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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수 Apr 24. 2016

1999년, 모든 축구팬들이 열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 이야기

렉스 퍼거슨은 지금과 비교하면 대단히 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축구 클럽으로 발전시켰다. 물론 최근 성적이 불만족스럽지만 퍼거슨이 이룬 성과는 아직 유나이티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퍼거슨은 수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최고의 시즌을 꼽으라면 당연히 1998/1999 시즌이 될 것이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했을 때, 세계의 모든 축구 팬들이 열광했다. 


이 글을 통해 1999년,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했을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신의 한 수, 알렉스 퍼거슨의 영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렉스 퍼거슨이 없었을 때도 꽤나 좋은 성적을 내던 클럽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큰 임팩트가 부족했다. 꾸준히 트로피를 늘렸지만 팬들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했고, 결국 유나이티드는 1986년, 알렉스 퍼거슨을 감독직에 앉혔다. 알렉스 퍼거슨은 이미 세계에 이름을 알린 감독이었다. 그의 선수 생활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퍼거슨의 참된 능력은 감독이 된 후부터 나타났다. 그는 2개 정도의 작은 클럽을 거친 후 세계의 조명은커녕 팬들의 기대조차 없었던 에버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에버딘은 스코틀랜드 리그에 속해있던 클럽이었는데 당시 리그는 레인저스와 셀틱이 지배하고 있었다. 레인저스와 셀틱 외 다른 스코틀랜드 클럽들은 리그 우승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알렉스 퍼거슨은 달랐다. 그는 에버딘의 조직력과 플레이를 향상하며 팀을 하나로 만들었고, 결국 리그 우승을 한 후 레알 마드리드를 꺾으며 에버딘을 유러피안 컵 위너스 컵 챔피언으로 등극시켰다. 언론과 팬들은 무섭게 팀을 지도하던 퍼거슨에게 "분노의 퍼기" (Furious Fergie)라는 별명을 주었다. 


에버딘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퍼거슨을 처음 만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굉장히 따가운 시선으로 그를 맞이했다. 부임 즉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알렉스 퍼거슨은 경질 위기까지 갔고, 팬들의 실망감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자신의 팀으로 만들고 있었던 알렉스 퍼거슨은 팀의 유스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외부에서의 영입이 아닌, 팀 내에서 서서히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당시 여유자금이 부족하고 선수 영입 능력이 지금보다 떨어졌던 상황에서 퍼거슨의 적극적인 유스 시스템 활용은 유나이티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단 말이다. 그리고 이때 "퍼기의 아이들" (Fergie’s Fledglings)이 탄생한다. 


신화의 탄생, 퍼기의 아이들: 



라이언 긱스, 트레블 당시 25살

게리 네빌, 트레블 당시 24살

데이비드 베컴, 트레블 당시 24살

필 네빌, 트레블 당시 22살

니키 버트, 트레블 당시 24살

알렉스 퍼거슨 감독, 트레블 당시 58살

폴 스콜스, 트레블 당시 24살

트레블 당시 퍼기의 아이들 평균 연령 = 23.8살


퍼기의 아이들의 시작은 라이언 긱스였다. 당시 유나이티드 유스팀에서 발군의 크로스 능력과 발재간을 뽐냈던 라이언 긱스는 데뷔하자마자 유나이티드의 주전 윙어로 자리매김했다.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이 상당히 발전돼 있다는 것을 느낀 알렉스 퍼거슨은 이후 데이비드 베컴과 폴 스콜스를 차례대로 데뷔시킨 후 니키 버트와 네빌 형제도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로이 킨과 에릭 칸토나도 이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해 왔다. 라이언 긱스와 데이비드 베컴이 지키는 좌우 윙어 라인, 폴 스콜스와 니키 버트가 있는 중원, 로이 킨과 에릭 칸토나가 이끄는 공격진, 그리고 게리 네빌과 필 네빌이 버티고 있는 수비진은 한마디로 완벽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들은 유스팀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터라 조직력은 이상할 정도로 좋았다. 유나이티드는 퍼기의 아이들의 좋은 활약으로 1992/1993, 1993/1994, 1995/1996, 1996/1997 리그, 1994/1995,1 995/1996 FA 컵, 그리고 1993, 1994, 1996, 1997 커뮤니티 실드를 우승했다.


1998/1999, 에릭 칸토나의 은퇴로 불안했던 스타트:



아무리 한 팀이 압도적인 페이스와 전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트레블을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은 총 일곱 팀이 트레블을 달성했지만 1998/1999 시즌 전까지는 1967년의 셀틱, 1972년의 아약스, 그리고 1988년의 PSV 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옛날에는 트레블 달성 간격이 꽤나 길었다. 1967년 셀틱이 트레블을 거둔 후 5년 뒤인 아약스가 5개의 트로피를 들었고, 그다음 트레블은 무려 16년 만에 PSV가 3개의 트로피를 따내면서 이루어졌다. 게다가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에릭 칸토나의 충격적인 은퇴로 팀의 주축 선수를 잃은 상태였다. 아무리 퍼기의 아이들이 대단한 선수들이라고 해도 이들은 큰 무대 경험이 적었으며, 에릭 칸토나같이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뿜었던 선수는 없었다. 로이 킨과 앤디 콜이 무수한 이적 루머를 뒤로하고 팀에 남은 게 가장 큰 위안거리였다. 실제로 알렉스 퍼거슨과 선수들은 1998/1999 시즌을 앞두고 굉장히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시즌이 막상 시작하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거침없이 승리를 기록했다. 팀에 남은 스트라이커 앤드류 콜을 발군의 득점력으로 퍼거슨 감독을 만족시켰고 퍼기의 아이들은 더욱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유나이티드의 좋은 시즌 스타트를 이끌었다. 앤드류 콜의 체력 부담을 고려해 아스톤 빌라에서 영입한 드와이트 요크도 엄청났다. 요크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자면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오기 전, 이미 아스톤 빌라에서 70골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던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웃고 있는 암살자" (Smiling Assassin)라는 별명이 드와이트 요크가 얼마나 위협적이었던 스트라이커였는지를 설명해준다. 앤드류 콜과 드와이트 요크의 콤비 플레이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직도 이들은 세계 최고의 명콤비들 중 하나로 뽑히는데, 에릭 칸토나가 없었던 상황에 이들마저 부진했다면 유나이티드는 트레블은커녕 우승컵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 했을 것이다. 


완벽한 선수단의 조화, 결국 극적인 일을 내다:



1998/1999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베스트 라인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피터 슈마이켈; 데니스 어윈, 야프 스탐, 로니 욘센, 게리 네빌; 데이비드 베컴, 니키 버트,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앤드류 콜, 드와이트 요크 (흥미롭게도 피터 슈마이켈, 데니스 어윈, 야프 스탐, 게리 네빌,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은 퍼거슨 선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리오 퍼디난드,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들과 함께 뽑혔다). 백업 선수들로는 테디 셰링험이나 필 네빌, 예스퍼 블롬퀴스트 등이 있었다. 이들은 전술면에서, 실력 면에서, 그리고 나이 면에서 완벽했다. 폴 스콜스와 라이언 긱스는 알렉스 퍼거슨의 전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들이었고, 앤드류 콜과 드와이트 요크는 일심동체의 공격 라인이었으며 골키퍼인 피터 슈마이켈을 포함한 수비진은 대단히 적은 실점률을 기록했다.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8경기 22승 13무 3패 승점 79, 감독 알렉스 퍼거슨

2위 아스날 38경기 22승 12무 4패 승점 78, 감독 아르센 뱅거

3위 첼시 38경기 20승 15패 3패 승점 75, 감독 지안루카 비알리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11/2012 시즌의 바이에른 뮌헨처럼 준우승 트레블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특히 리그에서는 아스날과 첼시의 추격이 매서웠다. 아스날과 첼시는 유나이티드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전력으로 유나이티드를 꾸준히 위협했고, 아스날은 시즌 마지막 라운드까지 유나이티드를 추격했지만 아쉽게도 승점 1점 차이로 리그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지 못 했다. 유나이티드가 아스날과 첼시의 리그 추격을 허용한 것은 결국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리그를 비롯해 FA 컵, 리그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 모두 신경 쓰던 유나이티드의 주축 선수들은 엄청난 체력 부담으로 큰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극적인 결과는 극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도 극적인 트레블은 극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이미 거론한 리그에서도 승점 1점 차이로 아스날을 따돌리며 챔피언 자리에 등극했고, FA 컵에서도 상당한 어려움 속에 트로피를 들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추가시간에서의 골로 빅이어를 들어 올렸다. 


“Manchester United have reached the Promised Land!”:



1998/19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일방적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지배했다. 마르오 바슬러의 선제골로 바이에른 뮌헨이 앞서가기는 했지만 이것 외에도 뮌헨 선수들의 수많은 슈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포스트를 강타하며 그날 경기는 사실상 바이에른 뮌헨이 이겨야 했다. 리그와 리그컵, 그리고 FA 컵에서 체력이 바닥날 만큼 바닥날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좋은 경기력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렇게 유나이티드의 야심 찬 꿈은 없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90분 30초 경 셰링험은 라이언 긱스의 슈팅에 살짝 발을 대며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코너킥 상황이었던 92분 17초 경에 일은 터졌다. 솔샤르가 극적인 역전골을 터트린 것이다. 당시 해설을 하고 있던 클리브 틸데슬리는 소리쳤다. “Manchester United have reached the Promised Land!”


부족했던 팀의 뜨거운 열정이 만든 최고의 결과:



1998/1999 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이룬 후, 벌써 바르셀로나와 인테르,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 총 3팀이 트레블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모두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항상 최선을 다하며 최고의 결과를 만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에 트레블을 이룬 셀틱과 아약스, 그리고 PSV도 그랬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것은 어딘가 특별했다. 한때 경질 위기에 있었던 감독이 갓 프로 무대에 데뷔한 풋내기들과 그때까지 다뤄보지 못한 슈퍼스타들을 하나로 뭉쳤다는 것조차 대단하게 들린다. "믿을 수 없다. 정말 믿을 수 없다. 축구는 피 튀기는 지옥이다" - 알렉스 퍼거슨. 비록 부족했지만 최고의 투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 이것이 축구팬이 아직도 그때의 센세이션을 잊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글: 프리사이스 패스

http://blog.naver.com/kunno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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