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자신의 행복찾기
요리란 무엇일까. 누군가 ‘이젠 지겹지 않냐’고 지나가듯 묻지만 오늘도 나는 칼을 든다. 요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보다 당장 요리해서 먹고사는 게 급하고 중요하다. 사실 대대손손 엄마들이 수많은 요리를 해왔지만, 정의가 무엇이 중했겠는가.
나도 어느덧 요리가 8년 차다. 그리 길지도 않은 기간이지만 그렇다고 취미로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아침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서 문득 드는 의문이 있다. 엄마들의 집밥에 관한 사연들이다.
집밥 하면 엄마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엄마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성장기에는 맛의 기억이 특별하다. 몸에 각인될 정도의 기억이다. 남자가 장가를 가도 엄마의 집밥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고부간의 묘한 신경전이 싹트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흔히 엄마는 먹기 싫어도 식구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때로는 요리하는 과정에서 간을 보거나 냄새를 자주 맡다 보니 음식 맛이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랜 세월을 요리하다 보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요리를 해보면 자신이 맛있어야 남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엄마가 싫거나 하고 싶지 않거나 맛을 못 느끼는 요리가, 어찌 타인을 맛있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된다.
나는 주관적으로 요리를 하는 편이다. 내 식단에 맞게 짜는 편이고, 최대한 정성 들여 맛을 내려 노력하는 편이다. 또 요리를 해서 내가 가장 맛있게 먹는다. 실제로 맛있게 요리하는 길을 찾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맛있을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하는 수밖에.
그리고 내가 한 거니까 실제로 내가 가장 맛있기도 하다. 요리를 하면 냄새에 중독돼 맛을 못 느낀다는 건 내 경험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말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여성이고 매일 반복되는 요리를 힘들게 하다 보니 나온 얘기를 그렇게 에둘러 표현했다면 모를까.
요리는 원래 시장기가 반찬이다. 시장하면 뭐든 맛있다. 식욕 자극 호르몬인 그렐린은 배고픔에서 본능적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건 대개 맛 자체보다 주위 조건이 작용할 때가 많다. 배고픔은 최고의 미각이다.
기다림도 식욕을 돋운다. 잡채가 대표적이다. 공정이 오래 걸릴수록 맛은 배가된다. 잡채는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대표적인 요리다. 특히 가장 핵심 재료인 당면이 삶아져야 잡채가 최종 완성된다. 그렇기에 기다림은 맛을 좌우하는 심리적인 기제다.
후각적인 반응도 맛을 부추긴다. 찌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퇴근 시각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나, 점심시간 무렵 건물 구내식당에서 끓는 찌개의 향은 억누를 수 없는 식욕을 줄지어 세운다. 각종 재료가 어울려 해체되면서 자신의 향을 토해내는 이유다. 새콤하면서 칼칼한 김치찌개, 구수하면서 은근한 된장찌개의 향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시각적인 비주얼은 입맛을 돋게 하는 가장 상대적인 기제다. 볶음이나 무침 요리가 대표적이다. 각종 기름에 잘 코팅된 볶음이나 나물과 같은 재료에 고추장과 들기름으로 어우러진 무침은 은근히 식욕을 자극한다. 들기름의 향이 있긴 해도 역시 무침은 시각적인 유인이 뛰어나다.
요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위한 행위이지만, 요리하는 자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요리가 가장 맛있고 보람을 느낀다. 물론 타인이 해주는 요리도 충분히 맛있고 멋지다. 그럼에도 자신이 한 요리가 가장 맛있을 때 요리의 의미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