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과거]C시 A리 (2).

끝없이 지루했던, 하지만 돌이켜보니 많은 감정을 배웠던 그 때.

by 김특별

C시 A리에서 보내는 여름방학 때의 유일한 즐거움은 할머니가 오렌지맛 가루를 물에 타 냉장고에 얼려주시던 샤베트였다. 냉동실 기능이 아주 후져서, 매일은 아니고 며칠에 한번씩 할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면 꺼내주셔서 먹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한글로 쓰여져 있던 샤-베트라고 쓰여있던 양철 본체와 빨아먹다보면 어느새 밑둥이 드러나는 촌스러운 녹색 손잡이가 있었다. 샤베트를 소중하게 갉아먹고 빨면서 대청마루에 누워서 서까래가 있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래도 시원하고 좋았다. 가끔은 동네에 살고 있는 나이차도 많이 나고 대화가 잘 안나는 아이들과 냇가에 놀러가곤 했는데, 가는 길에 수령이 100년이 넘었다는 팻말이 꽂혀있던 정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기억해보면 밑둥이 엄청 뚱뚱한 느티나무였고, 아이들이 자주 뚱뚱한 밑둥을 밟고 몰래 나무에 올라갔었고 어른들한테 들키면 혼이 났던 것 같다. 그 옆의 길을 지나 냇가로 내려가면 큰 바위가 몇개 있었고,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깊지 않은 냇물에는 작은 물고기와 거머리가 있었고, 바위 옆은 진흙 바닥이라 밟으면 물컹했고 물 색깔이 탁하게 바뀌곤 했다. 그래도 더운날에는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고 고기 잡는 흉내도 내고 했으나, 어느 해인가 늘 누렁코를 달고 살던 동네애가 냇가에 앉아 똥을 싸는 것을 본 이후로 더 이상 들어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못견디게 지루해하는 날은 가끔 할머니가 밭에 나를 데리고 나갔고, 그럴 때는 늘 집보다 밖이 더 지겨웠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더운날 날 썬캡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가 끝도 없이 밭일을 하시는 걸 보면서 밭두렁에 앉아 벌레를 쫓다가 돌멩이를 들어 땅에 그림을 그리다가 힘들어 답도 잘 안하는 할머니에게 되지도 않는 질문을 하다가 끝내 지겨워져서 그냥 한참을 걸어서 다시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한번은 농약을 사러 시내로 나가는 할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앉아 따라 나간 적이 있었다. 포플러 나무가 있던 먼지가 충만한 비포장도로 위에서 바람빠진 타이어의 자전거는 엄청 덜컹거렸고, 엄청 좋아하며 따라 나섰던 나는 엉덩이가 아팠다. 그래도 즐겁게 도착한 C시 시내의 농약파는 상점에서 할아버지는 정말 농약만 샀으며 산 농약을 뒷자리에 끈으로 묶었다. 돌아올 때는 산 농약만큼 높아지고 농약병 주둥이 때문에 울퉁불퉁해진 뒷자리가 엉덩이를 계속 찔러대서 신작로가 끝나고 마을 어귀의 포플러 비포장도로부터는 따라나온걸 엄청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할아버지를 따라 시내에 나간적이 없다.


겨울방학에도 유일한 즐거움은 먹는 것이었다. 겨울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신 할아버지가 장작을 패고나서 쇠죽을 만드는 아궁이에 앉아 군불을 때시면, 나는 그 옆에 앉아 곁불을 쪼였고, 구수한 쇠죽 끓는 냄새가 나면 할아버지는 고구마를 들고 와서 낫으로 잘게 잘라 아궁이에 구웠다. 대충 뒤적거리던 할아버지가 목장갑 낀 손으로 고구마 껍질과 탄 부분을 떼어내고 건네주셨고, 그날 아궁이에 들어간 고구마는 내가 거의다 먹었다. 먹는 즐거움은 또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겨울이면 늘 안방에 있던 무쇠화로 덕분이었다. 갓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모양새에 다리가 4개가 있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다가 남은 알불을 아침저녁마다 할아버지가 화로에 담아서 안방에 들였으며 비록 할머니가 만든 지저분한 된장찌개였어도 화로에 끓이면 보글보글 끓으면서 깨끗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몇번 쯤은 떠먹게 만들었다. 식사를 하고 상을 치우고 나면 할아버지는 밤에 칼집을 내어 화로에 묻어놓았고 익으면 목장갑을 끼고 껍질을 까서 주셨고, 솥에서 긁어낸 누룽지와 같이 내가 늘 많이 졸랐던 간식거리였다.


겨울에 가장 싫었던 것은, 너무 일찍 자고 너무 일찍 일어났던 기억이다. 시골이다 보니 4시만 지나도 어두워졌고 늘 일찍 저녁을 먹은 뒤 8시 정도면 자리에 누웠다. 켜놓으면 필라멘트가 늘 새빨갛게 타던 오렌지색 빛을 내던 전구의 몸통 옆에 있는 까만 스위치를 잡아 돌려 끄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하고 무서운 어둠이 몰려왔다. 잠도 오지 않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눈을 깜빡거리다 보면 잠이 들었고, 다음날 새벽 4시 정도가 되면 할아버지가 일어나셨으며, 방안에서 화로를 뒤적여 담뱃불을 붙였고, 몇모금 빨고나면 손끝으로 연초 끝부분을 눌러 끄고 다시 담뱃갑에 넣고 새벽일을 나가셨다. 두꺼운 이불 밑에서 담배연기를 맡으며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고, 아침이 밝으면 일어나서 이불을 옆으로 제쳐두고 화로에 얹힌 찌개와 지저분한 밥을 먹었다. 그래도 화로 옆에서 손을 쬐며 먹던 누룽지와 숭늉은 늘 맛있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C시 A리에서의 지루하고 지저분한 날들이 끝나고 나면, 나를 데리러온 부모님과 P시에 내려가 남은 방학 동안 잔뜩 밀린 탐구생활을 하면서 혼이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렇게 내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의 방학들은 자주 지루했다. 생생하지만 그렇게 그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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