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을 먹은 당신이 있다
벼락을 먹은 당신이 있다
ㅡ젊은 날 내가 처음으로 당신에게 보여주었던 숲은
장미의 환영이었다. 그 붉은 화영花影의 잔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 당신은 새를 품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 숲을 떠나지 못하고,
어깨를 관통당하고도 조용히 새의 행방을 숨긴 저 무거운 입 안에는
뜨거운 불의 무늬가 들어 있다
숲은 나무를 숨기고
새를 은폐시킨 나무는
비상하는 상처의 무릎팍이 되어
백기를 흔들어도 소용없이 허구한 날
쓰러지는 일이 많았다
번번이 총성은 숲을 뒤흔들고
가지 사이로 난 좁고 투명한 길로
빠져나간 새들의 황망한 발자국과
이파리에 촘촘히 박힌
선지처럼 붉은 비명을
나무는 제 상한 몸으로 덮어
남은 체온을 보태주었다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는 시름의 날들
유리걸식하는 어린 새들의 불안한 잠을 위해
제 울음을 참고 가붓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당신도 한번쯤 혼절한 내 상처의 뒷목을
고이 받쳐주던 투명한 저녁의
통증이었던 적이 있다
욱신거리는 세간의 남루한 어깨를 들어 불면의 깊은 밤을 괴이던
촉촉한 베개가 되어준 적이 있다
저 무성한 잎과 같이 창궐하는
불안이 귀를 열고
우리의 고단한 잠을 뚝, 뚝 부러뜨리는
세상의 무서운 총구 앞에서
뜨거운 말을 삼키고 살아야 했던 당신 안에
느꺼운 날들의 옹이 많은 낙타 무릎이 있다
벼락을 먹은 나무 한 그루 있다
ㅡ벼락을 먹은 당신이 있다
< 2016 시와 소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