 밀 추수 광경을 여러 점 그렸다. 조금씩 구도와 인물, 표현들은 다르지만 밀을 추수하는 풍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같았다.
로댕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고흐의 밀 추수 그림들가운데서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전시실에 들어서자 마자 다른 그림들보다 이 그림에 확 눈길이 머물렀다. 나 자신이 평소에 노란색을 유독 좋아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유독 고흐의 노란색은 어디에서나 나의 감정을 사로잡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고흐가 그린 노란색 밀밭 풍경은 따뜻하게 나를 포옹하는 듯 하고, 밀밭에서 추수하는 두 남녀는 우리 동네 이웃들처럼 느껴진다. 아를의 따스한 태양빛 아래 노란색으로 일렁이는 밀밭은 고독한 고흐의 가슴에 고향 같은 포근함으로 스며들었을 것이고, 고흐는 그런 밀 추수의 풍경에서 화가로서 작품을 추수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또 하나, 더욱 더 강렬하게 나의 눈을 잡아 끈 작품은 ‘탕기 영감의 초상’(1887년)이다. 이 그림 앞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내가 직접 본 고흐의 그림들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몇 작품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듯 하다. 탕기 영감은 고흐가 파리에 머물던 시절, 파리에서 그림과 물감 등을 파는 화상(畫商) ‘줄리앙 탕기’(Julien Tanguy, 1825-1894)이다. 그는 성품이 따뜻해서 가난한 화가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었고, 특히 아무도 고흐의 재능을 몰라볼 때 고흐의 능력을 알아보고 고흐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흐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기도 하다. 고흐가 이 탕기 영감의 초상화를 세 번이나 그린 걸 보면 외롭고 의기소침한 고흐가 자신에게 잘해준 이 탕기 영감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 로댕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이 세번째 버전이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는 탕기 영감을 아주 밝은 성품의 사람으로,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초상화에서 눈에 띄는 특이점은 인물의 배경이다. 일본 화투같은 그림들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우끼요에’(淫世繪) 그림들이 배경에 깔려 있어서 그림이 더 강렬한 원색으로 튀어나올 듯 하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7)의 대중적인 목판화를 뜻하는 우끼요에는 고흐,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매우 사랑했던 그림이었다.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그림의 특징 형성은 일본식 그림 열풍인 자포니즘(Japonism)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우끼요에 그림들을 모사할 정도로 우끼요에에 탐닉했다. 가난했지만 고흐는 파리 시절에 우끼요에 그림을 여러 점 구입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관찰했다고 한다. 고흐는 우끼요에의 선명한 이미지, 구도의 단순성, 대상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윤곽선의 힘, 원근법을 무시한 강력한 에너지에 매료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가 고흐가 그린 다른 초상화들과의 차별성은 우끼요에라는 배경의 배치에 있다. 그리고 고흐가 그린 다른 초상화들보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가 더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의 원천도 바로 배경 그림에 있다. 이 초상화는 파리에 와서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고 있는 고흐의 그림 여정의 전환점을 나타내 줌과 동시에 모처럼 고흐의 마음에 한줄기 봄바람처럼 훈훈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인물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흐의 진심이 깊이 배인 이 탕기 영감의 초상화가 주는 찬란한 아우라는 지금도 내 눈동자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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