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을 먹은 당신이 있다

윌산동

by 니체


아! 발이 없는 것들, 저렇게도 무릎을 세우는구나

가파른 비탈을 엽맥처럼 깍지 낀 골목들이 마구 어깨를 겯고 아전인수로 각기 꽃무늬 잠뱅이를 받쳐 입고 앉아 멀거니 서로의 얼굴 화장을 지우고 있는 저녁답 늙은 미루나무 잎 진 가지 사이에 앉은 까치집처럼 엉성한 난간이 발판도 없이 폴짝 뛰어내릴 것만 같아 복사뼈가 시큰하다

건드리면 울컥 쏟아져버릴 것만 같은 물봉선처럼

축축한 날것들의 숙곳 저 절벽, 물길을 잘못 읽어 뭍으로 올라와 돌아나가지 못한 폐선처럼, 오래 전에 몰락한 나라의 낡은 전각처럼 기울어진 지붕 낮은 처마 끝 빨래줄에 걸린 빨래들이 타르초같이 형형으로 나부끼며 온몸을 뒤집어 전생을 털고 있는 바람의 안뜰, 고자누룩한 마당귀에 한뼘들이 손차양 위로 너끈히도 붉은 고추가 가을볕에 타고 공중 남새밭 푸른 애호박을 친 이랑에 손바닥만 하게 벙그는 잎사귀들로 일가를 이룬, 저 옹골찬 가랑이 사이 음문을 열고 어쩜, 벌나비 떼 그 많은 색신色身들을 들여 불을 밝혔을까 골목마다 깡마른 목젖같이 모두가 쿰쿰한 숫구멍이다

고구마 줄기처럼 턱턱 매듭진 돌부리 길을 털면 넌출지며 한넝쿨로 뽑혀나올 것만 같은 비썩 마른 세간들 얇디얇은 알몸의 실뿌리들이 곰실곰실 불을 켜고 그래도 밤이면 제 키만큼 한 마당을 열어 달을 맞는 초래청이라 제 어깨 위에 지붕을 얹어 하루종일 무등을 태워 백 리쯤을 걸어야 닿는 달집


저 뜨거운 달의 자궁 안에는 그 옛날 어린 참새들 풋잠같이 덜 익은 노오란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너머 둥싯한 밤의 물방앗간이 있어, 이슭에 더운 숨 꾹꾹 참으며 콩다콩닥 달빛 몰래 숨어든 얼레리 꼴레리들 하, 엿듣는 가마꼭지도 설핏해


ㅡ벼락을 먹은 당신이 있다

<2016. 시와 소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