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게임 회사 대표의 직장 생활 2
인사시스템 vs 게임 시스템
넷마블 대표 시절 올린 글
남궁훈님[대표이사]
조회 878 2010-03-19 05:54:32
게임의 모습과 기업 조직의 모습을 보면 많은 부분들이 닮아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이 하나의 RPG 게임과도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기업 조직에 들어와서 신입이 되면 설렘에 멋모르고 이 몹 저 몹 잡으면서 어리바리 보스몹 건들다 즉사도 하고, 때론 별 것도 아닌 아이템 득템에 기뻐도 하죠.
자기 명함이 나왔다는 것에도 기쁘고, 별 것 한 것도 없고 교육만 받았는데 월급은 나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무념무상의 노가다로 대리 정도 달고나면 랩업의 길은 멀도고 험하다는 걸 느끼고,
나는 언제 랩업해서 부장 되고, 임원 되고, 대표되나? 내가 만랩은 찍을 수 있을까? 그냥 접고 딴 게임할까? 저거 재밌어 보이던데..... 갈등과 혼돈의 시기가 오기도 합니다.
인사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더욱더 조직은 게임과 비슷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L1.. L2............. L7 레벨업하고, 끊임없는 경험치 획득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퀘스트....게임도.. 조직도... 참여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또 경쟁에서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것에 크게 닮아있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사와 게임의 큰 차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세계의 인사가 더욱 불합리하다는 것입니다.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여 적용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평가와 보상을 하다 보면 항상 불만족한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제 경험을 뒤돌아 보면 보상이란 것은 꼭 인사시스템에서만 지급되는 경험치나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일에 대한 애정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주위 사람들에서 쌓여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위 "reputation'이라는 무형의 가치가 더욱 큰 보상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꼭 누군가가 부여하는 보상이 아니라 자기가 재밌게 일을 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는 일하는 '재미'가 사실 더욱 큰 보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끊임없는 인사에 대한 불만족으로 회사를 퇴사하게 이른 사람에 하나입니다. 물론 더 큰 꿈을 위해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 한 부분도 있지만, 조직에서의 대우가 만족스러웠다면 그 틀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첫 직장인 삼성에서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입사를 하고 정말 재밌게 일했습니다. 영업기획팀에서 소속되어 이것저것 학생 시절 상상만 하던 것이 실질적으로 기업이란 곳에 소속되어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기획팀 소속이지만 제품 출시 기일이 눈앞에 오면, 개발팀 옆에 가서 PC 커놓고 대부분 게임하지만, 같이 밤새워드리면서... 컵라면도 끓어 드리고, 아침에 싸우나 같이하면서 해장국 먹고.... 제품이 나오면 무슨 생명이라도 태어난 듯 기뻐했었죠...
하지만 입사 1년 정도 지나니 인사제도에 대해서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내 1년 선배들은 모두 스톡옵션을 받아서 자산이 벌써 1억이 되니 어쩌니 하는데, 연봉 1800만 원 언제 모아서 난 1억 버나.... 저 선배는 맨날 매점에서 노닥거리기만 하는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남는 건 뭔가..... 아, 내가 열심히 일해봤자 내가 더 보상받는 것은 없구나.....
2년 차가 되어 조직의 한계에 대해서 더욱 느끼며 불만은 커져가는데 IMF라는 것이 터져서 퇴사를 하면 6개월치 월급을 준다는 겁니다. 아.. 이게 웬 떡인가... 하고 6개월치 월급에 혹해서 별다른 계획도 없이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를 하고 사무실을 열어놓고 시작했습니다..
"아, 앞으로 뭐할까?' 참 한심했습니다. 경영학과 나왔다는 놈이 사업자 등록증 내는 법도 모르겠더군요.
사무실에서 결국은 게임만 했습니다.. 더욱 한심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습니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돈이 되는 사업이 무엇인가?
1998년도에 미국에서도 인터넷으로 돈이 되는 사업은 딱 2개였습니다. "sex" and "game" 그래... sex는 좀 그러니깐 게임을 하자....
그런데 어떻게 하지? 그랬습니다. 문과생인 저는 게임을 하고 싶어도 만들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말 답 안 나왔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하루 소비하는 라면값 1300원이 아깝습니다. 사무실에 코펠과 버너를 사고 집에 있는 라면 한 박스를 가져옵니다..
계속 한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같은 날 퇴사하신... NHN 전 대표이자 유니텔 개발팀 선임연구원이셨던 김범수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뭐하냐고... 게임을 하나 만들고 있는데 이걸 사업화해주면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주식 지분도 주고, 월급도 주겠답니다.. 흑흑...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삼성에서 헛 일 한 것이 아니구나.
이러한 상황은 10여 년 후 또 비슷하게 벌어집니다. 재밌게 일을 해왔지만 또 욕심은 커지고 불만도 커졌습니다. 아, 떠나야겠구나... NHN을 떠났습니다.
어리석게도 또 이런 후회를 합니다.
내가 쏟은 애정, 열정, 지나고 나니 다 쓸데없구나....자기 회사인 줄 착각하고... 월급은 직원들 술 사주라고 나온 돈인 줄 알고....아 떠나니 다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것도 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보상이 왔습니다. CJ그룹에서 연락이 왔고, 그룹에서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고 이곳저곳 전화를 하는데... 지나고 나서 알고 보니 어느 한분 나쁘게 이야기하신 분이 없었습니다.
아, 역시 가장 큰 보상은 reputation이구나....
그리고 재밌게 일해왔던 지난 10년이 왜 부질없었겠는가...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물론 인사 시스템에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완벽하고 공평하게 이뤄지면 가장 좋을 것이고, 인사제도에 대해 연구하는 분들의 최종 목표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인사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개개인의 자기에 대한 평가와 조직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일치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