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노가더 일기 2
‘코로나’라는 한마디가 모든 시련의 대명사이던 시절이 있었죠. 저도 ‘코로나’ 직후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재취업은 막연하기만 하고 하루이틀 실업급여만 까먹던 시한부의 나날도 어느덧 만료되고 말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야금야금 헐기 시작한 마통도 어느새 텅 빈 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텅! 하고 제 등을 떠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인력사무소에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친구 중에 하나는 빚 때문에 자살했어요. 제가 진작에 노가다판에 데리고 나왔으면 분명 그런 엉뚱한 생각은 안 했을 텐데."
어느 철거 현장에서 만난 젊은 친구가 쉬는 시간에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빠루의 묵직함이 아직 생경할 때였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무렵이었지만 이런저런 흉흉한 이야기는 아직 자주 들을 수 있을 때였죠. 코로나 유행 전에는 보습 학원 강사였다는 그 젊은 친구는 자꾸만 슬픈 이야기를 꺼내는데 표정은 밝았습니다. 뭐랄까... 대참사 중에 최악은 피해 갈 수 있었던 생존자의 인터뷰를 보는 느낌이랄까. 한편으로 저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더랬습니다. 얄팍한 만큼이나 야속했던 쥐꼬리 한도의 마텅장이 내 등을 떠민 곳이 절벽이 아니라 노가다판인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그 젊은 친구는 스스로의 말에 어떤 의미를 두었던 모양인지, 나중에 정말 친구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저와는 그 친구들은 나이 차가 꽤 있었지만 금세 죽이 잘 맞아 친해졌습니다. ‘친하다’는 것이 아주 가끔 인력소 소장의 배려로 한 현장에서 만나 잡담이나 나누며 일하는 정도였지만요. (이것이 배려인 이유는 젊은 사람을 셋이나 묶어서 한 현장에 내보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셋다 노가다 초보나 다름없었지만 저는 어릴 적 노가다를 잠깐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제법 선배 노릇을 하며 이것저것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습 학원 강사였던 친구는 빚을 다 갚았는지 이런저런 콘텐츠를 구상하며 유튜버를 준비하기도 하고 슬리퍼 장사도 계획했는데 곧 연락이 뜸해졌고, 다른 친구는 리모델링 현장에 나갔다가 알게 된 인테리어 업체에 취직할지도 모르겠다는 소식 이후로 뜸해졌습니다.
제가 굳이 연락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들의 등을 떠밀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겁니다. 노가다판이 인생의 막장이라거나 밑바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젊은 피가 아직은 바깥으로 튕겨 나갈 수 있는 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백만 유튜버가 될지도, 어쩌면 리모델링 업체의 사장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노가다판은 너무 딱딱하고 거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등을 떠밀어 탄성에 힘을 보태는 것뿐.
설령 그 탄성이 또 꺾이는 날이 오더라도 그들은 분명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의기소침할지언정 텅장이 등 떠미는 곳으로 담담히 돌아올 거니까요. 다시 튕겨 나가기 위해.
아마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202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