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63일차 (26.2.1.일요일)

백수에게 쉽지 않은 단어, 포기

by Preni

몇 일 전 이력서를 쓰다 ‘나만의 장점’이라는 항목 앞에서 멈췄다.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많은 포기를 해본 사람이라는 점.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포기를 거쳤기에

나는 포기 이후의 순간을 살아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지점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겠다는 선택,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판단.

내게 포기는 그런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했던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포기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도, 그때의 사람들도

비난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자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후회가 시작되었다.


‘그때 이렇게 해볼 걸.’

‘그때 그러지 말 걸.’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포기가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무리하다가

나를 영영 잃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포기 후에

모든 것이 완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삶이 가장 기대어왔던 ‘포기’ 말고도

다른 선택들에 기대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적은 나의 장점.

많은 포기를 해왔다는 경험.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포기보다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


당황스러웠다

포기를 해봤기에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나의 선언이자 ..

어찌보면 나를 살린 순간들인데

누군가에게는

그저 쉽게 사는 습관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끈기 있게 잘 해내겠다는 포부였는데

내게 유의미했던 ‘포기’라는 단어는

다른 이들에게는 변명으로 들렸나 보다.


이력서를 쓰며 생각해본다.

내가 이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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