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맞은 날엔

초보 노가더 일기 1

by 푸레카


언젠가 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올린다면 그날은 아마 ‘대마 맞은 날’일 거라는 저의 예상은 나름 적중했습니다. 무려 1년은 족히 걸린 적중입니다. 그동안 대마를 맞은 여러 날들을 떠올려보면, 저는 줄곧 첫 글쓰기를 미루고 또 미루었단 말이지요. ‘첫’이라는 벽을 이제라도 넘어서려는 제가 나름 대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대마 맞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대마 맞다’, 혹은 ‘대마 나다’라 함은 세칭 노가다라 불리는 건설 현장 용어로써 ‘일을 받지 못해 기다린다.’ 쯤의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지금 일을 받지 못해서 기다리다가 빈둥빈둥 놀고 있는 중입니다. 놀다 지치면 언젠가는 한 줄 글 쓸 날이 오겠지 했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봅니다.


어쩌다 보니 첫 글이 ‘대마’에 관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노가다 생활을 글로 옮길 때 ‘대마’만큼 중요한 소재도 없을 거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장님들끼리 서로 묻는 첫인사말이 보통 ‘요새 일 많이 나갔어? (대마 얼마나 맞았어?)’인 걸 보면 말이죠.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때라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요.


돌이켜보면 저의 경우 대마 맞은 날은 항상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도 그렇습니다. 독거 중년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비의 압박이 그닥 크지 않은 탓도 있고, 천성이 낙천적인 탓도 있습니다. 놀고 싶은데 뺨 때려준 인력소 소장님에게 감사하고플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지난주까지는 한 현장에 한 달 넘게 풀 출근을 하기도 했는데,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겨울이 오면 아무래도 대마가 자주 날 거 같아서.


대마가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인력소 소장이 영업 실력이 없어서. 겨울이면 공구리(콩크리트)가 잘 굳지 않기 때문에 건설 현장에 일이 줄어드는 것도 한 이유입니다. 거푸집에 공구리를 들이부어서 건물이 올라가야 인부들이 할 일거리가 생기니까요. 그런가 하면, 인력소 소장이 나를 차별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이 사실 실제 이유일 때도 있습니다.


대마의 원래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건 아마 이런 경우일 겁니다. 현장에 나갔더니 갑자기 자재가 도착하지 않거나 비가 오는 등의 차질이 생겨서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오게 되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노가다 용어가 대체로 그렇듯이, 일본어인 ‘대마’는 손 수手와 기다릴 대待가 결합한 단어인데 글자 그대로 ‘손이 기다린다’는 뜻이 거든요. 운이 좋으면 일당의 반 정도(속칭 반대가리)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차비 정도만 받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그나마 그것조차 못 받을 때도 물론 있습니다.


반장님들 사이에서 대마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경기가 어떻든 간에 일 잘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대마를 맞기 힘듭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지명해서 찾기 마련이죠. 설령 지명이 없어도 인력소장이 나름의 우선순위를 두고 챙겨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새벽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일을 배정하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인력소라 할지라도 말이죠. 요즘은 하루 전날 전화로 일을 받는 인력소가 많기 때문에 사실 누가 대마를 맞았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요새 일 많이 나갔어?’라는 인사로 시작하는 스몰토크를 주고받다 보면, 적게는 열명 안팎에서 많아봐야 스무 명 남짓한 고만고만한 인력소의 출력 현황은 어느 정도 파악되고 맙니다. 어차피 반장님들 대부분 서로 술친구이거나 동네 친구이거나 심지어 옆방 형동생이기도 하거든요.


자존심도 걸리고 민감한 이야기인 것도 분명한데 반장님들은 대마에 대해 서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차피 밝혀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당장 내일 대마를 맞지 않으려면 작은 정보라도 서로 정확히 비교해 보는 게 좋기 때문입니다. 서로 나갔던 다른 현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덤이고 말이죠.


아, 그러고 보니 예외가 있긴 했습니다. 한번은 대여섯 명이 한 현장에 나갔는데 자연스레 스몰토크가 이어지던 중 유독 한 반장님만 대마를 자주 맞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눈에도 몸이 작고 여리여리한 그 반장님은 대마를 맞는 날엔 배달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그가 타고 온 자전거 뒷좌석에는 배달통이 달려 있었죠. 몸을 써야 하는 노가다판에서 정말 가까운 현장에 일을 배정받지 않은 이상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일은 드뭅니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힘을 빼야 하고, 집에 갈 때는 지친 다리로 페달을 밟아야 하니까요. 다른 반장님들은 누구랄 거 없이 적당히 거짓말을 했습니다. 요새 대마가 자주 나는 거 같어. 나는 지난주 세 번 대마 났다니깐. 뭐 이런 금방 들통날 거짓말들을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 반장님 얼굴 못 본 지 꽤 되었네요. 아마도 다른 인력소로 가신 게 아닐까 합니다.


오늘 아침 기온이 올 들어 처음으로 영하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노가다판은 말 그대로 ‘윈터이즈커밍’이네요. 발 빠른 반장님들은 여러 인력소에 다리를 걸치기 시작했을 겁니다. 저처럼 한 군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겐 슬슬 대마가 늘어나겠죠. 그럼 과연, 설마, 혹시 브런치스토리에 제 글도 더 늘어나게 될지 어떨지...


아직까지 인력소 소장의 전화가 없는 것을 보면 정말 오랜만에 이틀 연속 대마가 나는 건 아닌지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중입니다. 지금 방금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는데 소장이 아니네요. ‘내일 어디로 가?’ 친한 반장님의 별로 반갑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답장을 뭐라 보내나.


우선 인력 소장님에게 간곡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내일 아침까지 대기하겠습니다.’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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