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면담과 기록 사항
이름 (남/녀) 연령
현주소 출생지(고향) 연락처
종교 현재가족관계
마을에 살기 시작한 때
즐거움, 재미, 보람 있던 때
힘들었던 때
마을의 미래, 바라는 방향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16년 7월~9월 면담하고 기록함
우각 1리
1. 신은숙(47)
인하(고방)댁 며느리. 포항시 두호동에서 출생, 종교는 불교, 경주에 있는 절에 다닌다.
마을에 시어머니 인하댁 계시고, 남편과 두 딸, 아들. 96년에 결혼했고, 동이 8개월인 97년에 시집 살러 들어와서 12년 살았다. 포항시 상수도 들어온 2008년도에 살림 나갔다.
마을에 살면서 8.15 행사 때 돼지 1마리 타서 다리께서 잡고 밤새 마을잔치를 하고 놀 때 재미있었고, 거랑에서 손빨래했는데, 맑은 물이 흘러가는 것이 너무 아까워 냇가에서 빨래할 때 좋았다.
힘들었던 때는 애들이 아플 때 병원 다니기 힘들었던 점. 시아버님 한갑 때 잔치 헸는데, 마을수도를 꾀돌이 조서방이 새벽 6~8시와 저녁에 2시간 틀어주었는데, 물 받아놓고 쓴다고 고생했다.
마을에 바라는 점은 교회에서부터 마을진입로가 너무 좁아서 불편하다. 차 두 대가 지나가지 못하니, 이 길을 넓혀주면 좋겠다. 또, 살기 좋은 동네면 좋겠다.
마을에 다시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수영, 요가 등 문화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2. 이주찬(81)/노실댁 정경옥(80)
우각리 71, 이주찬어르신은 이 집에서 태어나심. 딸 셋, 아들 둘을 두었다. 열다섯 살에 6.25를 만났고, 반장부터 하고, 74년도에 동장, 새마을지도자, 농협총대, 새마을금고 총대, 명칭은 다 걸어보았다.
부친이 실명하셨고, 위로 두 형은 일찍 외지로 나갔기 때문에 셋째 아들로서 집을 지키고 농사짓고 살았다. 61살 3월 2일 교통사고 나고, 그 뒤로도 2번 사고가 나서 하반신을 제대로 못쓴다. 오의정은 원래 서당자리고 ㄱ자로 건물이 있었다.
노실댁
22살에 결혼하고 3일 만에 시집와서 첫 시집을 열 달 살았다. 시어른이 10대 주손 동자무자셨다. 앞을 못 보셨고, 동네 어른 일고 여덟 분이 낮에 사랑에 오셨다가 저녁 드시고 다시 오셔서 12시경 되어야 가셨다. 잠 오는데 문고리 잡고 참고, 손님가시면 어른 이부자리 봐드리고 와서 잤다. 참내드리고 술 내 가고 했다. 명절에는 백 명 넘게 오셨다. 묘사 때는 기계장에 가서 돔배기를 온마리 사 와서 밤새 백 꼬지 넘게 만들었다. 어른 68세에 돌아가셨다. 시집와서 10년간 모셨다. 시집오면서 바로 살림을 맡아 살았다.
없는 집에 와서 의식 곤란당하고 흉년에는 지정 심어 먹기도 하고, 장리도 내먹었다. 호화롭다, 편안하다, 행복하다 그런 느낌 못 느껴보고 살아왔다. 지금도 아저씨는 아지매가 집바깥에 나가는 것 싫어하지만, 우겨서 마을회관에 나온다. 마을 산에 배낭지못을 시집오던 그 해부터 망게 치고 막았다. 새머리들 농사 잘됐다. 우리 집 위쪽으로 일곱 집이 살았는데, 다 나갔다. 논도 일곱 마지기 있었다.
지금 와룡댁 사는 집 천석꾼집인데, 우리 집에서 나간 일가다. 종숙도 부자였는데, 아랫대에 코오롱에 다니면서 대구로 나갔다. 내동 파인데 살려고 다 나갔다. 포항댁 뒤 터는 거리파 종가다.
어렵게 살아왔다. 이 집은 2001년도에 아들 채규가 직접 지었다.
아지매가 사리분별력이 남다르신데요?
친정이 안강하곡인데, 서당마을이다. 부친이 선비 셔서 손님도 많고 출입도 많이 하셨다. 그래서, 들은 것이 있었다. 또, 옥계 딱실학교 졸업했다. 윗터가 무너져 내리는데 320평이다. 짐승들이 들어오기도 해서 무섭기도 하다. 몽애정을 전에는 나름 신경 쓰고 풀도 벴는데, 나이 들면서 손을 못 댄다.
동네가 인정 있게 살면 좋겠다. 아들이 나중에 들어와서 산다고 한다. 나는 한 가지 일해 놓고 다음 일하는데, 며느리는 지짐 부치면서, 나물하고 손이 빠르고 우리한테 잘한다.
~두 분 다 돌아가심. 2025년 6월 현재.
3. 이동은/김순옥(69) 8.17
아지매 고향은 울진이고, 25살에 아저씨 31살 때 결혼하고 이 집에 들어와 살았다. 아저씨는 이 집에서 태어났다. 집 새로 지은 지 20년 째다. 안 어른 새 집에서 몇 년 살고 돌아가셨다. 애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이제 다 결혼했다. 결혼식 사진 구경.
4. 이동열(68)/최귀순(64) 8.17.
옥상방수업을 하다가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있고, 현재는 고사리와 블루베리농장을 하고 있다. 아들 둘, 딸 하나, 영양에 있는 절에 다닌다.
아저씨는 초등 3학년 때 시내 나가서 40년간 밖에 있다가 귀향한 지는 8년이고, 지금 집을 새로 지은 지는 15년. 그때 신광에서 처음으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최귀순 씨는 부녀회총무할 때 재미있었다. 이동열 씨는 마을에 길사, 흉사 있으면 전화해 달라. 마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빈집 없이, 사람이 많이 들어와 살면 좋겠다. 마을회관까지 길을 넓히면 좋겠고, 마을이 발전하면 좋겠다.
5. 개오댁 이분돌(80). 8.22.
친정은 안강 삼우정, 형제로 아들 하나 딸 셋 중 막내였다. 감로사에 다닌다.
19살에 이 마을로 시집왔는데, 내 건너 윗동네에 집이 있었고(현 박종환선생 집), 안 어른 만 계셨다. 부군 이원정 씨와 딸 6, 아들 둘을 두었고 부군은 5년쯤 전에 돌아가셨다. 아들 낳는다고 자식을 많이 낳았다.
자식을 많이 두어서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느라 일만 하고 살았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프다. 과수원 해서 사과 팔고 그걸로 자식들 뒷바라지했다. 살면서, 재미있던 적이 없다. 죽어야 하는데, 안 죽어지니 약 먹고 죽을 수는 없고 그냥 산다. 마을에 체조는 언제부터 다시 하나? 재미있더라. 마을에 바라는 점은, 편하면 좋겠다. 거실벽에 자녀들 결혼식 사진이 온 벽에 다 걸려있다. 아저씨가 그렇게 해놓았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침대가 새로 놓였고, 작은 서랍장도 새로 들어와 있다. 큰딸과 막내딸이 사주었다.
건넌방이 넓고 침대 위에 옷이 있어서 물으니, 29일에 동갑내기 계중에서 놀러 가는데, 큰 딸이 해준 옷 꺼내서 풀해 다려놓았다. 진밤색 삼베주름치마에 흰모시적삼과 노란 삼베적삼이 놓여있다. 큰 딸이 해준 거라고. 흰모시적삼을 추천했다. 나보고, 아지매 아들 어디 다니냐? 몇 살이냐? 결혼은? 하고 물으신다.
~돌아가심(2025년 6월 현재)
6. 이성찬(79)/안덕댁 조종남(76) 8.23. 오전
아저씨는 이곳 본가에서, 아지매는 청송 안덕이 고향이다.
23살에 결혼하고 24살에 마을로 시집왔다. 처음에 시집 살다가 4,5년 뒤에 첫아들 낳고, 밑으로 딸 셋을 두었다. 시형제가 맏이는 일본 갔고, 둘째 시숙은 6.25 후 면에서 밭에 들에 탄피 주워오라는 시절이 있었는데, 동네 일가청년 몇이 탄피 주워와 집마당에서 손대다 폭발해서 형체도 없이 폭사했다. 셋째 시숙이 집 지켰고, 우리는 넷째였다. 시어른이 녹내장수술하다 잘못돼서 눈은 떠도 앞을 못 보셨다.
결국, 우리는 딸만 있는 재종할매한테 양자로 가게 되었는데, 참 남사스러웠다. 살림 난다고 허름한 방 한 칸 얻어 잠만 자고, 새벽에는 큰집에 밥 하러 다니다가, 점차 살림 나게 되었는데, 겨울이라 쌀은 받았는데, 소금도 된장도 없어 하루는 쌀을 퍼서 들고 눈물짓고 서있다 재종할매한테 들켰다. 이래서, 시집이고 남의 집이구나 서러워서 이틀을 울었다. 지금 같으면, 좀 달라고 말이라도 할 텐데, 말할 줄도 몰랐다. 4년 만에 임신을 해서 동지섣달 산달이 다 되자, 재종할머니가 안방을 내주셔서 아들을 낳았다. 손자를 어찌나 좋아하셨던지, 처음부터 함께 살아야 정든다고 본격적으로 함께 살았다.
옷도 없어서 아저씨 제대한 군복하고 시집올 때 해온 한 벌 두 벌 가지고 입고 벗고 살았다. 애기가 없을 때는 군복을 풀해가 다려 입혔다. 당시에 도로 닦을 때 아저씨가 곡괭이로 파서 일하러 다녔다. 벌어서 흥해장에 가서 안에 털든 신발도 사고했다. 남의 송아지 데려와 키워서 팔아 반 나누고 이렇게 반복하고 논밭 얻어서 농사짓고 해서 차차 일구었다. 요 집 앞 밭터가 우사였다. 한참 송아지 키워 재미 보다가 5마리일 때 소값 파동이 일어났는데, 빚이 없이 소를 키웠기 때문에 다 팔아도 괜찮았다. 아래채에 고방도 만들고 방 하나를 들이니 세 딸이 공부방이라고 좋아했다. 집도 새로 짓고 보니 대궐처럼 여겨졌다.
도로가 안되어있을 때는 동네 다닐 때 비 오면 소똥, 개똥이라 걸을 때 이쪽저쪽 디디고 다녔고, 큰집에 갈 때는 거랑에 돌디디며 다녔다. 아저씨 열심히 일하고 살았는데, 경운기 사고가 나서 몸을 다치고는 힘을 못쓰신다.
세 딸은 다 출가했고, 아들은 회사 다니는데 장가를 안 가서 그게 누구한테 말도 못 한다.
자식들한테 바라는 것은 첫째가 건강하고 다음에 서로 화목하게 살아라.
~ 이성찬씨는 돌아가심(2025년 6월 현재).
7. 와룡댁(87) 8.23. 오후
기체조 마치고 와룡댁 손잡고 마을회관을 나왔다. 아지매는 유모차밀고 나는 걸어서 솟을대문 고색창연한 댁으로 향했다. 방학 마치고 오랜만에 기체조해서 그런지, 굉장히 힘들어하셔서 둘이 누워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87살. 고향은 안동면 와룡리. 14,15살 때 해방이 되었다. 17살에 시집갔다.
38살에 3살 먹은 딸 데리고 이 집에 살러 왔다. 딸이 있다고 품삯도 없이 밥만 먹고살았다, 옷은 어디서 얻어다 준거 입고 살았다. 안노인이 환갑 지났을 때 들어왔다.
이 집이 천석꾼집인데, 지금 들깨밭에도 집이 있었고, 행랑채 옆에도 집이 있었고, 집이 여러 채 있었다 한다. 6.25 났을 때 이 집에다 소를 동네사람들이 다 데려다 놓으니 32마리였다 한다. 주인들은 대구로 피난가 버리고 없었고. 빨갱이들이 이 집 독에 쌀 있제, 소 있으니, 진을 치고 소 잡아먹었다 한다. 이 사람들이 나가지를 않으니, 결국 이 집에 폭격을 해서 집이 다 없어졌다. 이 안채도 불에 타는 걸 동네 사람들이 불을 꺼서 이만큼 남았다. 바깥주인이 아래채에 계시고, 안 어른하고 나는 이 방에 살았다. 아들 6에 딸 하나를 두셨는데, 셋째 아들이 올봄에 죽었다. 바깥어른은 81세, 안어른은 92세에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 이 집에 나 혼자 산다.
힘들었던 것은 밤에 물을 열동이씩 지고 날라야 했고, 낮에는 밭에 일하는 여자들한테 참 갖다주고, 논에 일하는 남자들한테 참 갖다주고, 참은 주로 국수였지. 점심은 점심대로 하고. 겨울에는 한나절 소풀 베서 소죽 쒀서 주고, 나무해서 바깥어른아랫방하고 안방에 불 땠다. 노인이 욕심이 많으셨다. 소한테 소죽을 두 바께쓰씩 주는데, 노인이 새끼 딸린 소한테 소죽을 그만큼밖에 안 주면 어떻게 하냐고 하시길래, 하루는 대놓고 말했다. 이렇게나 힘겹게 일을 많이 하는데, 더 이상은 못하겠니더. 지금, 미제댁 아들이 하는 밭에 이 집 셋째 아들이 살았는데, 어느 날 어른이 안 계실 때 와서 소를 끌고 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으니, 기계장에 팔러 간다 해서 나는 좋았다.
이 집에서 일하고 살면서 딸이 의지가 되었다. 딸은 신광중학교 나와 동네 친구들하고 대구 코오롱에 일하러 가서 야간에 회사에서 시켜주는 고등학교까지 했다. 돈을 안 주니 먹는 것만 해결하고 살고 틈틈이 도토리 주워 팔고 해서 딸 시집갈 때 쓰려고 돈 100만 원을 모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가까이 살던 댁이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다. 딸 시집갈 때 달라하니, 30만 원 주고 그 뒤로 무소식이다. 지금도 이 사람 제대로 안 본다.
딸은 대구 남자한테 시집가서 지금 백화점에 자전거 타고 일하러 다닌다. 이제 51살, 사위는 53살. 26살 된 손녀는 일하러 다니고, 20살 먹은 손자는 대학교 입학했다, 군대 가려고 쉬고 있다. 상자 안에 약을 보여주심. 이 약은 신경약인데 대구파티마병원에서 1~2달에 한 번씩 타서 딸이 부쳐준다. 안 먹으면 머리에서 소리가 나 약을 안 먹을 수도 없다. 혈압약도 있고, 세 가지 약을 먹고 산다.
친정에 형제가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이 있다. 이 사진은 10년 전에 어느 공원에 삼 형제가 놀러 가서 찍은 거 셋이 하나씩 나눠가졌다. 남동생은 서울서 선생 하다가 퇴직해서 와룡에 밭 몇 마지기 있는 데 집 짓고 혼자 농사짓고 산다. 올케는 손주 봐준다고 서울에 주로 있다.
이 집도 지붕이 다 얼크러져 내리는데, 면에서 공사를 해줘서 잘 산다. 요새는 세월이 좋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주인이 팔지도 못하고 있다. 저기는 들깨밭이고, 여기는 콩밭이다. 석류나무주위에 덤불이 우거져 바람이 안 통해서 낫으로 베고 나니 좀 낫다. 밤에 방장 치고 누우면 앞뒤로 바람이 통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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