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어떻게 자전거 강국이 되었을까?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구호'가 아니라 '환경'

by 현존

자전거로 유럽일주 13일차, 누적 주행거리 약 450km.


오전 10시

벨기에 Genk의 뮤지엄 같은 에어비엔비에서 상쾌하게 아침을 맞았다.

나는 어제 남은 윙을 데웠고, 백짝꿍은 신라면 세 봉지를 끓였다.


백짝꿍은 고기를 정말 잘 굽고, 라면을 기가 막히게 끓인다.
물 양을 일부러 조금 잡아서 짭짤하게 끓이는데, 그 맛이 정말.. 천상의 맛이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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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수 높은 트라피스트 맥주들과 벨기에 맥주들을 마신 다음 날이라 그런지, 얼큰한 국물이 혀에 착 감겼다.


그리고 어제 취기가 돌아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트라피스트 맥주, Rochefort 10을 드디어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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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주는 벨기에의 Abbaye Notre-Dame de Saint-Remy 수도원에서 양조하는 대표적인 트라피스트 맥주다. 도수는 약 11.3%. 쿼드루펠 스타일로, 짙은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을 띤다.

한 모금 마셨을 때, 진한 건과일 향이 먼저 올라오고, 카라멜과 초콜릿, 약간의 스파이시함이 뒤따른다. 묵직하고 깊은데, 이상하게도 끝 맛은 부드럽다.


오늘은 드디어 EuroVelo 15을 탄다.
벨기에 젠크에서 네덜란드 Maastricht까지 약 25km를 자전거로 이동하고,
그 뒤에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독일 Frankfurt am Main까지 버스로 약 4~5시간 이동할 예정이다.


오전 11시, 출발.

라면 세 봉지의 힘인지 컨디션도 좋았고, 날씨도 정말 좋았다.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주 멋진 강 옆 자전거 도로로 이어졌다. 그 강은 어제 보았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가르는 Maas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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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살이 강 위에 부서지며 윤슬이 반짝였다. 진짜로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그 풍경에 취한 백짝꿍은 갑자기 샤라라라라~ 포카리 광고 노래를 부르며 달렸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양 무리가 나타났다. 누가 키우는 건지, 아기양들도 있고, 털이 엄청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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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관리된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강, 햇살, 양, 자전거. 너무 평화로워서 순간 여기가 동화 속인가 싶었다.


다리를 하나 더 건너니, 우리는 또 다시 네덜란드 땅을 밟고 있었다.

두 바퀴로 국경을 넘는 기분. 여권 검사도, 긴 줄도 없이 그냥 쓱. 그 자유로움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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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30분, 출발 후 약 2시간 30분 경과.
Maastricht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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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오전 8시 40분.

전날 저녁 도착해 미리 예약해둔 토요코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하우프트반호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독일에 있지만 일본 호텔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방 구조나 가구 배치에서 일본 특유의 정갈함이 느껴졌다. 괜히 반갑고, 또 조금은 낯설었다.


아침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된장국과 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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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먹는 쌀밥과 된장국. 그 따뜻한 국물을 한 숟갈 뜨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멀리 와 있지만, 어딘가 익숙한 맛이 주는 위로였다.


든든하게 먹고 체크아웃.

오늘은 독일 Frankfurt am Main에서 Bensheim까지 약 50km를 달릴 예정이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
마트에 들러 간식과 저녁 재료를 사려고 했는데, 이 큰 도시에 마트들이 전부 문을 닫았다. 우리는 독일이 일요일엔 대부분의 마트가 쉰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걸 까먹었다. “설마 대도시인데 하나쯤은 열었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도 있었다. 역시 여행은 늘 겸손을 가르친다.

저녁 재료를 어떻게 구하지... 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그냥 달리기로 했다.


조금 달리자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숲속 자전거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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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여 괜히 반가웠다.

그런데 이 길은 잘 포장된 길이 아니라 거의 산길에 가까웠다. 돌 위를 지나며 자전거가 덜컹거렸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자전거를 살 때, 사장님이 유럽 일주를 하려면 무조건 마운틴 바이크를 타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듣길 정말 잘했다.


우리는 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 차를 타거나 걸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마치 내가 길을 개척하는 사람, 작은 탐험가가 된 기분이라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어떻게 이렇게 자전거 인프라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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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많이 타서 길이 생긴 게 아니라, 길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게 된 건 아닐까.

“자전거를 많이 타세요”라고 말로 독려하는 대신,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을 먼저 만들어 두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게 된다. ‘아, 이건 나를 배려한 구조구나. 이 안에서는 안전하구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선택이 바뀐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보다, 행동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게 시스템의 힘 아닐까 싶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종종 문제를 반복해서 말하는 데 익숙한 것 같다. 저출산이다, 청년 문제다, 환경 문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만들어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구호가 아니라 환경이라는 걸, 이 자전거 길 위에서 배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리얼 산속 길이 나왔다. 거의 오지를 탐험하는 게임 같았다. 돌을 피해 가며, 방향을 가늠하며, 길인지 아닌지 모를 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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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게 지금의 우리였다.

지도는 있지만, 정답은 없고.
두려움은 있지만, 계속 전진하는 중이고.

인생은 게임이다.


오늘은 사실 엄청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v1i9Hf-eV4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