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자전거 인프라, 네덜란드로 가다.

독일을 달리며 느낀 현실과 우리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

by 현존

자전거로 유럽일주 11일차, 누적 주행거리 약 340km.


오늘은 드디어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로 국경을 넘는 날이다.

독일의 작은 마을 윌리치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헤르켄보스로 약 50km를 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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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넘는 건 벌써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라트비아에서 리투아니아로. 리투아니아에서 독일로 올 때는 배를 탔으니, 이렇게 두 발로 페달을 밟아 나라를 바꾸는 건 두번째다.

생각해보면 국경이라는 건 지도 위 선일 뿐인데, 막상 그 선을 넘는 날이면 괜히 설렌다ㅎㅎ


우리가 네덜란드에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백짝꿍이 예전부터 하이네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본고장에서 마시는 하이네켄은 또 다르지 않겠어?”라며 눈을 반짝이던 그 얼굴.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유럽을 자전거로 일주하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쉽게 네덜란드에 와보겠냐는 마음이었다. 인생은 타이밍이고, 우리는 지금 그 타이밍 위에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출발

다행히 하늘은 완벽했다. 푸른 하늘 위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 있고, 그 아래를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은 언제나 좋다. 마치 세상이 우리 편이 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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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치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길에 우리는 뒤셀도르프를 지나게 되었다.

원래라면 이곳에 숙박하며 정말 기대했던 알트비어를 진작에 마셨어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뒤스부르크로 가는 바람에 타이밍이 살짝 어긋났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펍에 갈 시간은 없었지만 키오스크에 들러 알트비어를 맛보기로 했다. 쾰른에서 퀠시를 마셨다면, 여기서는 알트비어다.

쾰른과 뒤셀도르프는 맥주로 은근한 라이벌 관계인데, 마치 “너희는 맑고 가볍지? 우리는 진하고 묵직해.” 하며 서로를 의식하는 느낌이랄까. 한 강을 사이에 두고 맥주 자존심 싸움을 하는 도시들, 귀엽지 않은가.


키오스크 사장님이 추천해준 볼텐 알트와, 가장 대중적이라는 디벨스 알트를 한 병씩 샀다. 물론 프링글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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퀠시가 맑고 가벼운 금빛이었다면, 볼텐 알트는 연한 흑맥주 색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청량한데 단맛이 또렷했다. 디벨스는 비슷하게 무겁고 청량했지만 단맛의 결이 달랐다.

우리는 단 걸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볼텐이 더 맛있었다. 조금 더 풍부하고 깊은 맛. 역시 입맛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잠시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출발했다.

그동안 백짝꿍은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영상을 찍으며 달렸다. 여러 번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미국 로드트립 때 샀던 레이벤 메타 AI 선글라스가 떠올랐다. 카메라와 마이크 기능이 있는 그 선글라스. “이걸로 찍어보는 건 어때?” 하니 백짝꿍 눈이 번쩍였다.


막상 써보니 화질도 좋고, 마이크도 휴대폰보다 더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다만 화면 비율이 쇼츠용이라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두 손을 자유롭게 두고 달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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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날씨, 잘 닦인 자전거 도로, 그리고 우리가 가진 시간. 그 위를 달리며 생각했다.

진짜 멋이란 속도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자전거 질주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자전거 여행을 하러 왔다.


오늘은 독일을 떠나는 날. 며칠 동안 달리며 느낀 점을 서로 이야기했다.

백짝꿍은 독일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사람들도 규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나라 같다고 했다.

특히 환경 보호에 대한 배려가 인상 깊었다고. 분리수거가 쉽도록 포장지를 간편하게 뗄 수 있게 만든 제품들, 씻어서 재활용하기 좋게 만들어진 구조들. 생활 속에 스며든 질서.


자전거 인프라도 훌륭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 표정이 다소 굳어 있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다. 묘하게 거리를 두는 분위기.

이건 유튜브나 브런치에 자세히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흥미롭게도 어제 길에서 만난 뉴질랜드 부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독일 사람들은 조금 무뚝뚝해.” 아, 우리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구나... (이 외에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달리다 보니 엄청 넓은 초록색 밭이 펼쳐졌다. 무 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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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로 고개를 내민 무들이 어찌나 튼실해 보이던지. 독일의 야생 과일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더니, 밭에서 나는 농작물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다.


Viersen을 지날 때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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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전거 일주를 하며 옥수수 밭은 정말 많이 본다. 왠지 유럽의 기본 배경화면 같다.


백조 가족도 만났고, 풍력 발전기를 지날 땐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바람막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내가 공기주머니가 된 느낌이었다.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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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달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도대체 결혼 5일 만에 어떤 용기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걸까?


백짝꿍은 말했다. “우리 스스로와, 우리 ‘함께’에 대한 신뢰 아닐까. 어디를 가도 괜찮고,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 예전엔 머리로만 알았다면, 지금은 몸으로 체험하는 중인 것 같아.”


나는 자신 있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깡!!!!!!!!”

우리에겐 깡이 있다. 넘어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는 깡. 그래서 어쩌면 이 무모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써 여행 10개월 차. 백짝꿍은 돌아보면 어느 하나 덜 좋고 더 좋은 건 없다고 했다. 다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었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 세계여행 하길 잘했다.”


오후 2시, 달콤한 휴식

잠시 쉬어갈 겸, 역사가 느껴지는 아이스크림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꺼운 메뉴판을 받았는데, 잡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끝이 없었다. “이걸 다 어떻게 외워서 만드시는 거지?” 둘이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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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짝꿍은 스파게티 면처럼 뽑아낸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나는 키위 요거트 프라페를 주문했다.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지친 몸을 순식간에 깨웠다!


오후 3시, 국경을 넘다

“Herkenbosch 10km.” 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런데 지도에는 분명 국경선이 보이는데, 막상 눈앞에는 아무 표지도, 거대한 국기도 없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그냥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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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미 네덜란드 땅을 밟고 있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풍경이 확 바뀌었다. 넓은 초원,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 세게 부는 바람. “풍차의 나라라서 그런가?” 괜히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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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인프라 세계 1위라더니, 길이 정말 잘 닦여 있었다. 페달을 밟을수록 쑥쑥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

그러다 아무도 없는 내리막길이 나타났고, 우리는 속도를 즐겼다.(이 장면은 꼭 영상으로 봐주세요ㅎㅎ)

상쾌한 숲속 공기를 가르며 달리던 그 짜릿함은 글로 다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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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네덜란드 숲에서는 민트 같은 시원한 향이 났다. 바람을 마시는 느낌.


오후 4시, 숙소 도착

출발 4시간 30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밀키트를 샀다. 하나에 4인분, 농작물들이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조리법도 상세했고, 필요한 재료와 소스도 다 들어 있었다. 다만 파스타 밀키트에 면이 없고, 야키소바에 단백질이 빠진 건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6유로라니. 외식의 4분의 1 가격이라 생각하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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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으로 밀키트 야키소바를 해 먹었다. 야키소바와 팟타이를 섞은 듯한 맛. 배가 부르니 살 것 같았다ㅎㅎ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하이네켄을 마시러 나섰다.

분홍빛 노을이 마을을 덮고 있었다.

작은 마을에 하나뿐인 펍 앞에 도착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2주간 휴가 중이라는 안내문. 그렇지, 여긴 유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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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로 갔지만 거기도 문을 닫았다. 저녁 8시까지라니, 이미 늦었다.

결국 숙소 1층 스시집에서 병맥 3개를 샀다. 병맥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네덜란드 본고장에서 마신 하이네켄의 맛은 유난히 시원하고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건배하고, 또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iAp7F2oShQI?si=MCg45l4_VDJ4vk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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