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81일차:번외-관계를이해하는법,운전연습(5)

브레이크와 엑셀의 방향, 그 차이(26.02.19.목요일)

by Preni


우리 남편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늦게 출발했다.

퇴근 시간이라 막힐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안전벨트를 메고,

시동을 켜고,

사이드미러를 맞추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리고.


음악은 바쁘니까 생략.


지금도 초보지만,

지금보다 더 초보였던 왕초보 시절에는

항상 주문을 외우고 시작했다.


‘내 손에는 핸들이 있고

내 발에는 브레이크와 엑셀이 있다.

모든 상황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러고도

브레이크, 엑셀, 전조등, 깜빡이, 와이퍼…

거의 모든 기능을 한 번씩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은 급하니까

그걸 다 할 수는 없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확인하고 출발한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살짝 떼며

출~발.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매 순간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은 뭘까.’


바로

브레이크와 엑셀의 방향 차이.


브레이크는

발을 그대로 직선으로 누르면 된다.


엑셀은

발을 오른쪽으로 꺾어야만 밟힌다.


왜 브레이크는 이렇게 직관적일까.

왜 엑셀은 한 번 더 방향을 틀어야 할까.


아마도

가장 위급한 순간은 ‘부딪침’이기 때문 아닐까.


당황하면

사람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한다.

그때 직선으로 힘이 실리도록

브레이크가 놓여 있는 게 아닐까.


운전은 흐름이다.

흐름을 맞추려면 엑셀도 중요하다.


하지만 속도를 올리는 일은

항상 한 번 더 생각이 필요하다.

발을 꺾어야만 눌릴 수 있도록

설계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관계도 그렇다.


관계의 기본값은 대화이지

분노가 아니다.


하지만 불안이 내재된 사회 안에서

대화는 생각보다 어렵다.


그럴수록

속도를 올리는 엑셀이 먼저가 아니라

언제든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상대의 말을 끊기 전에

내가 멈출 수 있는 힘.

감정이 치고 올라오기 전에

잠깐 멈추는 선택.


관계든 운전이든

사고보다 예방이 먼저이니까.


그리고 오늘 나는

급하게 출발했지만

브레이크의 위치만은 잊지 않았다.


아마

관계도 그렇게 연습하는 중인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속도보다는 멈춤을 연습하는 중이다

어쩌면 백수라서 이게 더 마음에 드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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