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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Mar 17. 2023

이런 선물은 처음이야

오늘 아니면 할 수 없는, 오늘이라 더 기억에 남는

3월의 반이 지나가는 이때. 특히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기다. 바로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맞이하지만, 매번 설레고 기대된다. 그냥 무얼 해도 기분 좋은 날인데, 올해 생일은 좀 더 특별했다. 난생처음 받는 축하들. 형식이 어떤가를 떠나서, 그저 나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는 날로 만들어 준 것이다.



노란색 프리지어


무언가 축하해 주고픈 일이 있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불쑥 내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로 애용하는 것. 바로 꽃이다. 생일 전날,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를 위한 꽃을 샀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3월을 대표하게 된 노란색 프리지어. '새로운 시작'이라는 꽃말로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었다.


꽃을 사서 오래 이동하거나 바깥에 있어야 할 때에는 줄기를 감쌀 물주머니를 부탁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집에 가서 꽃병에 꽂을 예정이었으므로, 종이로만 가볍게 포장해 달라고 했다.


집에 있던 작은 꽃병에는 이미 다른 꽃이 있었기에, 이 프리지어를 꽂을 꽃병도 즉석에서 구했다. 바로 편의점에서 산 알로에 병음료. 하지만 음료를 마시기에는 배가 부른 상태였기에, 다음날인 생일 당일 아침에 마셨다. (그동안 꽃은 다른 물병에 잠시 꽂아두었다.) 라벨을 떼고 잘 씻어서 물을 담고, 프리지어를 무심하게 툭툭 꽂았다.


줄 때도, 받을 때도 기분 좋은 꽃. 올해 생일에는 나 스스로에게 선물해 보았다.




손바닥만 한 수첩


오후에는 가로수길로 나섰다. 먹고 싶은 수제버거를 점심으로 먹고, 근처에 있던 문구 브랜드 매장에 들렀다. 왠지 작은 수첩을 하나 사고 싶었다. 무언가 직접 손으로 메모를 하고 싶었는데, 펜은 있었지만 적을 수 있는 노트 같은 게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맘에 드는 크기의 수첩들이 보였다. 그 사이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SHOW YOURSELF', 'FIND ME :)'


'너 자신을 보여라.' '나를 찾아보아라.' 화자와 청자가 누가 되었든, 내 곁에 두고 응원으로 받아들이고픈 문장들이었다. 마침 이 디자인의 수첩도 내 손에 든 한 권밖에 없었다.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이후 베이커리에서 마들렌을 하나 사고, 중고서점과 옷가게에서 아이쇼핑을 했다.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아까 샀던 수첩과 펜을 꺼내, 아까부터 적고 싶었던 주제와 메모를 써 내려갔다.


"이미 내가 받은 선물"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과 축하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그것만으로 내 생일을 정의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이 메모를 적으면서, 이미 나는 많은 선물을 받았으며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되새기고 싶었다. 누군가 볼 것도 아닌데도 막상 적으려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름 한동안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 찍은 인생네컷


예전에도 한번 시도하려다 못했던 것. 바로 인생네컷 사진이다. 어느 일정 덕분에 나름 옷을 차려입었던 날. 인생네컷 부스 앞에서 머뭇대다 그냥 돌아섰었다. 이날도 위기가 있었으나, 왠지 모를 용기가 났다. '오늘 아니면 못할 것 같아.'


카페를 나와 지도 어플을 찾아보니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인생네컷 부스가 있었다. 왜 인생네컷 부스에는 커튼이 있을까. 왜 인생네컷 기계는 지폐뿐만 아니라 카드로도 계산이 가능한 걸까. 결심하고 오긴 했지만 찍지 못할 이유도 없음에 혼자 웃음이 났다. 부스에 들어서면서, 내부에 비치된 소품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색깔이 들어간 안경 하나만 골랐다.


여덟 번의 셔터 찬스. 그런데 시간은 왜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며, 그 속에서 왜 그렇게 뚝딱거리기만 했는지. 일행이 있었으면 나름 묻혀서 잘 지나갔을 텐데. 찍힌 사진들을 고를 때 어색한 표정들을 보며 참 난감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나인걸. 이렇게 혼자 사진 찍을 용기도 냈으니 장하다!




'생일축하' 이모티콘 파티


이날 하루 꾸준히 카카오톡 알람을 울려준 친구가 있다. 그 알람의 시작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내가 가끔 그냥 이모티콘만 보내도 이해해 줘. 하루종일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엄청 큰데 일 때문에 쉽지 않아. 이모티콘만 보내 축하해도, 축하하고 싶은 마음은 크다는 걸 알아줘.'


그렇게 틈날 때마다, 친구와의 대화창에 온갖 생일축하 이모티콘들이 올라왔다. '점심은 무얼 먹었느냐', '생일 잘 보내고 있느냐', '오늘 하루를 즐겨라' 하며 짤막하게 묻는 안부들도 함께였다. 이 친구만이 해줄 수 있는 축하 메시지. 존재 자체로도 감사한데. 잊지 못할 선물을 아주 제대로 남겨주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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