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과거]C시 A리 (1).

끝없이 지루했던, 하지만 돌이켜보니 많은 감정을 배웠던 그 때.

by 김특별

나는 바다를 접하지 않은 내륙의 C시에서 태어났다. 내 본적은 초본상 C시로 시작하지만 A리로 끝나있고, 그때 A리는 어마어마한 깡촌이었던 것 같다. A리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사를 짓고 계셨었고, 듣기로는 고조 할아버지 윗 대부터 우리 성씨의 벼슬길이 막혀 이곳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산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70년대 후반에 태어났고, 당시에도 병원들은 분명히 있었겠지만 할머니가 사랑방에서 나를 받아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난 후에 아버지는 직장 문제로 분가를 했고,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남쪽의 P시로 이사해서 거기서 쭉 살았다.


보잘것 없는 가문의 손주였으나 그래도 이십 몇대 종손이었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보고싶어했던 것 같고 미취학 때부터 국민학교 저학년때까지 매번 여름이나 겨울방학마다 1달씩 꾸준히 맡겨졌다. 기억해보면 엄청 시골이었던 게,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1980년대 중반에도 A리에는 하루에 버스가 다섯번 정도 들어가고, 들어간만큼 나왔다. 그래서 그 버스를 놓치면 C시에서 A리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에서 몇십분을 걸어서 들어가야했다. 벌써 몇십년 전에 없어졌을 까마득하게 큰 근사한 포플러 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던 비포장 도로.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엄청났었고, 한쪽 옆으로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냇물이 흘렀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할아버지댁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맞이하셨고, 그런 나를 맡겨놓고는 하루 정도 있다가 어머니나 아버지는 곧바로 P시로 내려가셨으며, 그때부터 나는 매일매일 엄마아빠가 나를 데려올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지냈다. 나를 이뻐하긴 하셨겠지만, 그래도 번화한 P시에 비해 깡촌이었던 C시의 A리에서는 정말 할 것이 거의 없어서 늘 지루하고 지루했다. 내 잠자리를 위해 장롱에서 꺼낸 이불은 계절을 막론하고 늘 곰팡이 냄새가 났다.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늘 지저분한 손으로 음식을 만들었었고, 설거지나 뒷정리를 제대로 안하셨는지 수저와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소반은 늘 알 수 없는 음식 찌꺼기가 눌러 붙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시커멓고 냄새가 나는 반찬들과 지저분한 그릇들을 보며 속으로 욕지기가 났고, 그래서 매번 식사 때는 반찬없이 밥만 떠서 겨우 먹는 날이 많았으며, 할머니의 잔소리를 자주 들어야했다.


장손이었던 할아버지댁은 작지는 않았으나 오래되어 낡았고, 각 방들의 문풍지는 바래어 조금만 손으로 눌러도 구멍이 뚫렸고, 안방의 벽지는 몰래 발로 걷어차면 안에서 흙벽이 깨져 벽지 안으로 모래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삼촌과 고모들도 점점 다 출가를 해서 내가 국민학교 3~4학년 때는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만 계셨기에 관리가 안되어 늘 지저분했다. 원래 칠했던 페인트가 어떤 색이었는지 모를, 그런 오래된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해마다 달라지는 이름 모를 누렁이가 스뎅 밥그릇 옆에 자기가 싸놓은 똥을 짓밟으며 사람을 반겼고, 그런 마당 한켠에는 돌 하나하나에 녹색 이끼가 엄청 낀 우물과 이끼가 낀 밧줄이 달린 두레박, 그리고 옆에는 손잡이를 잡고 눌러 물을 퍼올리는 역시 이끼가 퍼렇게 낀 구식 펌프가 있었다. 거기서 다시 대문 쪽으로 눈을 옮기면 소가 늘 여물을 되새김질하고 있던 외양간이 있었다. 지붕은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남색의 기와를 얹었던 것 같다. 옹이 때문에 나중에 구멍이 뚫린 널들이 몇 개 있었던 대청마루는 안방과 사랑방, 건넌방까지 쭉 이어져 있었고, 마루의 안방 옆 끝으로 사람이 먹을 밥을 짓는 부엌 아궁이가, 다른 한쪽 끝으로는 외양간의 소가 먹을 죽을 쑤는 아궁이가 있었다. 외양간 반대 방향으로 있는 대문 옆 창고에는 호미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들과 알수없는 농약, 키나 여러 크기의 바구니, 그리고 불쏘시개와 크게 팬 장작, 그리고 할아버지가 읍내 마실용으로 쓰던 까만색의 자전거가 있었고. 집 밖으로는 잘라낸 신문지를 들고 가야했던 밑이 뻥 뚫린 그래서 밤에는 늘 누군가와 같이 갔던 무섭고 더러운 뒷간이 있었고, 뒷간 옆에도 창고가 있었는데 늘 말린 짚단이 있었고, 한쪽에는 폐타이어를 주머니 모양으로 얇게 잘라 긴 막대 끝에 철사로 묶어놓은 똥을 푸는 도구가 같이 있었다.


젊은 삼촌과 고모들이 다같이 살던 때는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시끌벅적 같이 감자떡도 해먹고, 좁은 사랑방 안에서 이불을 깔고 귀신 얘기도 하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김치가 맛있다며 같이 밥도 먹고, 방학숙제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시절은 짧았고, 다들 출가한 이후에는 드물게 한번씩 있던 시골 특유의 이벤트들 - 소 코뚜레 달던 날, 소나 돼지 잡던 날 정도만 기억에 있고, 똑같은 매일의 방점을 찍어주던 이벤트는 뒷간에 큰일을 보러 갈 때였을 정도로 C시 A리의 시간과 공간은 늘 똑같았고 늘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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