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도둑맞을 근육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설마 있었겠지. 지금 같지는 않았겠지 할 뿐이다. 아프기 전보다 아니 치료 전보다 체중이 5킬로그램 이상 줄었지만 어느 근육이 아니면 체지방이 어느 만큼 사라진 건지 가늠할 수는 없다. 나는 내 몸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알기를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뻣뻣한 몸, 곧지 않은 자세, 상하체의 볼륨 불균형.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몸이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직업상 더 제대로 바라보고 싶지 않은 몸 상태임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몸과 의도치 않게 조우하게 된 순간은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어느 날이었다.
손가락 통증(항암치료로 인한 말초신경병변)으로 세수도 제대로 할 수 없던 날들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손바닥으로 꼭 세수를 했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손으로 후다닥 두세 번 문지르면 머리를 감는 것이었고, 얼굴 역시 손바닥에 비누를 묻혀 문지른 후 손바닥으로 헹굼질을 하고 있노라면 스님들도 이렇게 빨리 씻으려나? 시간이 많이 절약되겠군.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웃기도 했다.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포기한 채 지내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의 한 사람과 마주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낯선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아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눈을 깜빡이며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결국 한마디 말을 속삭였다. " 사랑해 " 그 순간 알 수 없는 미안함으로 마음으로 가 아니라 실제로 나는 구슬프게 울었다.
어느 학교 운동장 바닥에 비춰지는 불빛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깨달은 순간말이다. 그리고 가끔 죽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주변환경에 대한 불평들을 일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더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내라고 종용하던 나의 모습들은 나를 사랑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게 확실히 없었던 것은 마음근육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몰아치는 일들을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인지 가려내지도 못 한채 해내려고 애를 쓰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이 되려고 고민에 휩싸였으며 애초에 이루지 못할 사실은 이룰 필요도 없는 잡다한 일들을 해내려고 발버둥 치며 사느라 정작 내가 숨 쉴 수 있는 순간과 공간은 어디에도 마련하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우리 동네 산속에서 7월의 오후 2시에 볼 수 있는 볕뉘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기 위해 내 마음의 힘을 키워야지 또 결심한 그 순간 나는 이번엔 내가 생각하기에 번뜩이는 기지로 평소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문제가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교훈 삼아 말이다.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내가 먼저 할 일은 반복하는 근력운동 대신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힘을 쓰며 긴장하고 있는 근육들을 찾아 " 힘 빼도 괜찮아. 지금은 안전해"하며 속삭여보기로 했다. 엄마들의 몸공부로 온라인상으로 만나던 임상원교수님께 근육의 늘어짐도 타이트함도 모두 근력이 약화된 상태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40대에 도둑맞은 몸과 마음의 근육을 되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치료를 마친 후유증으로 신체기능은 젊은 노인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우울 모드로만 지내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생기가 넘친다. 심지어 내가 어떻게 혹은 언제까지 잃어버린 근육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미진진하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혹은 다시 아플지 모르는 사람이 제정신이냐고 말이다.
가까이 보면 더 예쁜 민들레
요즘 내게 나도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다면 말이다. 아니면 부끄러움으로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가 아니면 솔직한 얘기를 좀처럼 털어놓지 못하던 내게 티엠아이를 자꾸 아무에게나 말해주려고 하는 욕구가 생긴 나의 변화는 신종 질병일까?
거두 절미하고 나는 더 늦기 전에 요즘 10명 중 세 명이 걸릴 수 있다는 암에 걸렸던 나의 경험과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더 무서운 암이라고 알려준 림프종이라는 완치 없는 질병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