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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Jun 23. 2020

그때 그 아인

성장해버린 아득한 그리움


피아노는 악기의 황제로 불린다.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이 따로 없다. 담당하는 음의 영역이 무한히 넓다. 피아노 소리를 듣노라면 가녀린 여성의 감성부터 남성의 웅장함까지 느끼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한 편의 피아노 선율이 심상치 않다. 언제 들어도 심기를 건드린다. 아련한 추억이 동기화된다. 피아노의 리듬은 낙숫물이다. 겨우내 구금된 결빙이 자유를 얻는 기분이다. 아니 자유 이전의 원초적 상태일 것 같다.

잔잔하게 두드리는 감정선이 위태롭다. 성장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놓으려는 기운 때문이다. 성장은 시간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기억의 늪이다. 반전의 시간이 내게도 왔음이다.



성장은 그리움이다. 건반의 리듬은 심장을 마사지하듯 두드린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다. 건반의 리듬에 심장의 박동수를 맞추는 자신을 목격한다. 박동수는 여지없이 그리움을 자극하는 자율신경계다.

성장은 공간의 채움이다. 이미 커져버린 몸집이다. 새롭지만 부풀어버린 낡은 공간이다. 쓸데없이 마음만 커져버렸다. 순수했던 생각들이 녹슨 회로로 연결되고 있음이다. 그때 그 아인 나처럼 변했을 마음의 부종이다.

성장은 격차다. 채워진 공간만큼 돋아난 빈틈이다. 함께 했던 시공간이 변질된 확장이다. 담을 수 없는 기억의 해상도다. 추억조차 더듬거리게 되는 차이로의 진입이다. 그때 그 아인 나만큼 커졌을 마음의 거리다.



아담한 곡의 정서가 애달프다. 서로 엇갈린 삶의 굴곡이 아련하다. 누군가의 품에 안겼을 때의 느낌 그대로다. 어쩌면 태아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드리는 건반의 리듬은 심장 벽만큼 세심하다. 아이가 성장하는 파노라마의 배경이다. 그때 그 아인 훌쩍 커버린 존재의 벽이다.

되돌릴 수 없는 생명의 변화, 몸은 변해도 생각과 감정은 그때 그 아이였으면 좋겠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생채기다. 철없던 그때 그 아인 성장했고 변한 개체다. 그림자는 커졌지만 채도는 여전하다. 그리움이 그때 그 아인 이유다. 어디서부터 시작됐을지 모를 아득함만 가득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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