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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불 May 30. 2017

나는 서재페를 싫어한다.

일전에 NPR에 한국의 재즈 페스티벌에 대한 기사가 나간 적 있다.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온통 객석에 하얗게 센 머리만 보이는 북미의 재즈 공연장에 비하면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한국의 재즈 페스티벌은 아주 신선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조슈아 레드맨의 코멘트도 있었는데 그는 "한국에서는 아직 재즈가 쿨하고 힙하고 섹시하다."라는 과한 칭찬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기사에는 한국의 재즈 페스티벌에 오는 관객이 전부 재즈 팬도 아니고 그들이 앨범을 사는 것도 아니라는 정확한 분석도 붙어 있긴 했지만, 조슈아 레드맨의 저 과한 칭찬을 생각하면 난 언제나 미안해지는 것이다. 조슈아 레드맨은 제법 여러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고, 데뷔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고, 재즈 레전드 듀이 레드맨의 아들이고, 그 자신도 데뷔 때부터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온 아티스트이다. 내 생각에 그는 이제 명인 대접을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는 그를 오후 메인 스테이지의 오후 2시에 세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건 2013년의 일인데,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레드맨과 동료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동네 페스티벌에서라면 헤드라이너 급인데 왜 조슈아 레드맨은 오후 2시의 땡볕 아래에서, 듬성듬성 빈 스탠딩존을 마주하고 연주해야만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인터뷰에서까지 괜한 인사치레를 한 것일까.


개인적으로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하 서재페)에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개근한 것은 아니지만 자라섬에 여태껏 딱 한 번만 간 것에 비하면 서재페는 꽤 여러 번 가긴 했다. 과거 회관~ 류 공연이었을 때도 간 적이 있고 야외공연으로 바뀐 뒤에도 여러번 갔는데, 솔직히 음악을 듣기 위해서 가긴 하지만 페스티벌의 컨셉부터 라인업 선정이나 운영까지 트집 잡고 싶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실내 공연일 때도 영 애매한 라인업과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너무나 부적절한 공연장 때문에 썩 좋은 인상이 아니긴 했는데, 실외 공연으로 페스티벌의 컨셉이 바뀌면서부터는 거부감이 더 심해졌다. 정확하게는 아직 실내공연이었던 시절에 개리 버튼 쿼텟의 공연을 '팻 메시니와 친구들'이라고 시작한 때부터 나는 매년 서재페 라인업이 나오는 시즌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티켓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쿼텟 투어는 다름 아닌 '돌아온 개리 버튼 쿼텟 Gary burton quartet revisited'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재즈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의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의문이 분노와 실망으로 점점 바뀌게 된 것은 정확히 서재페가 올림픽공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부터다. 물론 서재페의 라인업에는 매년 한두 팀의 재즈 빅네임은 꼭 들어가 있다. 그게 난데없이 잭 드조넷일 수도 있고, 칙 코리아와 허비 행콕, 아르투로 산도발일 수도 있다. 브라이언 블레이드나 조슈아 레드맨 같은 튼튼한 중진들도 종종 등장한다. 가끔 라이징 스타도 있다. 그런데, 전체 라인업을 살펴보면 재즈는 영 홀대받는 느낌이 크다. 재즈 페스티벌이라면 메인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는 재즈 아티스트를 세우는 게 상식 아닐까? 혹은 재즈풍의 대중음악가라면 흥행을 위해 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재페의 헤드라이너는 언제나 의문 투성이이다. 데미안 라이스는 재즈 뮤지션인가? 절대 아니죠.


물론, 몽트뢰 페스티벌에는 타 장르 뮤지션들도 많이 등장한다. 올해 움브리아 페스티벌에는 크라프트베르크가 나온다고 한다. 재즈 페스티벌은 아니지만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수많은 장르를 커버하는 페스티벌이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도 그 비슷한 선상에서 종합 음악 페스티벌을 지향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작년이나 올해처럼 DJ도 있고 힙합 뮤지션도 있고 재즈 뮤지션도 있고 인디 록밴드도 있고 한 뷔페식 구성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그걸 이해까지 해 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왜냐? 어차피 단독으로 유치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많지 않아 일본 스케줄에 곁다리로 붙여서 와야 한다면 더 좋은 선택도 할 수 있을 텐데 빅네임은 말그대로 이름값에만 치중한다는 점, 간혹 좋은 라인업을 뽑아옴에도 엉뚱한 시간표 배치로 재즈 페스티벌이 재즈를 홀대하는 꼴이 되는 것, 그리고 로컬 밴드에게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서재페는 음악의 다양성을 위해 다른 장르를 함께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재즈로는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재즈의 이미지만 값싸게 팔고 나머지 시간표는 관객 동원력이 좋은 아티스트로 채워서 '봄날의 피크닉'이라는 이미지 장사만 한다는 의심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서 제발 재즈 좀 빼라고 하는 재즈 팬이 한둘도 아닌데, 그리고 서재 페가 한국의 재즈 씬에 하등 도움이 되는 것도 없는데 내가 뭣하러 그것을 이해해 줘야 하냐 말이지.


서재페가 로컬 뮤지션을 대우하는 방식에는 정말 문제가 많다. 한국에서 서재페처럼 큰 페스티벌에 재즈 뮤지션이 설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전국에서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열리고 그중에 재즈 행사도 있지만, 자라섬과 서재페를 제외하면 재즈 뮤지션이 설 수 있는 큰 무대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서브 스테이지 한 군데는 로컬 뮤지션을 위한 프로그램이 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컬 씬의 재즈 뮤지션들 중에는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서재페에 개근하는 로컬 뮤지션이래 봐야 윤석철 트리오 정도다. 다른 뮤지션에게는 기회가 안 주어지는데 배우 유준상의 재즈밴드는 두 번이나 서재페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거, 이 행사가 재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서재페는 재즈의 이름값, 재즈의 세련된 이미지, 빅네임의 명성이 중요하지 로컬 음악 씬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음악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적어도 로컬 밴드가 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은 있다. 오늘도 클럽에서 공연하는 재즈 뮤지션들, 연주 의뢰받고 가서 푼돈 받고 오는 뮤지션들, 연주비도 못 받는 뮤지션들이 있는데 배우의 부업은 이렇게나 쉽게 인정받는다. 안 그래도 팬도 적고 파이도 적은 로컬 재즈씬인데 이렇게 큰 행사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난 매년 묻는다. "재즈 뭘까."


재즈는 뭘까? 나도 모른다. 서재페에 온 사람들은 재즈를 좋아할까? 아닌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은 음악을 안 듣는다. 자라섬에서도 보고 서재페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두 페스티벌은 흥행이 아주 잘 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은 재즈 음악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싫어한다고 밝힌다. 아마 현장에 오는 사람들 중 일부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왜 오느냐? 피크닉 하러 온다. 피크닉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데 다른 음악 틀어놓고 있는 사람도 있고, 무대에서 뭘 하든 신경 안 쓰고 밥 먹고 수다 떠는 사람도 많다. 물론 개중에 연주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고, 라이브를 듣고 재즈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록 페스티벌에 가도 잘 사람은 자고 먹고 놀 사람은 놀고, 펜스 앞에서 신나게 달릴 사람은 또 달린다. 그런데 재즈 페스티벌에는 유독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재즈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주 다양한 이유로 안 좋아하면서도 재즈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사랑에 빠질 준비는 되어 있다. 왜냐면 재즈는 세련되고, 우아하고, 도회적이고, 그냥 멋진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소음의 일부일 뿐이다.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피상적인 이미지, 나를 돋보이기 위한 액세서리로만 소비하려는 사람들에게 음악 페스티벌은 그냥 인증샷을 남기기 위한 장소에 불과하다. 이러니 서재페가 10회를 넘어가는 행사가 되고, 유료 관객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해도, 사람들이 봄이면 서재페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큰 페스티벌이 되었다고 해도 한국의 재즈씬은 여전히 손바닥만 하고 재즈팬은 한 줌 밖에 안되는 거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한국의 재즈씬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사실 페스티벌이 음악씬에 기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르의 페스티벌에 설 로컬 뮤지션이 나오려면 기반이 탄탄해져야 한다. 페스티벌은 뮤지션을 성장시킬 힘이 있는데도, 서재페는 한국의 재즈씬과 재즈팬들 그리고 전 세계의 재즈씬의 사정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얄팍하게 재즈의 멋진 이미지만 끼워팔 뿐이다. 올해는 재즈 뮤지션들 대부분을 전문 공연장에 따로 모았다는데, 동선도 엉망이었다고 하고 음향도 별로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밴드 리더와 함께 온 사이드맨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으며  셋리스트도 공지되지 않으며, 라인업에 오른 아티스트의 이력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공연 기획을 하고 운영을 한다. 난 내가 이 페스티벌을 좋아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나같은 변방의 재즈팬이 투덜거려봐야 바뀌는 것이 없을지라도 계속 투덜거릴 것이다. 나는 재즈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조슈아 레드맨과 더 배드 플러스가 오후 2시의 땡볕 아래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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