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유럽 일주하길 참 잘했다.

자전거를 타는것도, 인생도 경쟁이 아니다.

by 현존
자전거를 타는 것도, 인생도 경쟁이 아니다.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오늘은 오전 9시에 모든 짐을 싸서 숙소를 나섰다.


어제 하루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데 온몸이 욱신거리고 쑤셨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피곤하더라도 나름 일찍 출발해서 호텔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오랜만에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자전거 일주를 시작한 뒤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체력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함께 있는 시간만큼이나 서로의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부부다.


지금까지의 누적 주행거리는 약 1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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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리투아니아 요니슈키스에서 시아울리아이까지 약 40km를 달릴 예정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먹구름에 폭풍우까지 쏟아졌지만, 오늘은 거짓말처럼 사이다 같은 청량한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이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오전 9시 30분, 출발.

나름 컨디션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꼭 양질의 식사를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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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리투아니아 요니슈키스의 동네는 주택들이 하나같이 크고 마당도 엄청 넓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 특유의 풍경이었고, 집들은 많은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요니슈키스는 리투아니아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전형적인 발트 지역의 농촌 마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거 공간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고 섞여 있는 곳이라 풍경이 넓고, 고요함이 일상처럼 깔려 있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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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 마트에 들러 텀블러에 물을 채우고, 어제 새로 샀던 빨간색 장갑은 버리고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 목장갑으로 갈아탔다.

어제 샀던 장갑은 무슨 독성 물질이 들었던 건지, 비에 젖자마자 백짝꿍도 나도 손이 따갑고 심하게 화해졌고, 손에 밴 독한 냄새는 한참이 지나도 빠지지 않았다.

결국 다시 목장갑. 역시 검증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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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니슈키스를 벗어나는 표지판을 지나 달리자 어제와는 전혀 다른 길이 나왔다.

위험천만한 차도 대신 잘 닦인 자전거 전용도로. 그 순간 백짝꿍은 외쳤다. "자전거길 만세!!!!!!!!"

고작 도로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달리는 속도도, 몸의 긴장도, 마음의 안정감도 전부 달라졌다. 안전하다는 감각 하나가 사람의 심리와 몸 상태를 이렇게까지 바꾼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급커브 구간에서 둘이 동시에 코너를 돌며 공간 확보를 하지 못해 이번에는 ‘동반 엎어짐’을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둘 다 바닥에 누운 채로 깔깔 웃다가 다시 일어났다.

오늘은 다시는 안 엎어지겠다는 (엄청난)다짐과 함께 다시 출발. 안전한 자전거길을 달리니 이야기하면서 달릴 수 있었고, 속도도 자연스럽게 붙었다.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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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몇 번이나 넘어지고 비까지 쏟아져서 그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오늘은 땅이 아니라 앞을 보고 달리게 되었다. 리투아니아,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다. 위험천만한 도로를 달릴 때는 10km가 정말 길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0km를 넘겼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자전거로 유럽 일주, 진짜 문제없겠는걸 싶었다.


오전 11시

평탄한 자전거 도로가 끝나고 다시 위험한 도로가 시작됐다. 달리기 전에 미리 에너지를 보충하기로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까 마트에서 하리보 젤리와 견과류를 사두었다.

하리보를 씹으며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풍경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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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위험한 도로였지만, 날씨만큼은 정반대로 좋았기 때문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도로 위에 식당이 보이지 않아 의도치 않게 10~20km를 더 달리게 되었다.


오후 1시, 드디어 식당이 나타났다.

이 나라는 주택만 큰 게 아니라 식당 부지도 리조트처럼 넓었다. 알고 보니 숙소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숲속에 거인족이 살 것 같은 분위기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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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를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참새 한 마리가 투명한 유리창에 머리를 쿵 박고 바닥에 간신히 서 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어딘가에서 설탕물을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테이블 위 설탕을 참새 앞에 조심히 뿌려주었다.(다행이 우리가 식사가 마칠때쯤 다시 날아갔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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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나왔고, 한참을 맛있게 먹다가 리투아니아 전통요리가 ‘만두’라는 이야기를 듣고 메뉴를 시켜보았다. 이 요리는 ‘비르티나이’라는 음식으로, 우리나라 만두와 달리 대왕 라비올리처럼 크림과 사워크림 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였다. 맛도, 생김새도 라비올리를 확대해 놓은 느낌이었다.


오후 2시 40분

이제 숙소까지 몇 킬로 남지 않았다는 말에 힘이 더 났다. 숙소에 도착하면 오늘은 하루 종일 자유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아침에 빌었던 소망대로 양질의 식사도 했겠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깨달은 건 양질의 식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 인스턴트 음식은 열량은 높지만 금방 소모되어 허기가 빨리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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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향해 달리며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세상에 우리 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욕심내지 않고 자기 속도에 맞춰 가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 자전거를 타며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어떻게든 나보다 빨리 가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인생도 경쟁이 아니다.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그 순간 경채는 자신이 늘 인생을 경쟁처럼 살아왔고, 그래서 인생이 늘 전투 같았다고 고백했다. 인생은 즐기는 거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자전거길을 달리는 기분이 참 상쾌했다.


오후 3시 10분

드디어 오늘의 숙소가 있는 시아울리아이에 들어왔다. 숙소로 가는 길, 시청으로 보이는 큰 건물 앞에 대왕 수국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 나라는 건물도 크고, 꽃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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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건물 앞에 도착했는데 아고다에서 보낸 숙소 링크가 차단되어 있었다. 아고다는 숙소 측과 연락이 안 된다고 했고, 우리는 건물 앞에서 난감하게 서 있었다. 그때 백짝꿍이 지나가던 빌루스라는 친구에게 휴대폰을 빌릴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부탁했고, 빌루스와 그의 어머니는 아주 흔쾌히 도와주었다. 덕분에 숙소 호스트와 연결이 되었고, 우리는 오후 4시에 드디어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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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풀고 나와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음료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근처 우즈베키스탄 전문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아침부터 열심히 달려온 끝에, 자전거 유럽 일주 4일 만에 갖는 자유시간이었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엄청난 결정을 하게 된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LHQPZZL9j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