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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특별 May 16. 2024

[오늘의일기]백수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백수가 된지 오늘로서 1달째다. 


우울증에서 회복하기 위해 최소 한달 이상은 쉬려고 했었고, 그래서 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도 안하면서 쉬는 것은 정말 재미없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거의 매일 실감하고 있다. 


물론, 우울증의 원인이 회사에 있었고, 급작스런 퇴사로 그 스트레스 요인을 치워버렸으니 지난 한달 동안 우울증이 많이 호전되기는 했다. 몇 kg 빠졌던 살이 많이 원복되었고(이건 좋은건지 모르겠다) 낯빛도 흙색에서 원래색으로 거진 돌아왔으며 우울감을 내뿜던 눈빛은 그래도 웃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좋아지기 위해 몇가지 루틴을 개발하려고 애를 썼다. 아침에 조깅을 하거나 또는 집에 있는 실내바이크를 타고, 밀레 청소기를 한바탕 돌리고, 걸어서 20분 이상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가서 뭐라도 읽으려고 하고(때로는 도서관에서 점심도 사먹고), 오후에는 새로 끊은 골프연습장을 30분 동안 걸어가서 잘 맞지도 않는 7번채를 수백번 휘두르고 다시 30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고, 우리집 고양이 후추 빗질을 해주고.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은 브런치에 일기를 써보려고 하고. 가끔 기도를 하고(성당은 안다닌지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그래도 친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약속을 잡으려고 하고. 


하지만 끊임없이 불안하다. 아마도 내가 두딸과 와이프를 먹어살려야하는 외벌이이고 현재 버틸 수 있는 돈이 수중에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취직 자리를 빨리 알아봐야 하는데, 50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좋은 회사 중에는 갈만한 곳이 거의 없을 것 같고-나를 뽑을 이유가 없겠지-, 감사하게도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작은 회사를 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운좋게 자리를 얻게 되어도 업력이 20년차를 넘은 나에게는 쉽지 않은 미션들이 주어질 것 같다.   


어제밤에도 꿈을 꾸었다. 아는 동생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찾아가서 일자리를 구걸하고 운좋게 자리를 얻어 회사를 다니는 꿈이었다. 꿈이었지만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하지만 아침에 잠을 깨면서 현실을 자각했고, 이불을 뒤집어 쓴채로 한참을 우울해 했다. 


다음주에 나랑 비슷한 시기에 백수가 된 형님과 2박3일로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잠깐은 즐겁겠지만, 다녀오고 나면 또 이런 헛헛함에 잠기게 되겠지.


원하는 직장을 얻게 되고, 직장에서 힘들어하지 않으면서 버텨낼 수 있는 그런 좋은 날들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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