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eudo-
pseudo는 가짜. 거짓. 허위. 모조라는 뜻의 영어 접두사이다. 나는 5살 때 가성콜레라라는 병에 걸렸었다. 말 그대로 가짜 콜레라라는 것이고 콜레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증상은 콜레라와 아주 유사한 병이다. 설사와 고열, 구토 등이 주요 증상이었고 나는 정석대로 병을 앓았다. 병의 이름은 가짜였지만 증상은 심각한 수준의 진짜였다. 오죽하면 P시에 사는 아버지가 C시의 깡촌인 A리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보를 보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81년의 P시는 아직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의 직원들을 위한 주거단지가 한참 건설중이었던 때였고, 그래서 모든 것들이 자리 잡히기 전이었다. 복개천 공사같은 것이 거의 10년 가까이 주거단지 내 여기저기 상당한 규모로 계속 이어지던 때였으니 위생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이었고 그만큼 계절에 맞춰 모기나 파리가 들끓다보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병에 취약했을 것이었으며 5살이었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자정이 가까워오자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열은 엄청 올랐지만 오한 때문에 벌벌 떠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불을 푹 덮어 놓았고 새벽이 되자 헛소리를 해댔다. 벌벌 떠는 손과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에 여기저기 손가락질을 하며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며 도깨비가 온다고 소리를 질렀고, 아버지가 어딘가를 가 있어서 안계셨을 때였으니 어머니는 밤새 뜬눈으로 내 옆을 엄청 걱정하며 초조하게 지켰을 것이다. 단순한 열감기라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질거라 생각했던 어머니는 신새벽이 다가오자 뭔가 심각하게 상황이라 인지했고 P시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나를 데려갔다. 잘못 측정된 체온이었을지 몰라도 당시 열은 43도까지 올라있었고 나를 담당한 의사는 43도는 치사온도라고 어머니에게 전했다. 치사온도이니 죽을 수도 있고 낫더라도 안좋은 경우에는 뇌손상이 올 수 있어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고도 얘기했다. 이 때 아버지가 병원에 도착했었던 것 같고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C시 A리로 '김특별 위독'이라는 짧고도 긴급한 전보를 보냈다. 엄청나게 치솟은 열을 내리기 위해 나는 옷이 홀딱 벗겨진 채로 수술대같이 보이는 차가운 침대 위에 눕혀졌으며 의사는 온몸에 알콜을 부어가며 내 몸을 닦아 냈다. 차가운 알콜이 몸에 닿을 때마다 내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뒤틀어서 어머니로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라고 했다.
나에게 딱 하나 기억이 남는 장면은 이 모든 처치가 끝나고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이다. 침대에 누워있던 나에게 간호사가 점심으로 죽 먹을래 라면 먹을래라는 질문을 했다. 당시에 라면을 너무 좋아해서였는지 아니면 몸이 좀 나아서 괜찮아져서였는지는 몰라도 이 기억은 정확하고, 흰색 바탕에 까만색 줄이 가있던 간호사 모자를 쓴 간호사 누나는 아이가 거절하기 힘든 메뉴인 라면을 제안했으며 5살의 나는 당연히 라면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라면을 먹었던 기억은 없다. 식사 전이었는지 식사 후였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입원해있던 병실의 침대 옆에 붙어있던 화장실에서 물같은 설사를 여러번 했다. 병실에서 라면을 먹었을 리는 없겠지만 나는 라면을 맛있게 먹었고 아직도 그 맛이 기억난다. 진짜 맛과 가짜 병.
위 사진은 이 글과 상관도 없고 그 당시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요새 엄청 유행하는 순두부+열라면 조합입니다. 며칠 전에 끓여서 먹어봤는데, 상당히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