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재즈 피아노의 교과서, 프레드 허쉬의 공연을 맞이하며.
오는 월요일 (4월 3일) 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쉬의 내한공연이 열립니다. 이번 공연은 피아노 솔로 콘서트로, 공연을 녹음해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늘 음반 사기도 힘들고 공연은 일본에 비하면 적다고 불평하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본 옆에 있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는 데에 조금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도 해요. 일본 스케쥴 덕분에 한국을 같이 찾는 뮤지션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렇게 만난 한국의 관객들과 감정적 교류를 쌓아 다시 또 다시 한국을 찾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중음악과 엘리트예술 사이의 어느 경계를 오가는 현대의 재즈를 동아시아의 끝에서 만나게 된 우연과 우연의 일치가 마치 재즈의 우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과도 같다는 꿈보다 해몽 식의 생각도 듭니다.
사실 프레드 허쉬는 국내 리스너들에게 그렇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재즈 뮤지션 자체가 그렇게 익숙한 이름들이 아니긴 하지만요...) 허쉬는 1955년생으로, 40년대생인 칙 코리아나 키스 자렛의 다음 세대를 바짝 쫓아가는 뮤지션 그룹이지요. 사실 실제 나이는 열 살 남짓 차이가 나는데, 그들 사이에는 나이를 넘어선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비밥의 대폭발을 살아서 경험하고 레전드와 직접 연주할 기회를 얻었던 이들이 칙과 키스라면 프레드의 세대는 말 그대로 '전설을 따르는' 세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거에요. 물론 밥의 폭발과 함꼐 했던 뮤지션들 중 아직도 건강하게 음악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한 것과 들어서 아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요.
뭐 그렇다 한들, 허쉬와 동료 뮤지션들의 연주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거대한 천재의 뒤를 따라가는 또다른 천재들은, 그 눈부신 빛을 따르는 그림자 뒤에 있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허쉬는 정말 훌륭한 연주자임에도 교육자로서의 면모, 혹은 커밍아웃한 게이인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 탓이 클 거에요. 그리고 사실, 재즈 리스너라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레전드의 명반만 챙겨 듣기에도 시간이 모자란게 재즈 감상의 즐거운 고통(?) 이겠죠.
하지만 그 모자란 시간에도 우리는 프레드 허쉬를 들어야만 합니다. 허쉬는 현대 재즈 피아노의 교과서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프레드 허쉬의 연주에서 어떤 진보나 변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재즈가 지켜 온 전통을 더욱 아름답게 가꿔가고 있거든요. 허쉬의 트리오 연주는 아주 안정적인 앙상블을 들려주며, 특히 빌 에반스의 트리오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서정적이지만 또한 감정과잉의 늪에 빠지지 않는 피아노 트리오의 미학을 들려줍니다. 듀오 연주에서는 연주자들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절묘하게 맞춘 훌륭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허쉬의 연주는 솔로 연주입니다. 허쉬의 솔로는 아주 안정적이고 잔잔하며 때로 매우 정적입니다. 어떻게 듣기에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애틋하거나 따뜻한 감정의 표현을 절대로 놓치지 않지요. 그걸 '덜 재즈같다' 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재즈의 어떤 매력은 키스 자렛의 솔로처럼 불꽃같이 터져나가는 즉흥의 순간에 있다면, 또 어떤 매력은 허쉬의 연주처럼 아주 섬세하고 미묘하게 주제와 변주를 오가고 연주자의 마음을 고운 소리에 담아 들려주는 데에 있기도 한거죠.
특히 허쉬의 솔로 연주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몽크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몽크를 다시 연주합니다. 하지만 허쉬만한 대가는 없다고 저는 감히 단언하겠습니다. 허쉬는 몽크의 투박한 스타일을 완전히 해체한 다음, 탁월한 송라이터였던 몽크의 곡에 담긴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성을 본인의 스타일로 다시 연주합니다. 아주 추운 겨울 꽁꽁 얼어버린 얼음장같은 차가움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그 안에 담긴 몽크의 유머와 따스한 마음도 느낄 수 있어요. 몽크의 아름다운 곡들을 접하는 데에 몽크 자신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면, 프레드 허쉬의 솔로 연주 앨범인 [ Thelonious ] 를 통해 시작하면 됩니다. 다만, 이 앨범은 지금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아주 큰 단점이지만요.
허쉬가 팔메토 Palmetto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기 시작한 뒤로, 워너-논서치에서 발매했던 앨범들은 특히 구하기가 힘들어졌어요. 명 작곡가인 빌리 스트레이혼, 모두가 사랑하는 조빔의 곡들, 스탠더드를 듣는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제롬 컨과 오스카 해머스타인, 그리고 콜 포터의 곡들을 아름다운 피아노 솔로 연주로 빚어놓았는데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제한적으로만 들을 수 있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들어 보세요. lotus blossom에서 수줍게 피어나는 마음을, It might as well be spring 을 들으며 봄처럼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특히 석 장 짜리 앨범인 [songs without words] 는 애플 뮤직에서도 들을 수 있으니 꼭! 감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프레드 허쉬를 지금 우리가 더 열심히 듣고, 기회가 되면 공연도 열심히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허쉬 본인이 최근 열심히 라이브 음반을 내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건강 문제 때문입니다. 허쉬는 에이즈 환자이고 몇 년 전에는 정말 큰 고비를 넘기기도 했거든요. 사실 재즈라는 음악의 본질적인 재현 불가능성을 생각한다면, 허쉬 자신이 가장 용감하게 - 지금 붙잡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음악인 재즈를 통해 남은 생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허쉬의 연주들이 더 특별하게 들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죠.
뭐 그런 저런 이유들 말고도 허쉬의 연주를 들어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특히 브래드 멜다우의 팬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뮤지션이 프레드 허쉬입니다. 멜다우는 뉴스쿨에서 허쉬를 사사했고, 허쉬에게서 피아노 솔로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하지요. 허쉬 본인은 멜다우가 자신에게서 대선율을 쓰는 법을 영향받았다 생각합니다. 또한 더 배드 플러스의 피아니스트인 이단 아이버슨도 허쉬를 사사했고요.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지만, 허쉬는 그런 코멘트에 "나 걔들보다 대단한 애들 많이 가르쳤어!" 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연장에서 보이는 모습도 항상 친절하고 다정한 선생님 같지요. 좋은 연주와 함께 따뜻한 마음도 언뜻언뜻 느낄 수 있답니다.
프레드 허쉬의 공연에서 익숙한 스탠더드 넘버를 다시 만나며 탄식했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작은 숨소리조차 방해가 될 것 처럼 섬세했던 the song is you, 활기 속에서도 약간의 우수를 느꼈던 whisper not 같은 곡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혹은 허쉬의 아름다운 곡인 valentine 을 들으며 느꼈던 다정하면서도 슬픈 마음을 기억합니다. 상반되는 이미지의 조화와 대립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인류사에 길이 내려오는 고전적인 것이라면, 허쉬의 음악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며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고아한 아름다움이겠지요.
그가 건반 앞에서 손을 모은 뒤 들려주는 아름다운 소리들을, 그 소리에 담긴 이야기와 무한한 우주를 가만히 그려봅니다. 언젠가 끝나버릴 생이라 해도, 우리의 흔적은 영원히 이 별에 그리고 우주에 남을 테고, 허쉬 또한 남은 생의 흔적을 그렇게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 붙잡지 않으면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음악, 재즈란 그런 것이죠. 어제의 연주와 오늘의 연주는 다릅니다. 내일의 연주는 또 다르겠지요. 오직 지금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저는 또다시 프레드 허쉬의 콘서트에 찾아갑니다. 부디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허쉬가 건강하게 오래 우리의 곁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