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아침은 영어로 시작한다.
매일 아침 영어 라디오로 시작한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눈을 뜨면, 12시까지는 영어 영상만 듣고 본다.
건조대를 정리하면서, how are you
변기를 닦으면서, i’m on the same page
청소기를 돌리면서, so nice of you
어느새 내 아침이 되어버린,
익숙해진 방식.
그런데
개운한 시작은 아니었다.
백수가 되고 나서의 아침들은
예전 직장의 기억으로 시작됐다.
주저앉고 싶었다.
더는 이렇게 아침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덜컹
큰 바윗돌이 연못으로 들어온 것처럼
큰 소리에 한 번
그 무게에 두 번
결국, 나는 세 번 무너졌다.
그런 순간들이 싫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욕실 벽을 수세미로 박박 닦으며
목소리에 힘을 담아
애써 영어를 외쳐대었다.
해석이 되는지,
문장에 맞는지
상관없었다.
그저
그 힘든 기억 말고
다른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내 머릿속에 더 이상 그 기억들을 담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기억들로
채우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자
꾸역꾸역 내뱉던 영어들이
어느새 힘을 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나온다.
사연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사연을 들으며 슬퍼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분노와 억울함이 아닌,
온전한 나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기억을 떠올려도
덜 아픈 날이 오겠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조금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