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리가에서 옐가바까지의 험난한 여정..
머릿속으로 수백 번은 상상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설렘보다도 묘한 긴장이 먼저 올라왔다.
누군가 “어떻게 유럽 자전거 일주를 하게 됐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달 동안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건너며 10개국이 넘는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그냥 여행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세계여행을 하며 많은 나라를 보고, 많은 도시를 다니는 삶이 어느 순간 조금은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이 권태가 되어갈 즈음이었다.
그 생각이 자전거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오늘은 첫날이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목표는 라트비아 리가(Riga)에서 옐가바(Jelgava)까지 약 50km.
차로 가면 약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이고,
걸어서 가면 10시간 이상은 걸리는 거리다.
자전거로는 솔직히 아직 감도 없었다.
유튜브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라트비아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무뚝뚝했고, 친절하다기보다는 거리감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라트비아는 오랫동안 러시아(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91년에 독립하기 전까지, 정치·문화적으로 억눌린 시간이 길었고, 그 시간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 전체가 조용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제 미리 자전거 세팅을 맡겨두어서, 우리는 에어비엔비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픽업하러 갔다.
그리고 가장 큰 고민이었던 ‘짐 문제’.
유아용 안장에 우리 배낭을 실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튼튼했다.
의외로 안정감이 있었고, “어, 이거 진짜 될 수도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전 10시.
구글 지도를 켜고, 드디어 출발.
백짝꿍은 운동 감각도 좋고, 평소에 운동도 많이 해서 크게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평소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아니고, 운동이라곤 숨 쉬기 정도인 사람.
내 키보다 큰 자전거를 올라타는 것부터가 이미 작은 도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사버린 자전거다.
이제 적응해서 달리는 수밖에 없다.
첫날인 만큼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힘들면 멈추고, 물 마시고, 쉬고, 길도 헤매고.
그러다 보니 걷는 거랑 거의 비슷한 속도였다ㅋㅋㅋ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갔던 시즌이 장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트비아 리가는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또 오고… 이게 계속 반복됐다.
결국 소나기를 피해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서서 또 쉬어가기로 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일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비가 다시 그치고, 다시 출발.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로 가다가 공사 중인 도로를 만나고,
‘이쪽으로 가도 되겠지’ 하는 마음을 따라갔다가 길이 꼬여버렸다.
원래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걸어도 1시간인 거리였다ㅎㅎ..
힘이 바닥나서 주유소에 잠깐 멈췄고, 처음 보는 햄버거 집(HESBURGER)에 들어갔다.
일단 뭐라도 먹자. 진짜 아무거나. 뭐라도 먹으니 힘이 났다.
“이제 진짜 좀 달려보자!”
문제는, 자전거를 이렇게 오래 타본 적이 없다는 것.
예상하지 못한 곳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가랑이, 엉덩이, 손바닥 여기저기 쑤시기 시작.
굳은살이 먼저 배기든, 장비를 바꾸든,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맑아진 하늘, 푸른 풍경, 잘 닦인 자전거 도로.
“이제 진짜 달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다시 오프로드. 그리고 다시 비.
그것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우리가 달릴 수 있는 아주 좁은 도로 옆으로 큰 트럭과 차들이 쌩쌩 지나갔다는 것.
‘내가 혹시라도 균형 잃고 차 쪽으로 넘어지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리가에서 출발한 지 약 4시간.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 풀고 쉬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 20km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5시간째 달리던 순간, 옐가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6시.
드디어 옐가바 도착.
원래 하루 100km를 목표로 했던 계획은,
이날부로 마음속에서 조용히 삭제되었다.
100km는 꿈도 꾸지 말자.
이제 남은 건 저녁 먹고 숙소 가는 일.
“맛집 찾을 힘도 없다. 그냥 보이는 데 들어가자.”
그렇게 들어간 식당이,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 팬시한 곳이었다.
우리 빼고 모두가 멋진 옷을 입고, 여유롭게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비 맞아서 생쥐꼴ㅎㅎ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았다.
열심히 달려온 하루였으니까.
밥을 먹고 나왔는데, 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맞고 갈 수 있는 비가 아니었다.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고 온 남자 두 분도 멈춰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30분을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결국 그분들이 먼저 출발했고, 우리도 그냥 가기로 했다.
숙소까지 600미터.
그 짧은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온몸이 다 젖고, 힘이 쭉 빠진 상태.
백짝꿍이 자전거를 주차하는 동안 기다리다가
모기가 눈두덩이를 물어서 한쪽 눈이 밤탱이가 됐다.
계획과 달리 밤 9시가 넘어서 숙소 도착.
잠만 잘 거라 저렴한 숙소를 잡았고,
대충 씻고, 젖은 것들 걸어놓고 그대로 잠들었다.
내일은 또 일찍 일어나서 출발해야지.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u2H8Rs7AE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