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있는 로댕 미술관은 1732년에 지어진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비롱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으로, 격조높은 본관과 더불어 넓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로댕의 조각 7,0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18개의 전시 방들 중 하나는 그의 제자요,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들을 전시하고 있다. 조각 뿐만 아니라 로댕이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들과 로댕이 수집한 고흐, 모네, 르누아르 등의 그림들도 전시되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갔었기에 로댕 미술관 곳곳은 푸르른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취할듯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로댕 미술관에서 눈에 띄는 첫 작품은 로댕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이다. 로댕 스스로도 자신의 무덤 위에 이 작품을 장식해달라고 했을 정도로 아끼던 작품이다. 이미 일본 동경에 있는 서양사미술관에서도 봤지만 로댕 미술관에서 보는 이 작품은 또 다르게 보였다. 아마 아람드리 푸른 나무들 사이에서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앉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각이든 그림이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배경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엔 단독 작품이 아니었다. ‘지옥의 문’이라는 미완성 대작 속에 위치한 한 인물이었다. 단테의 [신곡]의 지옥편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한 로댕은 지옥의 문의 제일 위에 세 망령을 배치했다. “지옥 문턱에 들어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단테의 글을 가리키는, 이들의 손 끝에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명칭이 ‘시인’이었다고 한다. 아마 단테를 모델로 상상해서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말은 복합적인 의미도 내포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곰곰이 돌아보며 삶을 노래하고 미래를 꿈꾼다는 점에서 모두가 시인일 수 밖에 없다.
이 사람은 지옥 문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미 지옥의 입구에 와 있기에 생각하기엔 늦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왜 내가 지옥에 와야 했을까? 에 대해서, 처절한 지난 날의 후회와 자책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몸 자세를 바로 추스르게 된다. 너무 늦어서 땅을 치기 전에, 오늘 현재 순간 순간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매일 매일을 부끄럽지 않게 꾸며가리라는 다짐을 다시금 한다.
로댕 미술관에서 로댕의 여러 작품들을 봤는데, 사실 가장 내 감정을 뒤흔든 작품은 로댕의 조각이 아니라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이었다. 로댕은 자신이 죽고 나서 로댕 미술관을 만들면 그 중의 방 하나는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들로 채울 것을 유언했다고 한다. 까미유 끌로델은 19세의 나이에 43세인 로댕을 스승으로 만난다. 재능이 있어도 여자는 공식적인 예술가로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절, 로댕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제자로 삼는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 제작 일부를 그녀에게 조금씩 맡기면서 서서히 그녀를 키워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둘은 사랑하는 연인 관계가 된다. 하지만 이미 로댕에게는 20년 전부터 사랑하는 여인 로즈 뵈레가 있었다. 로즈가 연상이기도 했고 재산이 있었기에 재정적으로도 로댕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둘은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을 뿐 사실혼 관계였고 아들까지 있었다.
까미유 끌로델도 로댕을 사랑했지만 로댕 역시 까미유에게 사랑을 약속했다. 로즈를 떠나서 까미유에게 가겠노라 각서까지 썼다. 까미유는 로댕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유산된다. 결국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로댕은 까미유와 이별하고 로즈를 선택한다. 까미유는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로댕과의 이별 후에 자신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정신적인 방황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족들은 49세인 그녀를 정신병원에 넣었고, 결국 까미유 끌로델은 30년 동안 바깥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는다.
까미유 끌로델이 만든 작품 ‘중년’은 이 슬픈 스토리를 알고 보니, 가슴 저미는 조각이었다. 젊은 여인이 떠나가는 남자에게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남자에겐 나이 든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감싸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 작품을 보면서 남자를 간절히 부르며 가지 말라고 손짓하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그녀의 찢어지는 가슴의 아픔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로댕 미술관의 추억을 뒤로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중년’이라는 조각을 사진으로 보노라면, 까미유 끌로델의 구슬픈 러브 스토리가 뇌리를 적시면서, 이 조각을 빚던 까미유 끌로델의 눈물젖은 손가락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로댕미술관 #로댕 #조각 #로댕조각 #까미유끌로델 #전시회 #미술관 #생각하는사람 #지옥문 #중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