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는 진화하고 있고, 그 기반에는 위대한 전술이 있다
"드림팀"은 과거 바르셀로나의 전성기 시절 닉네임이자 축구 전술가들에게 아직도 많은 영감을 주는 팀이다. 감독은 요한 크루이프였으며, 펩 과르디올라와 호세 마리 바케로 같이 별나고도 특별한 선수들이 드림팀의 축구를 완성시켰다. 드림팀의 축구 이론은 대부분 아약스의 토털 풋볼에서 가져온 것이었지만 크루이프는 이를 더 발전시키며 바르셀로나를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철학적인 축구 클럽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크루이프가 완성한 전술은 바로 "크루이프즘". 현대 축구는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그 기반에는 아직도 "크루이프이즘"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현대 축구의 시초이자 기반, 그리고 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전술 "크루이프이즘"이 무엇을 추구하려 했는지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요한 크루이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점유율이었다. 그는 바르셀로나가 상대 팀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길 바랬으며, 이로부터 그의 축구 철학이 시작되었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는 바르셀로나는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많은 공격 찬스를 만들 수 있는 반면 상대는 공격은커녕 수비를 하며 90분을 낭비한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면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점유율 축구는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4번, 즉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었던 펩 과르디올라는 피지컬과 수비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발군의 기술과 함께 좋은 패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 공 자체를 상대팀에게 잘 주지 않았기 때문에 펩 과르디올라는 좋은 수비력을 보유하지 않아도 됐었다. 대신 그는 좋은 패스 능력으로 공격수 위치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던 호세 마리 바케로나 미하엘 라우드럽에게 공을 주며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득점에 많은 기여를 하는 인사이드 커터 스타일의 윙어들에게도 기가 막힌 스루 패스를 뿌려주었다.
만약 바르셀로나가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지 못했다면 펩 과르디올라의 위치에는 평범한 수비형 미드필더 스타일의 선수가 뛰었을 것이다. 높이 올라와 있는 센터백 -> 기술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 -> 공격형 미드필더 -> 공격형 미드필더 같은 공격수 -> 득점력 좋은 인사이드 커터형 윙어들로 이어지는, 단조롭지만 막기 힘든 득점 패턴도 없었을 것이고, 바르셀로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점유율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화지라면 포지셔닝은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붓과 물감이었다. 전술적인 이해도가 좋은 드림팀 선수들의 장점은 포지셔닝에서 나타났는데, 그들은 수많은 라인을 만들며 동료와의 거리를 항상 짧게 유지했다.
많은 라인을 만들며 동료와의 거리를 짧게 유지한 이유는 좋은 패스 워크와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서였다. 짧은 패스로 빌드업을 하는 드림팀이었기에 많은 라인은 바르셀로나의 빌드업을 더욱 빠르고 안정적이게 만들었다. 센터백은 더 높게 있는 풀백에게. 풀백은 패스 능력이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는 자신보다 더 높은 라인에 있는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 같은 중앙 공격수에게. 중앙 공격수는 인사이드 커터형 윙어에게. 당시 이렇게 빠르고 간결한 빌드업은 없었다.
아래는 2013년 3월에 벌어진 바르셀로나 대 라요 발레카나 경기다. 드림팀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바르셀로나는 지금도 수많은 라인을 만들고 있다.
짧은 거리 유지는 압박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다른 팀들과 달리 대인 방어나 무조건 공을 잡고 있는 선수에게 가는 수비를 하지 않았던 바르셀로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수비 방법은 유기적인 압박이었다: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팀 전체가 주시하되, 동료들과의 거리를 의식하며 자신의 지역에 있는 선수에게 가까이 붙어 패스 경로를 차단한다. 반면 자신의 지역에 상대 선수가 없으면 공격 상황을 대비해 미리 수적 우위를 만드는 것에 대비한다.
만약 라인 간의 간격이 불규칙하거나 짧았다면 "크루이프이즘"이 추구하는 유기적인 압박은 없었다.
드림팀은 9번 위치인 중앙 공격수 자리에 클래시컬한 유형의 스트라이커를 배치하지 않았다. 클래시컬한 스트라이커들은 오히려 인사이드 커터형 윙어로 활약했다. 물론 한때 호마리우라는 강력한 스트라이커가 9번 위치에 뛰며 수많은 골을 기록했지만, 그의 인상적인 시즌은 고작 한 시즌이었다. 대신 크루이프는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인 미하엘 라우드럽을 중용했다.
미하엘 라우드럽은 가벼운 몸놀림과 함께 발군의 발재간을 자랑하는 뛰어난 공격수였다. 전술 이해도 또한 훌륭했으며, 요한 크루이프 같이 최전방 대신 중원에서 더 많이 뛰었다. 크루이프가 클래시컬한 공격수 대신 공격형 미드필더 같은 미하엘 라우드럽을 9번 위치에 기용한 이유는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격이나 수비는 중원에서 시작된다. 볼이 가장 많이 있는 지역 역시 중원이다. 따라서 크루이프는 상대보다 더 많은 드림팀 선수가 중원에서 플레이하기 위해 최전방보다 중원에서 더 플레이를 많이 하는 라우드럽을 기용했다. 최전방 라인에는 두 윙어밖에 남지 않지만, 대신 바르셀로나는 수적 우위를 점하며 중원에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수비시 상대보다 더 많은 선수들로 쉽게 공을 빼앗을 수 있고, 공격시 더 많은 패스 루트가 생기며 수비수가 세명이나 네 명인 상대팀을 약 여섯 명으로 제압할 수 있다.
크루이프의 "크루이프이즘"은 혁신 그 자체였고, 앞으로도 세계 축구계의 페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전술로 기억될 것이다.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를 포함한 유럽의 팀들과 전북, 서울, 수원을 포함한 국내 팀들 모두 "크루이프이즘"의 영향을 받은, 어쩌면 크루이프가 남긴 유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글: 프리사이스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