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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ug 08. 2019

인간관계, 두께로 잴 수 있다면

당구의 세 가지 변수 ‘두께•당점•타법’으로 응용하는 삶


나는 당구를 좋아한다. 실력은 300점이다. 내가 당구를 배울 때만 해도, 300점 되려면 차 한 대는 팔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당구는 진 사람이 보통 게임비를 낸다. 하수 시절엔 게임비를 내고 배워야 했다. 지금이야 당구 아카데미가 많이 있어서 익히기가 수월하다.

내가 당구를 처음 접한 건, 1984년 고3 학력고사를 치른 후였다. 당시 300점 치던 동기로부터 배웠다. 처음엔 공책에 그림으로 가르쳐줬다. 당구 용어는 온통 일본어였다. 지금은 전부 한글로 수정됐다. 히끼(끌어치기), 오시(밀어치기), 우라마우시(뒤돌려치기), 오마우시(제각돌리기) 같은 이름들이다.

당구는 오해가 많은 게임이다. 흔히 ‘빗나간’ 청소년들의 출입처였고, 깡패의 아지트였으며, 일탈의 대명사였다. 담배로 찌든 환경, 승부에 불타는 집착, 현찰이 오고 가는 도박까지 당구장 문화는 질서 밖의 세상이었다. 드라마와 영화에는 폭력배들의 싸움터로 대개 등장했고, 큐대와 공은 폭력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너의 게임으로 꼽힌다. 가장 사회성이 강한 경기가 아닐까 싶다. 당구를 쳐본 사람이라면, 가장 대인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당구만 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꼽는다. 삶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짜릿함을 즐기는 게임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때 당구에 빠졌다.



당구를 제대로 즐기려면 공의 두께를 알아야 한다. 둥근 공에 두께가 있다니 의아할 것이다. 선수가 큐로 친 공이 다른 공을 칠 때 공을 가리는 면적의 간격이 두께다. 그 두께에 따라 공의 반사각과 진로가 달라진다. 내 공이 다른 공을 맞추는 데 있어 필히 익혀야 하는 감각이다.

당구에는 두께 외에도 큐로 공을 칠 때의 당점과 큐의 속도와 세기를 정하는 타법의 변수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당점과 타법은 큐질과 관련이 깊다. 둥근 공을 정면에서 원을 그려 볼 때 큐의 팁이 어느 위치에서 공을 치느냐에 따라 공에 전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타법 역시 세게 혹은 부드럽게 칠 때 힘은 달라진다.

당구를 치는 것은 늘 실패를 경험하는 일이다. 항상 쳐도 똑같은 경우가 없다. 특히 공의 두께는 늘 고민의 지점이다. 쳐놓고선 늘 후회하는 것이 공의 두께다. 거리에 따라서 두께의 감각은 달라진다. 공이 가깝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가까울수록 더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구를 잘 치려면 두께를 잡고 가는 방법이 있다. 공의 1/2 두께를 아예 가정해 놓고 당점과 타법을 가져가는 것이다. 두께라는 변수를 하나 줄일 수가 있어서 공을 치기가 수월해진다. 항상 이런 원칙으로 공이 놓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 가지 변수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방법이다.



삶의 태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간관계의 두께를 잴 수만 있다면 변수 하나는 잡고 가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고 가야 할 관계는 많다. 그때마다 그 사람과 어느 정도의 두께로 부딪치고 나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너무 두꺼운 두께로 세게 부딪치면 파탄이 나고, 너무 살짝 접촉할 때는 뒤돌아서 아쉬울 때도 있다.

변수가 많은 인생살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의 두께로 정해 두고 그를 대한다면 적어도 변수 하나는 줄이고 가는 것이다. 누구는 너무 가깝게 막 대해서 문제이고. 누구는 너무 멀리 두고 소원하게 해서 문제가 된다. 누구나 1/2 정도 두께의 관계를 일단 정해 두고 그 속에서 당점(언어)과 타법(사교술)을 구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당구는 어떤 종목보다 스피드가 눈에 들어오는 경기다. 대부분의 구기 종목들은 공의 회전과 속도에 몸이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당구는 그 반대다. 공의 속도와 시스템을 철저히 자신의 힘 안에 놓는다. 자신과 전가된 공의 에너지 사이의 편차를 본인이 잘 알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다.  


수구(공)는 곧 자신의 에너지고 분신이다. 목표(적구)를 향해 가는 길은 바로 자신의 길이기도 하다. 공의 진로와 이동은 자신이 몇 번씩 확인해 결정한 힘의 구사이고 결과다. 우리는 몇 백번씩 방향을 정하고 길을 가지만, 매번 오차를 확인하고 수정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또 다른 길은 수없이 나타난다.


당구는 평면적인 경기임에도 가장 공간적인 스케일을 갖는다. 집에 가서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은 어느새 당구대(다이)로 변해있다. 별자리를 헤아리듯 또 하나의 우주 속에서 또 다른 질서(길)를 찾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축구장, 야구장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지만, 당구는 우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희열, 통탄, 아쉬움, 쾌감을 준다.  


당구는 자아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게임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또 상대에게 넘어간 한 번씩의 선택의 기회가 너무나 평등하고, 친근하고, 미묘한 정서를 전달한다. 자신의 실력이 금방 드러나고 확인된다는 점, 승부욕에 따라 감정의 처리가 묘하게 출렁인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대인 간의 만남과 경기 태도는 언제나 쾌감과 맞닿아 있다.


많은 상상력, 수학과 물리학의 변용, 반전이 많은 경기인 당구는 매번 자신의 힘의 구사에 대해 평가와 성찰이 가능한 게임이다. 취미와 감성의 영역이 다시 재평가되고 있는 밀레니엄 시대에 당구만 한 재밋거리도 없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세계의 진수를 만끽하고 싶다면 당구에 도전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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