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게임에 빠지는 이유
할 일이 많음에도 신랑에게 게임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큰 서사 안에 작은 퀘스트들을 하나씩 깨나가는 영웅 서사.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왜 하필 게임인지
나조차 이해되지 않았는데
게임을 하다보니
서서히 그 이유가 보였다. 아니, 알 것 같다
막연함이 무서웠던 거야.
게임 안의 ‘나’는
당장 눈앞의 악인들을 주먹으로 때려눕히기만 하면
그 즉시 보상금과 경험치를 얻는다.
그걸 바탕으로 나는
하수에서 중수로,
중수에서 고수가 된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러 번 지원서에서 떨어지고,
내 지원서를 받아줄 곳이 있는지,
어디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시작한다 해도 좋은 결말을 낼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그저 막연하다.
게임에서는 다르다.
눈앞의 적 몇 명만 물리쳐도
나는 덕이 쌓이고,
주변 인물들에게 칭찬을 받고,
체력도 수치로 명확히 향상된다.
게임의 세계는
무엇이든 선명하고 명확하다.
막연함과 싸워야 함에도
무력감에 주저앉아버린 백수에게
이토록 분명한 세계는
너무나도 유혹적이다.
백수가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거라도 해냈다는
작은 자신감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뭐라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해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