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구호'가 아니라 '환경'
오전 10시
벨기에 Genk의 뮤지엄 같은 에어비엔비에서 상쾌하게 아침을 맞았다.
나는 어제 남은 윙을 데웠고, 백짝꿍은 신라면 세 봉지를 끓였다.
백짝꿍은 고기를 정말 잘 굽고, 라면을 기가 막히게 끓인다.
물 양을 일부러 조금 잡아서 짭짤하게 끓이는데, 그 맛이 정말.. 천상의 맛이랄까?ㅎㅎ
어제 도수 높은 트라피스트 맥주들과 벨기에 맥주들을 마신 다음 날이라 그런지, 얼큰한 국물이 혀에 착 감겼다.
그리고 어제 취기가 돌아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트라피스트 맥주, Rochefort 10을 드디어 열어보았다.
이 맥주는 벨기에의 Abbaye Notre-Dame de Saint-Remy 수도원에서 양조하는 대표적인 트라피스트 맥주다. 도수는 약 11.3%. 쿼드루펠 스타일로, 짙은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을 띤다.
한 모금 마셨을 때, 진한 건과일 향이 먼저 올라오고, 카라멜과 초콜릿, 약간의 스파이시함이 뒤따른다. 묵직하고 깊은데, 이상하게도 끝 맛은 부드럽다.
오늘은 드디어 EuroVelo 15을 탄다.
벨기에 젠크에서 네덜란드 Maastricht까지 약 25km를 자전거로 이동하고,
그 뒤에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독일 Frankfurt am Main까지 버스로 약 4~5시간 이동할 예정이다.
오전 11시, 출발.
라면 세 봉지의 힘인지 컨디션도 좋았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주 멋진 강 옆 자전거 도로로 이어졌다. 그 강은 어제 보았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가르는 Maas강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강 위에 부서지며 윤슬이 반짝였다. 진짜로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그 풍경에 취한 백짝꿍은 갑자기 샤라라라라~ 포카리 광고 노래를 부르며 달렸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양 무리가 나타났다. 누가 키우는 건지, 아기양들도 있고, 털이 엄청 깨끗했다.
잘 관리된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강, 햇살, 양, 자전거. 너무 평화로워서 순간 여기가 동화 속인가 싶었다.
다리를 하나 더 건너니, 우리는 또 다시 네덜란드 땅을 밟고 있었다.
두 바퀴로 국경을 넘는 기분. 여권 검사도, 긴 줄도 없이 그냥 쓱. 그 자유로움이 참 좋았다.
오후 1시 30분, 출발 후 약 2시간 30분 경과.
Maastricht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다음 날 아침, 오전 8시 40분.
전날 저녁 도착해 미리 예약해둔 토요코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하우프트반호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독일에 있지만 일본 호텔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방 구조나 가구 배치에서 일본 특유의 정갈함이 느껴졌다. 괜히 반갑고, 또 조금은 낯설었다.
아침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된장국과 밥이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쌀밥과 된장국. 그 따뜻한 국물을 한 숟갈 뜨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멀리 와 있지만, 어딘가 익숙한 맛이 주는 위로였다.
든든하게 먹고 체크아웃.
오늘은 독일 Frankfurt am Main에서 Bensheim까지 약 50km를 달릴 예정이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
마트에 들러 간식과 저녁 재료를 사려고 했는데, 이 큰 도시에 마트들이 전부 문을 닫았다. 우리는 독일이 일요일엔 대부분의 마트가 쉰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걸 까먹었다. “설마 대도시인데 하나쯤은 열었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도 있었다. 역시 여행은 늘 겸손을 가르친다.
저녁 재료를 어떻게 구하지... 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그냥 달리기로 했다.
조금 달리자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숲속 자전거길이 나왔다.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여 괜히 반가웠다.
그런데 이 길은 잘 포장된 길이 아니라 거의 산길에 가까웠다. 돌 위를 지나며 자전거가 덜컹거렸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자전거를 살 때, 사장님이 유럽 일주를 하려면 무조건 마운틴 바이크를 타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듣길 정말 잘했다.
우리는 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 차를 타거나 걸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마치 내가 길을 개척하는 사람, 작은 탐험가가 된 기분이라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어떻게 이렇게 자전거 인프라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까?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많이 타서 길이 생긴 게 아니라, 길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게 된 건 아닐까.
“자전거를 많이 타세요”라고 말로 독려하는 대신,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을 먼저 만들어 두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게 된다. ‘아, 이건 나를 배려한 구조구나. 이 안에서는 안전하구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선택이 바뀐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보다, 행동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게 시스템의 힘 아닐까 싶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종종 문제를 반복해서 말하는 데 익숙한 것 같다. 저출산이다, 청년 문제다, 환경 문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만들어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구호가 아니라 환경이라는 걸, 이 자전거 길 위에서 배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리얼 산속 길이 나왔다. 거의 오지를 탐험하는 게임 같았다. 돌을 피해 가며, 방향을 가늠하며, 길인지 아닌지 모를 길을 달렸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게 지금의 우리였다.
지도는 있지만, 정답은 없고.
두려움은 있지만, 계속 전진하는 중이고.
인생은 게임이다.
오늘은 사실 엄청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v1i9Hf-eV4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