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110일 차:마주침과 인사 (26.03.20. 금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들이 두려웠던 거야

by Preni

집 밖을 나서다 보면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와 청소 여사님들.


반갑게 인사는 하지만

어쩐지 조금 어색해서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걸음을 늦추거나

괜히 타이밍을 재본다.


처음엔 그냥

낯설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피하고 싶었던 건

사람이 아니었다.


마주치고,

인사를 하고,

짧은 말을 몇 마디 나누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드러나는 나.


그리고 그다음.


내가 없는 자리에서

가볍게 오갈지도 모를 이야기들.


나는 그게… 좀 무서웠다.


걱정인 척 건네지는 말들 속에

사실은 평가나 추측이 섞여 있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에.


누군가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는 편하지 않은 편인데,

그 한가운데 내가 있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 속의 나’를 피하고 있었던 거.


돌아보면

전 직장에서도 비슷했다.


사람들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말들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멀어졌다.


힘들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백수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괜히 눈치를 보고,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다가

결국은 먼저 멀어지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그래,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다.


모든 마주침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지는 건 아니고,

설령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무언가를 말한다고 해도

그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냥

인사 한 번 하고,

지나가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짧게 닿고,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깊어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래서 언젠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나는 그냥 인사를 하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적당히 닿고,

적당히 나를 지키면서.


그래도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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